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조선일보DB

진보 성향 지식인으로 분류되는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현 집권세력을 질타했다. 

최 교수는 지난 20일 민주당 초선 의원 모임 ‘더민초’가 주최한 ‘쓴소리 경청’ 공개 강연에서 "제가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자였는데, 쓴소리하는 사람으로 신분이 바뀌었다"며 "민주당이 이념·과거에 빠져 생각이 끊겼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당 대표에 출마하는 의원(우원식 의원)의 출사표가 ‘친일 잔재 청산하겠다’라는 말을 듣고, 이분들이 서울·부산시장 선거를 패배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생각을 하고 살아야 한다. 생각이 없으면 현실을 관찰하는 능력이 급격히 떨어진다"고 비판했다.  

"과거에 빠지면 '위대한 일' 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최 교수는 "최근 반도체 문제 등 현실의 가장 중요한 문제를 보지 않고, 자신이 믿고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만 제기하는 것은 생각이 멈춰있기 때문"이라며 "사회 전체가 선악의 구분과 과거에 지배되고 있고, 그 주도권을 민주당이 잡고 있다. 과거에 빠지면 전부 역사 속 위대한 일을 하고 있다고 착각한다"고 꼬집었다.  

최 교수는 특히 이번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당헌-당규를 고쳐가면서까지 무리하게 후보를 낸 것에 대해 강하게 질책했다. 그는 "후보를 내지 않겠다고 했으나, 시장을 내는 것이 더 중요해 말을 바꿨다. 여기에서 부끄러움이 느껴져야 한다"며 "염치가 있어야 한다. 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않았다면 서울·부산시장을 뺏긴 대신 존엄을 지킬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 외에도 여러 진보 성향 지식인들은 저서를 통해 현 집권세력의 실정을 직격하면서 보선 참패와 같은 여권의 몰락을 경고해왔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저서 《싸가지 없는 정치》(인물과사상사, 2020)에서 문재인 정권의 "싸가지 없음, 즉 오만의 문제"를 지적했다. 

강 교수는 "기존의 '제왕적 대통령제'와 '청와대 정부'가 문 정권에 이르러 심화된 데다 이의 제기마저 가로막는 열성 지지자 집단의 '검열' 활동이 비교적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데에 큰 책임이 있다"며 "별로 신뢰가 안 가는 하나의 답안을 제시해놓고선 외부에서건 내부에서건 조금이라도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 천하의 역적이나 되는 것처럼 공격해대니, 오류를 바로잡을 길이 없다"고 비판했다. 

"적폐청산, 정권 이익 도모하는 방향으로 이뤄져"  

강 교수는 또 문 정권의 아전인수(我田引水)식 적폐청산에 대해서도 질타했다. "적폐청산을 하더라도 꼭 그런 미래지향성의 틀 안에서 하라고 문재인에게 요청하는 건 무리일까? 냉정하게 뜯어보자. 선의는 아무리 훌륭할망정, 적폐청산의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이 정권의 이익을 도모하는 방향, 즉 선택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 문재인 정권이 자신의 정치적 불리함을 감수하면서도 외쳤거나 추진한 적폐청산이 단 하나라도 있었던가? 아무리 한국 사회가 ‘도덕 쟁탈전을 벌이는 거대한 극장’이라고 할망정 적폐청산을 하더라도 자신에게 엄격한 적폐청산에 임해야 스스로 적폐가 되는 비극을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진보좌파는 명심해야 한다. 내로남불형 도덕은 반드시 자신을 향해 돌아오는 부메랑이 된다는 것을 말이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저서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천년의상상, 2020)에서 현 정권의 핵심세력인 586 세대 정치인들의 잘못된 행태에 대해 비판했다. 진 전 교수는 "문제는 나라를 쥐고 흔드는 이들 586세력이 민주주의를 학습한 적이 없다는 데에 있다. 학창 시절 '국가주의' 교육을 받은 그들은 독재정권에 맞서 민족주의 색채의 또 다른 전체주의 이념으로 무장했다"며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고 대화를 통해 이견을 해소하는 것이 정치에 대한 자유주의적 관념이다. 하지만 586에게 정치는 여전히 '적폐세력'과 '토착왜구'를 때려잡는 민족해방전쟁의 연장이다"라고 지적했다. 그의 글이다. 

"지지자를 설득하는 데에도 이들은 운동권 시절의 전체주의 선동을 사용한다. 새빨간 거짓말, 부분적 거짓말, 맥락을 일탈한 진실 등 다양한 거짓말로 그들은 대중의 의식 속에 정치를 일종의 전쟁으로 각인한다. 세뇌의 결과 지지자들은 '되도록 많은 아군과 되도록 많은 적군의 시체'를 아예 정치의 이상으로 삼게 된다. 전쟁터에서 유일한 정의는 승리다. 승리를 위해 적에게 이로운 진실은 은폐되고, 아군의 범죄는 용서된다. 비판자는 '내부총질러'로 군법회의에 넘겨진다. 

문제는 이 낡은 운동권 하위문화가 어느덧 주류가 된 586을 통해 정부와 공당의 운영원리까지 왜곡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자유주의 정권의 커뮤니케이션이 전체주의적 특성을 보이는 해괴한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민주당에는 민주주의자가 없다.' 홍세화 선생의 지적이다. 20년 전 그가 '톨레랑스'의 정신을 외쳤을 때 그 표적은 한국의 극우세력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의 외침은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정권을 향한다. 민주당, 도대체 어디로 가는가."  

젊은이들에게서 '공정하게 경쟁할 기회'마저 빼앗았다

진 전 교수는 "언제부터인가 그들은 개혁의 레토릭을 자신들의 비리를 덮고 기득권을 지키는 데에 사용하고 있다"며 "이들은 벌써 정계와 관계, 방송과 신문, 시민단체와 지식인층을 망라하는 거대한 기득권의 커넥션을 구축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비리가 터질 때마다 그 커넥션이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그 압도적 헤게모니를 이용해 감시와 비판의 목소리를 순식간에 잠재워버린다"며 "기득권을 확보한 그들은 그 커넥션을 활용해 자신들이 누리는 특권을 자식 세대에 물려주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비판했다. 그의 글이다.  

"그들은 이렇게 바꿀 것보다 지킬 것이 더 많은 보수층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살해한 나쁜 아버지보다 더 나쁜 아버지가 되었다. 산업화 세대는 적어도 그들에게 일자리도 얻어주고 아파트도 한 채 갖게 해줬다. 하지만 586세대는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일자리도 아파트도 주지 않는다. 그저 자기 자식들에게 재산과 학벌을 물려주느라 그 검은 커넥션을 활용해 다른 젊은이들에게서 '공정'하게 경쟁할 기회마저 빼앗아버린다." 

"민주당, 재벌-강남-금융 밥그릇은 건드리지 않아"  

강양구 TBS 과학전문기자는 공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천년의상상, 2020)에서 "민주당은 한국 사회에서 신주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가장 동일시하기 좋은 정치 세력"이라며 "(민주당은) 재벌, 강남, 금융, IT 등 한국 사회를 사실상 지배하는 신주류의 밥그릇은 절대로 건드리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심지어 같은 편처럼 보이기도 한다. 거기다 적당히 합리적이고, 때로는 소수자 문제나 정체성 정치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 같은 제스처로 세련되었다는 인상도 준다"며 "한국 사회의 민주화를 주도했던 세력이라는 정당성도 있다. 그래서 자신은 실제로 기득권이면서도 기득권(구적폐)과 여전히 싸우고 있는 듯한 자기기만도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그의 말이다. 

"앞에서 몇 차례 언급했듯이, 민주당의 586 정치인이 여전히 자기가 한국 사회의 진보와 개혁의 기수라고 생각하는 것도 이런 자기기만 때문이죠. 심지어 이들은 혁신의 정체성을 거기에 덧붙이고자 합니다. 디지털 경제, 4차 산업혁명, 코로나 이후의 비대면 산업 육성 등. 앞으로 그런 부분에 돈이 몰릴 테니까, 이런 신주류의 기득권 네트워크는 당연히 강화되겠죠. 앞으로 민주당이나 혹은 그 아류의 정치 세력이 오랫동안 주류 행세를 하리라 전망되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