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조선일보DB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차기 대선 출마를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여권 내 '제3후보론'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제3후보론이란 대권 선두주자로 분류되는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경기지사 외에 다른 잠룡들이 출마해 여당의 지지를 받는 시나리오를 뜻한다. 현재 정가에서는 임 전 실장을 비롯해 정세균 전 국무총리, 이광재-김두관 민주당 의원, 추미애 전 법무장관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제3후보론은 '이 전 대표와 이 지사만으로는 야권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이기기 힘들다'는 여권의 고민에서 시작됐다. 특히 친문(親文) 진영에서 대표적 비문(非文) 인사인 이 지사와 올해 초 '전직 대통령 사면론'을 제기한 이 전 대표를 탐탁지 않게 보고 있다는 점에서 힘을 얻고 있다. 당내 핵심 그룹인 친문 진영이 현 정부를 제대로 계승할 새 인물, 즉 제3후보를 찾고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중앙일보》는 23일 "친문 진영에선 '친문 진영의 제3후보 수요는 여전히 있다. 대선 출마 선언 후 지지율이 5%까지만 올라가면 친문이 붙기 시작할 것'(초선 의원)이란 기대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대권 출마 막판 고심 중"

《연합뉴스》는 지난 20일 "더불어민주당 소속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대권 출마를 막판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임 전 실장과 가까운 여권 관계자는 이날 이 매체와의 통화에서 "(임 전 실장의) 고민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며 "정권 재창출을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은 기본인데, 어떤 역할로서 그것을 감당할지가 고민"이라고 말했다. 이 매체는 또 "임 전 실장은 지역을 다니며 바닥 민심을 청취하는 한편 청와대 출신 친문 인사들, 운동권 출신 인사들과 수시로 만나 자신의 역할에 대해 논의하는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임 전 실장과 가까운 한 의원은 "임 전 실장이 (민주당 지도부를 선출하는) 5·2 전대까지 지켜본 뒤 공식 입장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임 전 실장은 작년 12월 25일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 당시 윤석열호 검찰과 함께 현 정권에 불리한 판결들을 내놓은 법원을 비판하면서 "(내가) 할 일을 찾아야겠다"고 속내를 드러낸 바 있다. 그는 "검찰의 태도와 법원의 해석, 너무도 생경한 선민의식과 너무도 익숙한 기득권의 냄새를 함께 풍긴다. 도구를 쥐어주고 심부름을 시켰는데 스스로 만든 권한처럼 행사한다"며 "(이 상황을) 손 놓고 바라보아야 하는 내 모습이 너무 비참하고 무기력하고 무책임하게 느껴진다. 민주주의가 너무 쉽게 약해지지 않도록, 대통령께서 외롭지 않도록 뭔가 할 일을 찾아야겠다"고 썼다. 

윤석열, 최재형, 이재명 '저격'은 차기 주자 견제?  

임 전 실장은 또 페이스북 글을 통해 야권주자로 분류되는 '윤 전 총장'과 '최재형 감사원장' 그리고 여권주자인 '이재명 지사'까지 견제하기도 했다. 지난 1월 14일 페이스북에 "집을 잘 지키라고 했더니 아예 안방을 차지하려 든다. 전광훈, 윤석열, 그리고 이제는 최재형에게서 같은 냄새가 난다"며 감사원의 이른바 ‘탈원전 감사’를 비판하는 글을 썼다. 지난 2월 8일에는 "이(재명) 지사가 목표로 제시하는 월 50만 원 기본소득 지급을 위해서는 약 317조 원의 예산이 소요된다. 생계비로 터무니없이 부족한데도 어마어마한 규모의 증세가 필요하다"며 이 지사의 정치철학인 '기본소득론'을 저격했다.  

임종석의 대권설은 실장 퇴임 직후부터 제기돼 왔다. 통일부 장관으로 입각한다, 서울시장에 도전한다, 21대 총선에서 종로로 출마한다는 등의 정계 복귀설이 돌았다. 3번의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등 문재인 정부의 역점 분야인 대북 전선을 총지휘하면서 문통과 친문계의 신임을 얻어 대권으로 직행하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었다. 《시사저널》이 전문가 1000명에게 의뢰한 ‘2018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설문조사에서 임 전 실장은 1위 문재인 대통령, 2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이어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 매체는 당시 기사에서 임 전 실장의 영향력을 다음과 같이 평했다.  

"대통령의 그림자로 불리는 임 실장의 힘은 내각을 책임진 국무총리 이상이다. 임 실장은 대통령을 대신해 UAE(아랍에미리트)와의 원전 문제를 해결한 데 이어 남북 정상회담 준비위원장까지 맡으면서 통일·외교·안보 분야의 총책임자로 활동하고 있다. 민주당 내엔 임 실장과 인연이 길고 깊은 386운동권 인사들이 적잖이 포진돼 있다. 임 실장은 전대협 3기 의장 출신으로 운동권에서 가장 입지전적인 인물 중 하나로 꼽힌다. 최근 당내 이들의 세가 다소 약화됐다곤 하지만, 향후 임 실장이 당으로 복귀할 경우 그를 중심으로 다시 결집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부산파' 아닌 '호남파' 주자, 親文 선택 받을까  

그러나 임 전 실장의 정계 복귀는 싱겁게 끝이 났다. "제도권 정치를 떠나 통일운동에 매진하겠다"던 본인의 말처럼 그는 퇴임 이후 잠시 아랍에미리트 특임 외교특별보좌관으로 일하다 현재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경문협)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지난 총선에도 나서지 않았고,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도 운동권 동지인 우상호 후보를 대신 밀면서 정가의 외곽으로 빠졌다. 작년 7월부터 대통령 외교안보특별보좌관으로도 활동 중이지만, 사실상 명예직이나 다름없는 자리라 정치 재개를 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일각에서는 임 전 실장의 조용한 행보를 두고 '여권 내 세력 싸움에서 밀린 게 아니냐'는 해석도 흘러나왔다. 청와대에 있을 때부터 조국 등 소위 '부산파'의 힘에 '호남파'인 임 전 실장 세력이 밀렸고, 2019년 1월경에 실장직에서 물러난 것도 그러한 권력투쟁의 결과물이라는 시각이다. 

친문 그룹은 노무현·문재인을 잇는 '부산파 대통령'을 선호하기 때문에, 호남계인 임 전 실장이 대권 경선 흥행을 위한 '친문의 카드'는 될 수 있어도 여권의 강력한 단일후보가 되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대북 코드'만 맞을 뿐, 문 정권의 정체성과 크게 일치되는 이력이나 특징이 없다는 점도 한계로 지목된다. '586 운동권 출신'이라는 것도 차기 대권 국면에서 중도·보수 표심을 흡수하는 데 있어 약점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임 전 실장에 대한 여권 일각의 '대권 러브콜'은 현재 진행형인 것으로 보인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지난 1월 16일 자 《세계일보》 기사에서 "(임 전 실장이 속한) '86세대' 내에서 차기 대권을 잡아야 한다는 의견이 강하다. (임 전 실장이) 출마 요구를 받고 고민 중"이라고 전한 바 있다. 그의 고민은 어떻게 결론 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