▲ 서울 한 초등학교의 원어민 교사 수업시간. photo 연합
영국 최초의 인종 평등법은 ‘인종관계법(the Race Relations Act of 1965)’이다. 올해로 입법 50주년이다. 이후 영국에선 두 개의 인종 관련법이 추가됐는데 2003년의 고용평등법과, 2010년의 평등법이다. 이에 따라 영국에선 사람을 고용할 때 드러내놓고 피부색에 따라 고용을 할 수 없다. 인종적 배경을 이유로 고용을 하거나 하지 않았다는 게 드러나면 인종차별 금지 관련법에 걸려 곤욕을 치른다.
   
   한국에선 채용 담당자가 원어민 영어 교사를 고용할 때 ‘백인 영어 교사 구함, 흑인·아시아계 사절’이라는 온라인 광고를 띄울 수 있다. 이 같은 광고문구를 막을 수 있는 법이 없다. 지난해 인종 문제에 관한 한국의 평판이 도마 위에 올랐다. 한 아일랜드인 구직자가 교직에 지원했다가 ‘죄송하지만 당신네 아일랜드 사람들은 알코올중독 성향이 있기 때문에 채용할 수 없습니다’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받았다. 국제 언론은 분노로 들끓었다. 영국 BBC에 보도되었고, 영국 신문 가디언은 “한국의 인종차별주의를 선명하게 보여줬다”고 평했다. 미국(워싱턴포스트), 영국(데일리메일), 기타 아일랜드의 일간지가 잇달아 성인의 평균 알코올 소비량이 아일랜드보다 한국이 더 높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엔 흑인이라는 이유로 교직 채용을 거절당한 미국인의 소식이 SNS상에서 화제가 됐다. 이 미국인에게는 ‘미안하지만 귀하가 지원한 학교에서 백인 교사를 원한다고 합니다’란 내용의 문자가 통보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엔 분명히 인종주의가 존재한다. 세계 각국의 사회·문화·정치적 변화를 연구하는 ‘세계가치조사(World Values Survey)’의 2013년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33%가 다른 인종과 이웃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는 전체 조사 대상국 중 세 번째로 높은 비율이다. 영국, 미국, 캐나다, 호주, 브라질, 그리고 스칸디나비아 대부분의 국가에선 다른 인종의 이웃을 원하지 않는다고 대답한 비율이 5% 미만에 그쳤다.
   
   이 글을 읽는 독자는 이제부터 내가 ‘한국인이 얼마나 심한 인종차별주의자들이며, 서구인이 얼마나 이상적이고 조화로운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한 장황한 일장 연설을 할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오산이다. 난 앞서 소개한 세계가치조사에 참여한 영국, 미국, 기타 국가 사람 중 상당수는 진심을 말하고 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영국, 미국 등지엔 인종 차별을 금지하는 법률이 너무 많기 때문에 다만 대놓고 인종차별주의적인 사람을 만나기가 불가능할 뿐이다.
   
   이들 국가에서 인종차별적 견해를 표현했다가 걸리면 엄청난 손해를 볼 수 있다.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누구의 동정도 얻지 못한 채 언론의 집중 공격을 받고 직장까지 잃게 될 것이다. 당신의 회사가 인종차별주의적인 모습을 보였다면 그 여파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2014년에 영국의 축구팀인 위건애슬레틱은 말키 맥케이(Malky Mackay)를 감독으로 영입했는데 그가 인종차별적이고 성차별적인 문자 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자 파장이 컸다. 당장 축구팀 셔츠 스폰서가 후원을 중단했고, 신문들은 그를 기용함으로써 위건의 명성에 “오점이 생겼다”고 보도했다. 결국 5개월 후 맥케이는 해임됐고, 지금까지 어디에서도 채용되지 못하고 있다.
   
   서양에서는 인종차별적 견해를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순간 맥케이처럼 기피인물이 된다. 오늘날 서양에서 절대로 피해야 할 한 가지가 있다면 그건 바로 인종차별주의자로 낙인찍히는 일이다.
   
   맥케이 사건이 시사하는 것은 서구인이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딱지가 붙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점이다. 미국은 지금 인권이 완전히 와해되기 일보 직전에 와 있다. 백인 미국인의 평균 연봉은 흑인보다 2만 달러(2000만원 이상)가 많다고 한다. 영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영국에서 소수 인종 계통의 40%가 빈곤층에 해당하는데 이는 백인 빈곤층 비율의 두 배에 달한다.
   
   영국과 미국엔 평등권에 관한 법률이 많지만 실질적인 인종 간 평등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문제는 한국이 인종 문제에 있어서 서구의 예를 따라 평등법을 발전시켜야 하는가, 아니면 영국이나 미국처럼 (겉으로만 평등하게) 하느니 차라리 이 문제를 신경 쓰지 않는 편이 나은지 하는 것이다.
   
   고용 평등 문제에 있어서 비(非)한국인이 불만스러워하는 것 중 하나가, 한국 기업은 입사 지원서에 사진을 부착하도록 요구하는 점이다. 이렇게 하면 사진을 보고 인종적 배경에 따라 지원자를 걸러낼 수 있다. ‘흑인’이나 ‘아시아계’를 직원으로 고용하지 말라는 주문은 내가 한국에 온 이래 한국인 상사로부터 계속 들어온 말이다. 윗사람들이 흑인이나 아시아계가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는 이유에서다.
   
   다른 나라에서 이런 말을 내가 들었다면 나의 행동은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상사가 내게 “흑인은 고용하지 말라” 혹은 “오늘 인터뷰하러 온 그 아시아계 사람 뽑지 말라”라고 지시하면 나는 불합리하다는 걸 알면서도 이에 따라야 한다. 그게 싫으면 내가 직장을 옮기는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비한국인은 입사원서에 사진을 첨부하라는 주문이 인종차별적이라고 생각하고 법적으로 이것이 금지되기를 바란다. 나는 지원서에 사진을 붙이지 못하게 한다고 해서 상황이 그리 달라지지 않을 거라 본다. 회사에서 흑인이 일하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면 인터뷰를 하러 왔을 때 탈락시킬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많은 국가에서 반차별적 법률이 유명무실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폴란드에서는 인종차별적 발언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유대인 차별적 글이나 파시스트 사상을 전파하는 것을 금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0년 바르샤바대학 편견연구센터(Warsaw University’s Center for Research on Prejudice)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폴란드 젊은이의 50% 이상이 반유대인 및 신(新)나치(neo-Nazi·제2차 세계대전 그리고 독일의 국가사회주의적 독재정권 이후에 민족사회주의적인 사상을 재수용하는 사상이나 움직임) 웹사이트를 방문한다. 내가 아는 한 유대계 여성은 우크라이나에서 폴란드로 이주해 대기업에 10년간 근무하다가 다시 우크라이나로 돌아갔다. 폴란드에서 경험한 직장 내 인종차별주의가 큰 이유였다. 그녀의 직장상사 중에는 그녀가 유대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영영 승진할 기회가 없을 거라고 솔직히 털어놓는 사람도 있었다. 인종차별적 발언을 법으로 금지하고 법적으로 평등권을 보장한다고 해도 직장 내 인종차별까지 막을 방법은 없는 것이다.
   
   직장 내 인종차별을 근절하기 어렵다 해도 이를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인종차별을 없애기 위한 가장 자연스러운 출발점은 평등권을 보장하는 법을 만드는 것이다. 정부가 그렇게 한다면 비한국인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게 될 것이다. “한국인은 당신을 돕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국인의 인종에 대한 태도에) 문제가 있음을 인식했고, 한국에 일하러 오는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그런 법이 없다면 비한국인은 한국에선 그 누구도 그들의 편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한국 정부가 그들의 고충을 몰라주고, 인종차별을 하찮은 사안이라고 무시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할 수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도 있다. 비한국인에 대한 긍정적 차별이다. 현재 한국에서 신고되는 혼인의 9~10%는 배우자 중 한 명이 비한국인이다. 2020년에 두 명의 구직 희망자가 회사에 취업 인터뷰를 간다고 상상해 보자. 한 명은 100% 한국인이고, 다른 한 명은 태국이나 필리핀계와 한국인의 혼혈로, 비한국인적인 외모적 특성을 갖추고 있다고 하자. 여기서 한국적인 외모를 가진 후보가 채용될 것이라는 점은 점쟁이가 아니라도 예상할 수 있다.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UNHCR) 보고서에 따르면 소수인종 출신에게 더 유리한 대우를 하는 게 인종 불평등을 해소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현재 몇몇 나라는 소위 긍정적 차별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있다. 회사나 교육기관이 소수인종 출신 직원이나 학생들을 더 많이 뽑도록 한다. 이스라엘의 경우 아랍계나 아프리카계 이스라엘인에게 이스라엘 최고의 대학들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을 수 있게 한다. 중국의 경우도 일부 소수인종 출신에게는 대입 시험에서 요구되는 최소 성적 기준을 한족보다 낮춰주고 있다.
   
   소수민족과 여성에게 교육과 고용에 있어 공평한 기회를 주기 위해 일부 국가가 도입한 차별철폐 조처(Affirmative action)는 논란이 있는 제도이고, 한국에 도입되기까지 갈 길이 먼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논의는 한국에서 하루빨리 시작돼야 한다. 점점 늘어나고 있는 비한국인과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한국의 취약계층으로 떠오르기 전에 말이다.
   
   높은 소득수준과 고성장을 구가하고 있는 한국은 선진국 중에서 인종적 평등에 관한 법률이 없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다. 한국 정부에 로비를 하고 한국 기업인들을 설득해서 평등권 법률을 채택하도록 하는 시도는 계속해서 실패해 왔다.
   
   인종적 소수자들의 인권 보호 요청을 무시하는 한국 정부의 태도는 국제적 이미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난 5월 UN은 한국 비자 발급을 받으려다가 에이즈 검사를 요구당한 한 뉴질랜드인의 사례를 들어 한국 정부가 뉴질랜드 여성의 “권리를 침해했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한국 정부는 인종차별 문제가 저절로 해결될 거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국가가 앞장서서 해결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한국에 인종적 평등을 보장하는 법이 없다는 사실이 잠재적인 이민자들에게 심각하게 고려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앞으로 5년밖에 남지 않은 2020년이 되면 한국에 60만명의 이민자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제 한국으로 오는 이민자의 질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할 시점이다. 지각 있고 교육수준 높은 사람 중에 자신의 권리가 법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나라에 오고 싶어할 사람이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오겠다는 사람은 세계 인구 중에서도 가장 절박한 사람들일 것이다. 그런 사람들 60만명이 2020년에 한국에 온다면 결코 환영할 만한 상황은 아닐 것이다.
 
팀 알퍼
1977년 영국 출생. ‘런던 스쿨 오브 저널리즘’, 켄터베리 소재 켄트대학 졸업(철학·영화 전공). 런던에서 프리랜서 번역가, 스포츠 기자로 일함. 서울에서 ‘korea IT’ 편집자, 교통방송 영어 FM 프로듀서로 활동. 현재 디자인하우스에서 대한항공 기내지 ‘모닝캄’ 영문판 편집자로 일하고 있음. 경향신문·코리아타임스에 칼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