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대표가 최근 정치 재개 시동을 걸고 있다. 작년 4.15 총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지 1년 여 만이다. 당시 황 전 대표는 '정치 1번지' 종로로 출마,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 대결 끝에 원내 입성에 실패했다. 작년 말부터 페이스북 글을 통해 국정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내다 지난 2월 대담집 《나는 죄인입니다》를 출간, 정계 복귀를 암시했다. 황 전 대표는 이 책에서 "총선이 끝난 후에도 참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국민께 죄송한 마음으로 엎드려 사죄했다"고 그간의 심경을 밝혔다. 그는 총선 패배에 대해 "많은 준비를 했지만 패배를 넘어 참패를 했기에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겪었다"며 "나는 패배한 장수다. ‘제가 죄인’이라는 말로 대신하겠다"고 털어놨다.
황 전 대표는 5일 페이스북에 방미(訪美) 소식을 알리며 "지금, 인천공항이다. 미국으로 간다"며 "껍데기만 남은 한미(韓美)동맹, 더 방치할 수는 없다. 정부가 못하니 저라도 간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미동맹은 세계에 전례 없는 대한민국 발전의 초석이었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잊는다는 말처럼 (요즘) 항상 함께했기에 그 중요성을 간과하는 듯하다"며 "문재인 정권에 기대(를) 거는 일에는 지쳤다.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 회복, 제가 직접 나서겠다"고 했다.
황 전 대표는 "(나의 힘이) 대통령처럼 큰 힘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리 작지도 않을 것이다. 미국의 문재인 정권에 대한 불신이 대한민국에 대한 불신이 되지 않도록,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다.
황 전 대표는 지난 3일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본인에게 제기되는 총선 책임론에 대해 "혁신과 공천 실패에 내부적 원인이 있었다. 정치 경험도 풍부하지 못했고 디테일도 부족했다"며 "모든 책임은 내게 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도 "그렇다고 좌절만 해서는 안 된다. 문재인 정권의 민생 파탄으로 책임과 각오는 더 강해졌다"고 덧붙였다.
황 전 대표는 "내가 국회의원 하려고 정치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그리고 나는 정치를 그만둔 적이 없다"며 "당직을 내려 놓았을 뿐이다. 여전히 당비도 많이 내고 있다"고 했다. 의원 자리 하나로 정치 입문을 만족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고, 대표직 사퇴 후에도 당적을 유지하며 정계 복귀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간단히 말해, '황교안의 정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황 전 대표는 이어 대선 출마 여부를 묻는 질문에 "(즉답을 피하며) 속죄하는 마음으로 국민을 위한 머슴·문지기라도 하겠다. 선수가 되든 킹 메이커가 되든 목표는 문재인 정권을 종식하는 것"이라며 "첫 도전은 실패였지만, 다시 한다면 그런 실수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정권 교체의 초석을 닦는 '머슴-문지기' 얘기를 먼저 내세웠지만 기회와 여건만 마련되면 선수, 즉 본인이 직접 대권 후보로 뛸 수도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에게는 여전히 '잠재적 대권 야망'이 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황 전 대표는 또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김종인, 안철수 등 현 국민의힘 외곽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정계 인사들과도 접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인터뷰 동안 전·현직 의원들의 전화가 자주 걸려오자 기자에게 "이런데도 내 주변에 사람이 없다고 하느냐. 의원들과는 늘 소통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황 전 대표의 권토중래(捲土重來)는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패전지장(敗戰之將)에서 일약 대권 잠룡으로 거듭나 야권의 유력 후보인 '후배 검사' 윤석열과의 경쟁에서 이기고 끝내 대망(大望)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최근 그의 SNS 글과 여러 언론 인터뷰에서 재기의 의지 등을 읽을 순 있으나, 바쁘게 돌아가는 현 대권 레이스는 그가 제패(制霸)하기에 결코 녹록지 않은 정국이다.
작금의 황 전 대표에게는 3가지 굴레가 덧씌워져 있다. 첫째, 2016~2017년 박근혜 정부 탄핵정국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국무총리로서 보수진영 일각의 대권 도전 권유를 받았으나 끝내 결행하지 못했다는 점. 둘째, 지난 4.15 총선에서 패퇴해 민정(民政) 사상 초유의 거여(巨與)를 탄생시켰다는 점. 셋째, 총선 당시에도 그렇고 현재도 여권의 대권 후보인 이낙연 전 총리에게 정치 1번지인 종로를 내주고 원내 입성에 실패했다는 점이다.
물론 황 전 대표로서는 각기 저간의 사정을 고려하여 나름의 반박을 할 수도 있다. 탄핵정국 당시 차분한 정국 수습과 정권의 안정적 이양을 위해 대통령 권한대행 신분으로 대권 도전은 할 수 없었다는 점. 한 번의 총선 패배에 대한 책임을 당 대표에게 물으려 든다면 전신(前身)인 자유한국당, 새누리당, 한나라당, 신한국당, 민주자유당 등 보수정당의 조상 대열까지 올라가야 한다는 점. 역시 총선에서의 지역구 패배를 문제 삼겠다면 역대 유력 정치인들의 부침도 다 걸고 넘어져야 한다는 점 등을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집권세력은 물론이거니와 보수진영 내에서도 본인에 대한 비토의 목소리가 나오는 현 시점에서, 황 전 대표의 정계 복귀란 대선 출마 못지않은 과감한 도전이라 할 수 있다. 검사, 법무장관, 국무총리, 야당대표를 지낸 '고위 관료' 출신이나 의원 한 번 해보지 못한 '정치 초년생'이라는 꼬리표. 노무현 정권 시절의 고건 전 총리와 탄핵정국 당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처럼 실패할 것이라는 예단. 황 전 대표가 이 모든 굴레를 떨쳐버리고 비상(飛上)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같은 당 동지(同志)인 조경태 의원의 얘기를 참고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조 의원은 《월간조선》 2020년 12월호 인터뷰에서 '본인이 당 지도부라면 어떻게 대여(對與) 투쟁을 하겠냐'는 질문에 "우선 청와대 앞에 가서 이 정권의 잘못을 소리 높여 규탄해야 한다. 정부가 코로나19 핑계를 대고 못 하게 막으면 마스크 두 겹 쓰고 가서 하면 되지 않겠나"라며 "야당 대표라면 그런 결기를 보여야 한다. 우리 당 의원이 103명인데, 아직 임기가 4년 가까이 남아서 그런지 절박함과 결기가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황 전 대표에게는 당 대표 재임 시절인 2019년 말 삭발시위와 단식농성 때의 '비장한 결기'를 다시 살려야 한다는 소리로 들리지 않을까. 그 역시 당시 문재인 정권 규탄 집회에 대해 "광화문에서 시청까지 수많은 국민이 몰려들었다. 국민과 함께한 집회였고 후회는 없다"고 말한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