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성향의 원로학자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7일 강연에서 지난 탄핵정국 당시 촛불시위의 ‘역기능’에 대해 비판했다.
최 교수는 이날 제주연구원에서 열린 제주연구원 개원 24주년 기념 ‘한국 민주주의의 진단과 전망’이라는 제하의 특강(特講)에서 “한국 민주주의를 떠받친 것은 진보, 보수 이념을 대표하는 정당 간 경쟁이다. 하지만 촛불시위로 진보와 보수 그 균형이 붕괴됐다”며 “한국 민주주의 위기의 시작은 ‘촛불시위’부터라고 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최 교수는 “촛불시위로 인한 대통령 탄핵 이후 민주당 정부는 역사청산, 적폐청산 등 광범위하고 급진적인 슬로건을 내걸고 촛불시위를 혁명으로 규정했다. 이후 이전 사회의 성과와 보수세력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현상이 나타났다”며 “현재 정치의 위기는 진보·보수 이념 갈등의 극대화다. 폭넓은 갈등이 확산하고 심화한 것이 촛불시위 이후 나타난 정치 현상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촛불시위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다만, 촛불시위를 ‘혁명’으로 규정해 이를 이해하는 방식은 건강한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민주주의는 순수한 특정 정당이나 특정 이념 가치를 구현하는 게 아닌, 갈등을 제도화된 틀 속에서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려고 한다면 필연적으로 갈등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선거를 통해 교차집권이 되면 몰라도 장기집권 형태로 간다면 아주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좋은 민주주의는 좋은 정당들이 좋은 정책 대안을 가지고 선거를 통해 경쟁하고, (대안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을 때 그에 대한 책임을 묻고 다음 정당에 물려주는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순조롭게 제도화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과거에도 촛불시위와 같은 ‘대중 여론 정치’를 형성하는 광장민주주의, 직접민주주의의 위험성에 대해 지적하며 ‘대의제(代議制)’ 원리에 입각한 정치 체제가 바로 서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최 교수는 과거 책 《양손잡이 민주주의》(후마니타스, 2017)에서 직접민주주의의 함정과 대의민주주의의 우월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보통 많은 사람들은 시민 주권과 정치적 평등을 완벽하게 실현하는 직접민주주의가, 선출된 대표라는 매개자나 대행자에 의해서만 간접적으로 시민 주권을 실현해야 하는 대의민주주의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직접민주주의가 더 우월하지만, 현실에서 실현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의민주주의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대인은,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에서처럼 극히 동질적인 작은 정치 공동체에 살고 있지 않다. 현대인들은 사회 발전과 노동 분업의 수준에서 엄청나게 다르고, 가치·종교·사상도 제각각이다. 생업을 위해 시간에 쫓기는 바쁜 생활을 살며, 사회적 문제의 복잡함으로 인해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모두 알 수는 없으며 정치 참여에 전념할 시간적·경제적·정신적 여유도 없다. 그리고 정치 문제를 직접 다룰 수 있는 지식도 부족하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사회에서는 전문적으로 정치에 전념해 통치의 역할을 하는 새로운 종류의 직업인이 필요하게 되었다. … 민주주의의 역사와 발전 과정을 보더라도 직접민주주의 때보다 대의민주주의에서 참여의 폭도 넓었고 잘못된 통치자를 폭력 없이 퇴출시키는 데 있어서도 더 우월한 효과를 가졌다. 그러니 대의민주주의가 더 우월한 체제 아니겠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