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야권의 강력한 대선주자로 분류되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당분간 제1야당인 국민의힘과 거리를 두면서 ‘중도·보수’ 진영의 세력화(勢力化)를 꾀할 것이라고 한다. 야권 조기 입당(入黨) 대신 등 제3지대에서 자강(自强)의 길을 걷는 ‘독자 노선’을 택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창당(創黨) 작업까지 진행될 수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윤 전 총장의 한 지인은 《조선일보》에 “윤 전 총장은 여러 국정 현안에 대해 자기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전문가들과 공부하는 단계”라며 “향후 정치 참여를 선언하더라도 곧바로 특정 정당에 입당하지는 않을 생각”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지인은 “윤 전 총장은 다양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으며 국정 현안에 대한 내실을 다진 후 자기와 뜻을 같이하는 중도·개혁적 인사들과 함께 정당 밖에서 ‘견제 세력’으로 활동하려는 것으로 안다. 이후 여러 정치적 상황을 보고 국민의힘 등과의 연대나 연합을 모색할 가능성은 있다”고 전했다.
“중도·개혁 인사들과 정당 밖 ‘견제 세력’으로 활동할 것”
《문화일보》도 이날 관계기사에서 “윤 전 총장은 ‘중도 보수’라는 정체성 확립을 먼저 한 후 정치적 세력화에 집중할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정치행보를 시작하더라도 국민의힘을 비롯한 기성 정당 입당은 당장 하지 않을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국민의힘 측도 당장은 ‘윤석열 영입’에 나서지는 않을 전망이다. 국민의힘 새 원내대표로 선출된 김기현 의원은 같은 날 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의 관심은 윤 전 총장 영입에 있는 것이 아니다. 자강을 통해 국민의힘 지지율을 40%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라며 “그분만 쳐다보고 대선을 치를 수는 없다. 국민의힘이 윤 전 총장 이슈에 종속변수처럼 끌려가선 안 된다”고 말했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2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 “자기(윤 전 총장)가 확신이 서면 5월 중순 정도 자기 의사(대선 출마 의사)를 표시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이번에 한국 정치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겠다고 생각하면 아마 색다른 선택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위원장의 ‘색다른 선택’ 발언을 두고 정가(政家)에서는 윤 전 총장이 중도 진영을 세력화하는 일종의 ‘독자 노선’을 걸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김 전 위원장은 국민의힘을 ‘아사리판’으로 비판하면서 “윤 전 총장이 지금 정돈되지도 않은 곳에 불쑥 들어가려 하겠느냐. 지금 국민의힘에 들어가서 흙탕물에서 같이 놀면 똑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또한 “(국민의힘은) 완전히 도떼기 판이다. 윤석열은 제3지대를 노리지 않을까”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윤 전 총장 의사와는 관계없이 그의 주변에서 독자 세력화 붐이 일어나고 있기도 하다. ‘윤석열을 사랑하는 모임’(윤사모)을 주축으로 한 정당이 나타나기도 했다. 가칭 ‘다함께자유당’은 지난달 24일 대구시당 창당 발기인 대회를 개최, 3일 뒤 인천에서도 같은 대회를 여는 등 현재 시·도당 창당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윤 전 총장을 주제로 한 책도 여러 종이 발간된 상태다.
‘2022 大選’ 윤석열 현상 나오나
세간에서는 지난 3월 퇴임 후 지속되고 있는 윤 전 총장의 잠행(潛行)이 고도의 정치적 감각에 의한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배후에 대통령학 권위자 등 정치적 단수가 높은 조언그룹이 있다는 설도 나오지만, 무엇보다 윤석열 본인의 ‘개인기’가 뛰어나다는 게 공통된 평가다. 특히 지난 3월 들어 한 신문과 ‘격정 토로’에 가까운 인터뷰를 하고,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은 부패완판(부패가 완전히 판을 치게 하는 것)”이라는 명확한 메시지를 내고, 단 며칠 만에 총장직에서 과감히 물러나는 일련의 과정에서 그의 정치적 감각을 읽을 수 있다. 퇴임 직후 바로 정치 시동을 걸기보다는 은인자중(隱忍自重)하는 정중동(靜中動) 행보를 통해 정국을 관망하는 자세 또한 고도의 정치적 면모를 보여준다는 평가다.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내는 야권을 자연스레 손에 쥐고, 여권 내의 반문(反文) 세력을 유인함으로써 대권 경쟁에 있어 이재명 경기지사 등 비문(非文) 집단을 자연스레 견제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이다.
정가에선 ‘중도·개혁’을 지향하는 윤석열호(號) 정치그룹이 2012년 대선 지형에서 야권을 요동치게 했던 ‘안철수 모델’을 참고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당시 안철수 그룹은 특정 이념 성향에 치우치기보다 제3지대 중도세력을 자처하면서 ‘새 정치’ 화두를 던져 정치권에 바람을 일으켰다. 기존 여권인 보수정권과 다른 노선을 추구하면서도 극단적 대립은 지양하여 중도우파의 마음을 흔들었고, 민주당 문재인 그룹 등 야권과 맥을 같이하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 역시 중도진보의 관심을 끌었다. 물론 종국에는 문재인 후보와의 단일화를 거치면서 야권 집권을 위한 밀알이 됐다. 2012년 대선에서 야권이 끝내 패배하면서 완전히 사그라질 것 같았던 ‘안철수 현상’은 이후 ‘민주당 당권 차지’ ‘국민의당 총선 돌풍’ ‘대권 재도전’ ‘보수정당과의 이합집산’ ‘서울시장 야권 단일화’ 등 이목을 끄는 정치적 현상으로 명멸(明滅)해왔다.
현재 진행형인 윤석열의 정치 입문도 18대 대선 당시 ‘새 정치 열풍’을 일으켰던 안철수 모델과 유사하다는 평이 많다. 지금 보면 윤 전 총장도 과거의 안철수처럼 보수-진보 양측과 각기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한편 언론과의 접촉면은 조금씩 넓혀가면서 일종의 ‘시대정신’을 반복 언급하고 있다. ‘공정’ ‘정의’ ‘법치’ ‘민주주의’ 등 사회적 화두를 조국 사태, LH 사태, 검찰 해체 같은 현실적 사안과 결부지어 거론함으로써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좌우에 관계없이 현 정권의 실정(失政)에 배신감을 느낀 민심과 정치세력을 하나로 ‘흡수통합’해 중원(中原)을 차지하겠다는 포석으로 읽힌다.
“제3지대 성공한 적 없다, 시간 끌다 入黨할 것”
윤석열 주도의 ‘제3지대 세력화’는 이른바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를 아우르는 ‘중도·개혁 진영의 정치 플랫폼’으로 정착될 수 있을 것인가. 기성 정계에 염증을 느끼는 민심을 공략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일각에서는 ‘제3지대 필패(必敗)론’을 거론하며 부정적인 시각을 내비치기도 한다. 2012 대선에서 영향력을 발휘한 ‘안철수 현상’ 역시 결국에는 실패로 귀결되지 않았냐는 지적이다. 주호영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달 15일 ‘BBS 라디오 - 박경수의 아침 저널’에 출연, “대선 국면에서 제3지대가 성공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성공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 전문가 의견이다. 제3지대가 당을 만들어 선거까지 제대로 하기는 쉽지 않다”며 “국민의힘이 열린 플랫폼이 되고 야권 후보를 단일화를 해서 거대 민주당과 대선을 치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말한 바 있다. 김영우 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26일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보기에는 일단 어떤 새로운 정당을 만들기보다는, 아마 당분간은 제3지대에서 이미지 관리하며 본인 지지율을 상승시키고 그걸 유지할 거로 생각해요. 그러나 시간이 가고 대선이 다가올수록 초조해지겠지요. 당을 따로 만들기는 쉽지 않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당을 만든다고 해도 지금 국민의힘 현역 의원들이 쉽게 갈 수가 없거든요. 국회의원들은 임기가 지금 3년이 남았어요. 과거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도 그렇게 심한 정치적 격변기가 있었는데 탈당을 많이 하지 않았어요. 제가 볼 때 윤 전 총장이 최대한 시간을 끌다가 국민의힘에 입당 또는 지난번에 안철수처럼 대선 야권 단일화 과정에 참여할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이 들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