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전신(前身)인 신한국당 시절 이회창, 이인제, 박찬종 등과 함께 1997년 대선 출마를 선언해 이른바 '구룡(九龍)'이라 불렸던 이한동 전 국무총리가 8일 향년 87세 나이로 별세했다. 이 전 총리는 이날 정오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빈소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1934년 경기도 포천에서 태어난 이 전 총리는 경복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대학 시절 사법고시에 합격, 육군 법무관을 거쳐 1963년 예비역에 편입, 같은 해 서울지법 판사가 됐다. 이후 서울지검, 서울고검 검사를 거쳐 서울지검 특수1부장과 형사1부장을 지냈다. 정계 은퇴 후 변호사로 활동한 것을 포함, '법조 3륜'(검사, 판사, 변호사)을 모두 거친 정치인으로 유명하다.
1980년 민주정의당 입당으로 정계에 입문한 이 전 총리는 연천군·포천군·가평군 지구당 위원장을 맡아 제11·12·13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민정당 원내총무, 사무총장, 정책위의장, 총재 비서실장 등 당의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정국 당시에는 '여야 8인 정치 회담'의 민정당 측 대표로 나가 개헌 협상을 벌이기도 했다. 노태우 정부 내무부 장관을 거쳐 1992년 3당(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 합당으로 출범한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14대 국회의원이 됐다.
이후 15, 16대 국회의원을 내리 지내면서 6선 고지에 올랐고, 국회부의장과 신한국당-한나라당 대표, 자민련 총재 등 당수(黨首)로도 활동했다. DJ 정부 때는 2년2개월간 국무총리를 지냈다. 당시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해 임명된 최초의 총리였다. 1997년 신한국당 대선 경선에 나섰고, 2002년 ‘하나로국민연합’을 창당해 대선 본선에 출마했다. 정계 은퇴 후에는 국민의힘 상임고문으로 활동했다.
조성관 전 《주간조선》 편집장이 저술한 2002년 대선주자 평전 《위기의 韓國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에는 당시 대권 잠룡이었던 이 전 총리에 대한 정치적 평가가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이한동은 1981년 정치 입문 이래 헌정사에 독보적인 몇 가지 기록을 세워왔다. 먼저 지역구에서 11대 국회에서 16대 국회까지 내리 여섯 번 당선되었다는 사실이다. 지역구와 전국구를 번갈아 다선 의원이 된 사람은 여럿 있지만 이한동처럼 같은 지역구에서 연속으로 여섯 번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은 경우는 전무하다. 이한동은 원내총무를 세 차례 맡았다. 한 번도 하기 어려운 원내총무를 그는 전두환-노태우-김영삼 대통령 밑에서 각각 한 번씩 했다. 이 역시 이 총리가 아니면 어려웠을 것이다.
이한동은 또 당 3역(원내총무, 사무총장, 정책위의장)을 거쳐 국회부의장과 신한국당 대표를 역임했고 현재 자민련 총재를 겸임하고 있다. 그 역시 경쟁자인 이회창 총재, 이인제 최고위원, 노무현 상임고문과 마찬가지로 3부를 거쳤다. 여기서 특기할 만한 사실은 그의 법조계 경력이다. 그는 법조계에선 아주 드물게 법조 3륜(검사, 판사, 변호사)을 모두 거친 사람이다.
올해로 정치 입문 20주년이 되는 이한동의 정치 역정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정적을 만들지 않는 정치'로 축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3김과 전두환, 노태우 전직 대통령으로부터 두루 신뢰를 얻고 있다는 것은 정적을 만들지 않는 그의 정치력과 처세술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대목이다. 특히 그가 김대중 정부 아래서 국무총리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한동은 1997년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의 당선을 위해 뛰었다. 적어도 그는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기 전까지는 김대중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반대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김대중 대통령은 박태준씨가 총리직에서 물러나자마자 후임자로 즉각 그를 지명했을 정도로 신뢰가 두텁다. 김영삼 전 대통령 역시 재임 시절 그를 후계자로 생각한 적이 있었다.
정치권에서 그는 이름을 변형시켜 '한또' '단칼'로 불린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놀프'라는 별명이 있다. 놀프란 '노 헬프(No help)'의 줄임말이다. 기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 즉 기사가 될 말을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이한동이 입이 무겁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기자들은 좋아하기 어렵지만 임명권자 입장에서 보면 입이 무거운 그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