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조선DB

문재인 정부 초기 경제사령탑을 맡은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새 국무총리 제안을 받았으나 고사한 사실이 드러났다. 김 전 부총리는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여권의 후보로 나오라는 제안을 받기도 했지만 끝내 고사했다. 일각에서는 서울시장과 국무총리까지 마다하는 그가 '더 큰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니냐'고 지적한다. 당장 내년에 열리는 차기 대권에 도전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특히 현 정부 내각의 초기 인사였으면서 여권의 인물이 되는 걸 꺼려한다는 점에서, '야권에서 뜻을 펼치려 하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 20일 《TV조선》 단독 보도에 따르면, 당초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어 김 전 부총리에게 총리직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이를 고사한 김 전 부총리가 최근 야권 대선후보 출마 가능성까지 주변에 타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보도 이후 그는 이 매체와의 통화에서 "총리 제안을 받고 고사한 건 맞지만 대통령과 직접 통화한 건 아니었다. 야권후보 출마도 타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 정치권 인사는 이 매체에 "김 전 부총리가 총리 제안 사실을 설명하며 상의를 해왔다. 고심 끝에 고사한 걸로 안다"며 "김 전 부총리가 야당 후보로 차기 대선에 나서는 데 관심이 더 큰 것으로 안다"고 전한 바 있다. 

김 전 부총리는 지난 1월 페이스북 게시글을 통해 정치권의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 권유를 고사한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김 전 부총리는 해당 글에서 “이번에 서울시장 출마 권유와 요청을 여러 곳, 여러 갈래로부터 받았다. 지난 번 총선 때보다 강한 요청들이어서 그만큼 고민도 컸다”며 “더 성찰하고 대안을 찾는 고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론에 이런 저런 보도가 되기 훨씬 전에 이미 거절의 의사를 분명하게 전했다”고 밝혔다. 

이번 보도가 나오자 김 전 부총리가 직접 언론에 '야권 대선 후보 타진한 적 없다'고 해명했지만, 그가 '야권에서 정치를 시작할 가능성이 있다'는 해석은 이전부터 제기되고 있었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작년 7월 1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안철수·김동연·홍정욱이 대선 후보에 포함되는가’라는 질문에 “몇 분은 상상하건대 (대권) 욕망을 갖고 있지 않나 본다”고 말한 바 있다. 국민의힘의 한 충청권 의원은 작년 8월 5일 자 《데일리안》 기사에서 “민주당이 지난 총선에서 김 전 부총리에게 고향인 충북 모 지역구 출마를 권유했지만 고사한 것으로 안다”며 “민주당에서 정치를 하려면 그때만큼 좋은 기회가 또 어디 있었겠느냐. 민주당에서 정치를 할 생각이 없는 것 아니냐”고 말한 바 있다.  

지난 1월 17일 자 《한국경제》 보도에 따르면, 2019년 6월경 이듬해 총선을 앞두고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측은 김 전 부총리 영입에 공을 들였다고 한다. 당시 이 정당의 고위 관계자는 “김 전 부총리는 취임 초부터 경제 정책을 놓고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와 마찰을 빚었다”며 “오히려 우리와 호흡을 잘 맞출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영입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 전 부총리는 재직 당시 현 정부의 대표적인 경제 기조인 ‘소득주도성장’의 보완을 언급하는 등 청와대의 경제 정책에 일부 이견을 보인 바 있다. 그 과정에서 ‘청와대의 김동연 패싱 논란’ ‘장하성 정책실장과의 불화설’ 등에 휩싸이기도 했다.  

'개천 龍'이 '충청대망론' 이루나 

김 전 부총리는 정치권이 탐낼 만한 ‘남다른 이력’을 갖고 있다. 첫째, 이른바 ‘개천 용’ 스토리다. 11살 때 부친을 여읜 그는 청계천 무허가 판자촌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덕수상고를 나와 은행원으로 일하면서 홀어머니와 동생 셋을 먹여 살렸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야간대학을 다니며 고학(苦學)한 끝에 입법고시와 행정고시에 동시 합격한다. 그의 나이 25살 때였다. 현 기재부의 전신(前身)인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 출발해 재정정책기획관, 예산실장, 제2차관 등을 거치며 경제 관료로 성장하다가, 문재인 정부 들어 장관 겸 부총리에 임명돼 입신양명의 정점을 찍었다. 그는 2014년 《주간동아》에 기고한 글 ‘그대, 세상을 뒤집어라 유쾌하게 당당하게’에서 “돌이켜보면 내 인생의 암흑기, 탈출구가 보이지 않던 터널 속에서 힘이 된 원동력은 세 가지였다. 분수에 맞지 않던 큰 꿈, 죽어라 쏟아 부었던 열정, 그리고 낙관적인 마음 자세”라고 술회한 바 있다. 

둘째, 보수정권과 진보정권에서 두루 기용된 ‘경제 전문가’라는 타이틀이다. 아주대 총장을 거쳐 문재인 정부 초대 경제부총리를 지낸 그는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 국정과제비서관으로 일했고 박근혜 정부 때는 장관급인 국무조정실장으로 중용(重用)됐다. 특히 청와대 경제비서관으로서 정책 추진력과 기획력을 발휘, 이명박 정부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데 주요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2017년 5월 21일 자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김 전 부총리가 2014년 7월 국무조정실장에서 물러날 당시 박근혜 청와대에서 몇 차례나 사의를 반려할 정도로 아쉬워했다고 한다. 

셋째, 지역 색채가 강한 영·호남이 아닌 충청권 출신이라는 점이다. 충북 음성 출신인 김 전 부총리는 부친의 고향이 충남 공주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함께 이른바 ‘충청대망론’을 이룰 인물로 꼽히기도 한다. 과거 충청대망론의 주역으로 꼽혔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도 김 전 부총리처럼 충북 음성이 고향이다. 충청권 출신 인사는 영남과 호남으로 갈린 지역 구도에 휘말리지 않고 중원의 민심을 안정적으로 잡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친문(親文) 성향의 한 민주당 의원은 지난 1월 18일 자 《오마이뉴스》 기사에서 “김 전 부총리는 경제 전문가로서 역량이 대단하고 뛰어난 달변가”라며 “‘흙수저’ 출신으로 상고와 야간대학을 거쳐 지금의 자리에 올라섰다는 인생 스토리도 대중들에게 매력을 준다. 무엇보다 고향이 충청도라는 점이 크다”고 평가했다.  

“政治, ‘세력 교체’하고 ‘새로운 판’ 짜야”  

김 전 부총리의 퇴임 후 최근까지의 행보 또한 '정치적 스텝'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김 전 부총리는 퇴임 이후 자원봉사와 대중강연을 하다 최근에는 사단법인 ‘유쾌한 반란’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회적 경제와 가치’ ‘사회 구조 혁신’ 등을 모토로 관련 행사를 열고 각계 전문가를 만나고 있다. 《시사저널》은 작년 11월 13일 자 기사 ‘김동연 前 부총리의 주목받는 행보, 제2의 노무현 신화 꿈꾸나’에서 김 전 부총리의 사단법인 활동에 대해 이렇게 분석했다.

"‘유쾌한 반란’이 다루는 주제는 굉장히 폭넓다. 하나같이 국가적 어젠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당 관계자는 “논란이 되고 싶지 않아 총선이 끝나고 나서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에 들어갔다고 하지만, 사단법인의 활동을 보면 사실상 정치행위로 볼 만한 게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김 전 부총리와 가까운 A씨는 “비주류로 시작해서 그런지 공직에 있을 때부터 사회 개혁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면서 “진중한 성격이기에 조용히 국가 개혁을 위한 정책 대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 매체에 “운동권 출신들이 경제를 망쳐놓았다는 프레임을 가장 잘 만들 사람이 누구겠는가. 그들과 싸우다 쫓겨난 김 전 부총리 아닌가”라며 “진보진영에서 상고 출신 노무현을 키워냈다면 보수에선 같은 상고 출신 김동연을 성공시키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전했다. 

김 전 부총리는 올초 페이스북에 쓴 서울시장 불출마 관련 글에서 “한두 명 정도의 새 피 수혈이 아니라 세력 교체에 준하는 정도의 변화가 있어야 우리 정치가 변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우리 정치에 이기기 위한 ‘경쟁’이 아니라 새로운 판을 짜는 ‘경장(更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사회 변화의 기여’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해 나가겠다”고 했다. ‘세력 교체’ ‘새로운 판’ ‘사회 변화’ 같은 표현은 보기에 따라 정치적 발언으로 읽을 수 있다. 

“大衆에 ‘인내’ 요구하는 지도자 必要” 

김 전 부총리가 생각하는 ‘좋은 대통령’이란 무엇일까. 그는 2012년 12월 9일 자 《중앙선데이》에 기고한 칼럼 ‘진정한 용기’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다음 대통령이 임기 중 ‘인기 없는’ 지도자가 되겠다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 지금의 구조가 유지되기를 원하는 기득권층과 맞서고, 때로는 참을성이 부족한 대중에게 인내를 요구하거나 많은 국민이 반대하는 인기 없는 정책을 펴는 용기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새 대통령은 이런 차원에서 우선 선거기간 중 쏟아냈던 공약에 대해 솔직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수많은 약속을 냉정하게 따져보면 좋겠다. 꼭 지켜야 할 약속과 그렇지 않은 약속을 정부 출범 전 대통령직 인수위 기간 중 구별해 제시하면 좋겠다. 그러면서 동시에 국가비전도 함께 제시하면 좋겠다. 선거 때 경쟁적으로 내건 복지공약이나 특정 지역 또는 이익단체의 민원해결성 약속의 합(合)이 국가비전이 될 수는 없다. 우리가 지향하는 미래의 국가상은 무엇이며 거기에 맞춰 바로 할 일과 착실히 준비해서 할 일, 그리고 해서는 안 될 일들을 정했으면 좋겠다.” 경제 관료답게 ‘포퓰리즘’을 배격하는 논조로 읽힌다. 

현재 야권 대선주자로 윤석열 전 총장이 유력하게 부상하는 가운데 김 전 부총리가 정치에 입문할 것인지, 그렇다면 '야권 후보'로 대권을 준비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