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2021년 4월 29일 자 《조선일보》 이건희 회장 유산 사회 환원 특집 지면 캡처

삼성이 12조 상속세 납부에 이어 2조 규모의 대대적인 사회 공헌에 나선다. 현금 1조는 의료 지원으로 기부하고, '이건희 컬렉션'으로 불리는 1조 규모의 희귀 미술품 수만 점은 박물관 등에 기증한다. 고(故) 이건희 회장의 유산 26조 중 절반 이상을 국가와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다.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통 큰' 사회 환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조선일보》는 29일 1~4면에 걸친 특집 기사로 전날 발표된 삼성의 이 같은 공헌 내용을 집중 보도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삼성은 이건희 회장의 유산 가운데 현금 1조 원을 감염병 백신·치료제 개발과 소아암·희소 질환 어린이 환자를 위해 사회 환원한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등 국보 14건과 박수근·모네 등 국내외 근현대 미술사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작품 등 미술품 2만3000여 점도 국가에 헌납한다.

부인 홍라희 여사와 이재용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은 지난 28일 삼성을 통해 이 회장 유산의 사회 환원과 상속세 납부 계획을 천명했다. 이 회장의 유산은 삼성전자 등 계열사 지분 19조 원과 부동산·미술품을 합해 약 26조 원 규모다. 12조 원에 달하는 상속세는 5년에 걸쳐 분납하겠다고 했다.

감염병, 소아질환 치료 위해 1조 원 기부

삼성은 1조 원 기부와 관련, "사회적 필요와 고인의 평소 철학을 생각해 감염병 예방 치료와 소아암, 희소 질환 환아를 위해 쓰기로 결정했다"며 "감염병이 인류 최대 위협으로 부상한 상황에서, 인간 존중과 인류 사회 공헌이라는 이 회장의 경영 철학에 따른 기부"라고 밝혔다.

이 회장은 생전 언론 인터뷰에서 "사회적 요구에 관심을 갖고 사회와 더불어 발전하는 것이 기업의 책임"이라고 말한 바 있다. 삼성 관계자는 《조선일보》에 "현 시점에서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하고, 또 소외된 사람을 위해 쓰자는 게 유족 뜻"이라고 전했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은 "이건희 회장 유족이 중앙감염병병원으로 지정된 국립중앙의료원에 7000억 원 규모의 기부금을 전달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 중 5000억 원은 국내 첫 감염병 전문 병원인 '중앙 감염병 전문 병원'을 건립하는 데 쓰인다. 음압 병상과 음압 수술실, 생물 안전 검사실에 150병상을 갖춘 세계적 수준의 감염병 전문 병원을 짓겠다는 것이다. 나머지 2000억 원은 질병관리청 산하 국립감염병연구소의 최첨단 연구소 건립과 감염병 백신 및 치료제 개발을 위한 연구 지원에 사용하기로 했다.

1조 원 중 3000억 원은 소아암, 희소 질환 어린이 지원에 기부한다. 앞으로 10년간 소아암, 희소 질환 어린이 중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를 대상으로 유전자 검사·치료, 항암 치료, 희소 질환 신약 치료 등을 위한 비용을 지원하기로 했다. 소아암, 희소 질환 임상 및 치료제 연구를 위한 인프라 구축 등에도 900억 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東西古今 '최고 작가'의 '최상 작품' 國家 기증

삼성은 "국보·보물 60건이 포함된 고미술품과 세계적 서양화 및 국내 유명 근대미술품 등 이 회장의 수집품 2만3000여점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키로 했다"고 밝혔다. 기부 목록 대부분은 고미술품과 근대미술품으로 유명 작가의 수작(秀作)들만 모아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이건희 컬렉션'에는 고려 불화 ‘고려 천수관음보살도’(보물 2015호), 단원 김홍도의 그림 ‘추성부도’(보물 제1393호) 등 문화재,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 등 한국 근대 미술품과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 호안 미로의 ‘구성’ 등 해외 유명 작가 작품 등이 포함돼 있다. 이 소장품들은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지역 미술관에 기증될 예정이다. 재계와 미술계에선 기증하는 미술품이 감정가 기준으로도 최소 1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 삼성가는 "생전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상생 노력’을 거듭 강조한 이 회장의 뜻에 따라 다양한 사회 환원 사업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겠다"고 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이 회장이 수집한 명품 2만1600여 점이 기증된다. 역대 최대 규모라고 한다. 특히 이건희·홍라희 부부가 30대에 미술품 수집을 시작하며 처음 구입한 ‘인왕제색도’(국보 216호)를 포함, 국가지정문화재(국보 14건, 보물 46건) 60건까지 들어간다. 박물관 측은 《조선일보》에 "청자·분청사기·백자 등 도자기, 서화, 전적, 불교미술, 금속공예, 석조물까지 한국 고고미술사를 망라하는 A급 명품이다. 박물관 개관 이래 최대의 경사"라고 전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은 총 43만 여 점 수준이다. 이 중 5만 여 점이 기증품인데 이번 삼성가의 2만 점 기증은 기증 문화재의 약 43%에 이른다.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조선일보》에 "아직 국보·보물로 지정되지 않은 작품 중에서도 ‘미래의 국보’가 다수 포함됐다. A급 명품들을 적극적으로 국보·보물로 신청해 고인의 뜻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이건희 명품전' 곧 관람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에는 고갱·모네·르누아르·피사로·달리·샤갈·미로·피카소 등 근대 서양의 대표 작가 8인과 근현대 한국의 거장들 작품 등 1400여 점을 기증한다. 《조선일보》는 "특히 피카소의 도자기 112점을 확보해 그간 '피카소 작품 하나 없는 국립 미술관'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소장품의 질을 급격히 끌어올리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고 해석했다. 기증품 목록에는 김환기·이중섭·박수근·장욱진 등 한국 근대 미술가들의 대표작도 460여 점 포함됐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국립중앙박물관은 6월 중 대표 기증품을 선별한 ‘고(故) 이건희 회장 소장 문화재 특별공개전’을 시작으로 내년 10월 ‘이건희 회장 소장 문화재 명품전’을 이어 개최할 예정이다. 이후 전국 13개 지방 소속 박물관에도 순회전이 이어진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서울관에서 ‘이건희 명품전’을 8월에 열고, 9월에는 과천관, 내년에는 청주관 특별전을 열 계획이다. 해외 전시도 논의 중이다. 두 기관은 이번 기증품을 디지털 자료화해 홈페이지에 모두 공개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