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에 교직 생활을 시작해 올해로 31년째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부산 금성고 조윤희 선생님. 남성 아이돌 그룹 2PM 장우영이 댄스 가수를 꿈꿨던 고교 시절, 학교 축제에서 힙합을 함께 췄던 선생님으로 유명하다. 장우영씨가 "스승의 날이면 생각나는 선생님"이라고 해서 예능프로그램 '우리 결혼했어요' 장우영-박세영 커플편(2014년 5월 3일 방영)에 출연하기도 했다. 조윤희 선생님은 댄스 가수가 꿈인 제자를 응원하기 위해 40대(代) 중반의 나이에 1년 반가량 힙합학원까지 다녔다.
장우영씨 뿐 아니라 졸업하고 40대 가장이 된 제자들과도 연락을 주고받는 조윤희 선생님. 5월 15일 스승의 날을 맞아 그에게 진정한 스승상이 무엇인지 물었다. 31년 교직 생활에서 쌓은 제자들과의 추억, 교육 철학, 공교육이 나아갈 방향, 향후 계획 등에 대해서도 들어봤다.
- 교편을 잡으신지 31년이 지났습니다. 교직의 길을 택하게 된 이유나 계기가 궁금합니다.
"중학교 때 절망과 슬픔을 준 선생님이 있었어요. 당시에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예민하고 힘들었던 사춘기 시절이었거든요. 독서를 좋아해서 청소 시간에 책을 읽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가정 교육이 안 돼서 저런다고 질책하시는 거예요. 그때 많이 울면서 '나는 나중에 커서 꼭 좋은 선생님이 돼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 선생님이 생각하는 진정한 스승, 좋은 선생님상은 무엇인가요?
"아이들이 계속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선생님, 무엇이든 이야기할 수 있는 선생님이요. 유효 기간 없이 평생 AS(애프터 서비스)가 이뤄지는 직업이 교사라고 생각해요. AS는 교단을 떠나서도 계속되더라구요."
- 방금 말씀해 주신 내용을 좋은 선생님상으로 삼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7~8년 차 교사 시절, 한 여중생이 교실에서 출산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어요. 당시 결혼하고 출산을 했을 때라 더 마음 아프게 다가왔어요. 그렇게 될 때까지 도움을 준 부모나 선생님이 왜 없었을까, 어떤 얘기든지 할 수 있는 선생님이 돼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 그때 이후로 교육 방법에도 변화가 있었나요?
"그전에는 엄격하고 아이들이 다가오기 어려웠던 선생님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 이후론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서면서 친근한 선생님이 되고자 노력했어요.
- 인상 깊은 추억을 나눈 제자들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릴께요.
"좌천동이라고 가난한 동네에 살던 제자인데, 집에 압류 딱지가 붙었을 정도로 가난한 가정 형편 속에서 공부했어요. 가정 형편 탓인지 오랜 시간 감기가 안 떨어지기에 홍삼을 사다 먹이기도 했는데 이 아이가 가난을 극복하려면 경제를 배우고 경제 전문가가 돼야겠다는 꿈을 품은 거예요.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지금 투자전문회사에 다니고 있어요. 열심히 일하면서 부모님 집도 사드렸고, 최근엔 장가도 가서 축하해 주고 왔지요."
조윤희 선생님은 여러 제자들과의 추억을 전해줬다. 가장 최근에 일이라며 들려준 일화이다.
"2학년 때부터 멘토링 하면서 삼성꿈장학생이 되고 올해 2월에 정시로 한양대 간호학과에 입학한 제자가 있어요. 얼마 전에 과잠(학과 동기생들이 단체로 입는 겉옷)을 입고 찍은 사진과 함께 '제가 선생님 작품이잖아요'라고 메시지를 보내왔어요. 처음에 만났을 땐 오랫동안 가정폭력에 노출돼서 공격적이고 방어기제가 강했던 아이예요. 자격지심이 강하고 자신이 무시당한다고 여겼거든요. 그런데 자존감이 엄청 높아지고 밝아진 거예요. 너무 기뻤어요."
선생님은 교직 생활을 하면서 가장 뿌듯한 순간이 제자들이 잘 됐을 때라고 밝혔다.
"제 직업이 사람을 키우는 일이잖아요. 제자들이 잘 됐을 때가 가장 기쁘고 뿌듯해요. 학생들이 꿈을 이루고, 사회생활을 잘 하고 있다는 피드백을 들으면 '내가 해왔던 일들이 틀리지 않았구나'를 확인받는 순간이에요. 공부를 잘하고 사회에서 성공한 친구들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에요. 땀 흘려 일하며 사회에서 제 몫을 다하는 친구들을 보면 뿌듯하고 교직 생활의 의미를 발견하게 돼요."
- 제자들에게 가장 전하고 싶은 가르침은 무엇인가요?
"'열심히 노력한 만큼 반드시 결실을 맺는다', '땀 흘리지 않고는 열매가 없다'는 교훈이에요. 내가 해야 할 몫을 하지 않으면 누군가 내 몫을 대신해야만 해요. 자유의 혜택을 누리는 만큼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 민주사회 시민교육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조윤희 선생님이 담임하는 반의 급훈은 이런 그의 교육 철학을 담아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공짜가 아니다)이다.
- 사회과 교사로서 한국 근현대사, 호국보훈,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 등 역사적·사회적 이슈들에 대해 교육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학생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동료 교사들 중에는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어요. 그러나 언제나 제 든든한 백은 학생들이죠.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어요. 아이들이 듣고 싶은 얘기만 하는 게 아니라 꼭 배워야 할 것들을 전해요. 어렵지 않게 일상의 사례부터 접근해서 자유, 호국보훈, 근현대사, 시장경제 등을 가르쳐요. 10년 넘게 매 수업 시간, 신문을 소재로 3분 스피치 교육을 하고 있어요. 최근 3개월 이내 기사 내용을 소재로 삼는데 박근혜 대통령 탄핵 무렵에는 대단했지요."
- 선생님의 수업을 듣고서 애국심을 갖고, 꿈을 찾고, 올바른 가치관을 세우게 됐다고 고백하는 학생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까지 많은 선생님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 비결이 궁금합니다.
"우선 신뢰 관계부터 쌓아요. 제가 아이들에게 전하는 신조가 '우리 교실에는 금기가 없다'는 거예요. 어떤 얘기를 해도 안전한 공간이 교실이어야 해요. '선생님에게 불만이나 불편한 걸 얘기해도 좋다', '나도 너희들을 믿기에 모든 것을 터놓고 이야기한다'고 가르쳐요. 선생님들끼리 모여서 애들 얘기도 많이 하거든요. 제가 교사 연수 강의도 하는데 밖에 나가서 아이들에 대한 험담이나 부정적인 정보는 교사들 간에 공유하지 말라고 교육해요. 교사가 다른 교사들의 말만 듣고 학생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을 가지면 안 되거든요. 밖에선 아이들 칭찬만 하라고 가르치고 저도 그렇게 하고 있어요. 아이들은 자신들을 믿어준다는 거에 큰 감동을 받아요."
조윤희 선생님은 민감한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선 사실과 상식에 근거해 심도 있는 학습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탈원전'과 관련된 영화를 보고 와서 불안한 것 아니냐고 물어요. 그러면 과학적 사실들을 보여주면서 아이들 스스로 분별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맡겨요. '일본의 과거사 사과 문제', '위안부 문제' 등도 수업 시간에 구글링을 같이 하면서 관련 정보를 하나하나 함께 찾아봐요. 사실 그대로를 보여주고 상식의 선에서 이해하도록 안내해요. '건국'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아이들에게 역사적 자료를 제시하면서 물어봐요. '1919년에 국가가 세워졌는데 그 후에 건국준비위원회는 뭘까?' 1949년 동아일보에 나온 '건국 1주년' 기사 사진을 보여주면서, 해방 후 선조들은 1948년을 건국 원년으로 삼았음을 알려줘요. 그러면서 '그런데 왜 굳이 교과서에선 '국가 수립'이라고 안 하고 '정부 수립'이라고만 할까, 정치적인 이유로 진실을 말하지 않는 건 선배 세대에게 송구한 일'이라고 가르치지요."
- 교직 생활 30여 년, 교육 현장 일선에 선 교사로서 체감하시는 변화가 있나요?
"'교단이 무너졌다.' '아이들이 영악해졌다' 등 부정적인 얘기를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세간의 얘기는 뒤로하고요. 자신의 진로에 관심 갖는 아이들이 많아졌다는 점이 긍정적인 변화예요. 예전에는 사(士)자 붙은 직업을 목표로 삼았는데 진로가 다양해졌어요. 그 점에 있어선 더 현명해지고 똑똑해졌어요. 다만, 입시 제도가 다양화되면서 수능을 안 보는 학생도 많아졌어요. 교사들은 수능을 염두에 두고 공교육을 진행하는데 한 반의 3분의 1 정도만 수능을 치르는 학생이고 수능을 안 보는 학생들은 교실에서 공부를 안 하거든요. 획일적인 국가 주도의 공교육이 앞으로는 맞지 않을 것 같다고 봐요."
- 대한교조 위원장, 올교련 공동대표도 맡고 계신데 이 활동들 관련해서도 소개 부탁드립니다.
"올교련(올바른 교육을 위한 전국 교사연합)이 먼저 만들어졌어요. 인헌고 사태를 보고 교사들은 뭐 했나 부끄러운 생각에 선생님을 모았어요. 회원 중에 20~30대 선생님이 많아요. 대한교조(대한민국교원조합)는 정년퇴임하시는 선생님에 이어 위원장을 맡게 됐어요. 대한교조를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교사의 전문성 제고를 위한 조합'이에요. 선생님들이 전문성을 쌓아 수업을 잘 하는 교사가 돼야 하고 그래야 학생과 학부모들도 교사를 신뢰할 수 있어요."
조윤희 선생님은 "교사가 자기 수업을 공개하고 평가받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며 말을 이어갔다.
"교사 평가 시스템의 보완은 필요하지만 교원 평가에 대해선 반대하지 않는 입장이에요. 수업에 대한 평가를 교사들끼리 하기 어려울 수 있어서 대한교조에는 자문교수님들이 계세요. 교육행정, 교육정책, 역사교육 등 여러 전문 분야 교수님들이 계셔서 자문을 받고 있어요. 교수님들께서 벌써 6000 사례의 수업을 참관하고 평가하면서 쌓은 데이터를 갖고 계세요. 그런 것들을 잘 활용해서 앞으로 선생님들의 수업도 제대로 평가하고 자체 연수도 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해요."
- 남은 교직 생활 동안 꿈꾸시는 바가 있다면.
"정년까지 5년 반 정도 남았는데 후배 선생님들을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하고 가는 선배가 되고 싶어요. 대한교조도 올교련도 그래서 맡게 된 거고요. 제 교사로서의 좌우명이 '초심을 잃지 말자'예요. 몇 달 있으면 '수업 연구'라고 새로운 교수법을 개선해서 수업에 적용하는 게 있어요. 저는 5년 주기로 하고 있는데 힘들고 귀찮다고 기피하는 선생님들도 계시거든요. 그래서 저는 동료, 후배 선생님들께 도움을 드리고 싶어서 '수업 연구'를 자원해서 하고 있어요. 경쟁력 있는 선생님이 되고 끊임없이 발전해야 경쟁력 있는 학생들을 길러낼 수 있는 거거든요."
조윤희 선생님은 2020년 8월 지난 교직생활의 철학과 경험을 담은 책 '경쟁 없는 교실엔 경쟁력이 없다'(부제: 30년차 사회과 교사의 교실 바로세우기)란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이 책에서 조 선생님은 오늘날 한국 교육의 모든 문제는 '경쟁'이 아니라 '경쟁의 결여'에 있다며, 경쟁의 자유가 살아있고 그 안에서 약자에 대한 배려를 찾는 '진짜 평등'을 가르쳐야 한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