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TV조선 캡처

윤석열 전 검찰총장, 최재형 감사원장에 이어 야권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21일 대중 강연을 마치고 출마 의사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지금 그런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며 "이달 말에 책이 나오느니, 책이 나오면 무엇을 하느니 하는데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이 책은 자서전도 아니다"라고 답했다.

야권 일각의 기대와는 달리 일단은 손사래치는 모양새지만, 전면 부인을 하지 않고 상황 문제를 언급하는 등 약간의 여운을 남겼다는 점에서 그의 출마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더욱이 부총리 퇴임 이후 현재까지 그의 행보는 사회 개혁을 기치로 한 사단법인 활동에 집중돼 있다. 전직 고위 관료의 시대 변혁 촉구 활동은 그 자체로 의미심장하다. '세상에 받은 것을 돌려준다'는 봉사적 개념이라지만, 관련 단체에서 다루는 의제나 활동 양상만 놓고 보면 '준(準) 정치 행보'나 다름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그간 국회 입성, 서울시장, 차기 총리 등 꾸준히 여권의 러브콜을 받아 왔으나 본인이 고사했다는 점에서, 그가 대권 직행 등 정치 참여를 선언한다면 야권으로 가지 않겠느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김동연 "청와대 정부, 바꿔야 한다"

김 전 부총리가 현실정치로 뛰어들 경우, 정치 개혁의 대상으로 가장 먼저 지목할 문제는 무엇일까. 그는 "'청와대 정부'를 우선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할 공산이 크다. 김 전 부총리는 지난 17일 경기도 오산 웨딩의전당에서 열린 JCI 경기지구 청년회의소 임원연수 강연에서 "단임 대통령제에서 성과를 내려는 성급한 마음이 만드는 '청와대 정부'를 바꿔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청와대 정부'란 대통령이 내각 중심의 국정운영이 아닌 청와대 비서진에 의존해 만기친람식 통치를 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대통령의 비서'에 불과한 청와대 비서관들이 국정의 중심인 장차관 위에 있는 것처럼 호령하며, 내각과 국무위원을 무시-패싱하고 대통령의 현실인식을 왜곡시키는 것 등이 '청와대 정부'의 폐단이다. 김 전 부총리는 실제 현 정권의 청와대 정부식 통치에 곤욕을 치른 당사자이기도 하다. 부총리 재임 시절 현 정권의 최저임금 인상 등 소득주도성장론을 놓고 당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갈등을 빚었던 것이다. 당시 청와대는 이른바 '소주성' 경제 기조를 밀어붙이는 장 실장 위주로 국정을 운영, 김 전 부총리의 의견을 고려하지 않는 '김동연 패싱' 행태를 보였다는 지적을 받았다.

진보 言論까지 "靑 그립 너무 세다"

김 전 부총리의 지적처럼, 현 정권의 '청와대 중심' 국정운영에 대한 언론들의 비판 또한 예전부터 계속돼 왔다. 박완규 《세계일보》 수석논설위원은 '청와대 정부와 민주주의'라는 제하의 칼럼에서 "청와대가 핵심 정책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북한과 관련한 새로운 소식은 청와대에서 나온다"며 "외교부·통일부 등 유관 부처는 바지저고리 신세다. 경제정책에선 '경제 사령탑'인 경제부총리가 청와대 정책실장에 밀린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는 "다른 분야도 다를 바 없다. 정부 부처들은 정책부터 인사에 이르기까지 청와대 눈치 보기에 바쁘다"며 "일각에선 '지금은 입법부도, 사법부도, 행정부도 없고 청와대 수석 보좌관 회의만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고 꼬집었다.

시사월간지 《신동아》는 '문재인 정부는 진보판 청와대 정부'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청와대 위상 강화가 민주주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도 있다"며 "내각은 청문회를 통해 구성되는 반면 실장과 수석은 대통령의 자의적 결정으로 임명된다. 권력을 위임받는 절차가 생략됐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런데도 (청와대 비서) 권한은 막강하다. 대통령과 가깝기 때문"이라며 "이 와중에 실장·수석들이 '정무' 활동에도 나선다. 참모가 대통령의 대리자가 돼 국정 운영의 중심축 기능을 하면서도 책임은 지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라고 분석했다.

진보 언론도 비판 대열에 섰다. 박래용 《경향신문》 논설위원은 '청와대의 그립이 너무 세다'라는 제하의 칼럼에서 "정부 고위관계자는 '청와대의 그립(grip·움켜 쥠)이 너무 세다'고 했다. 지지율이 높으니까 청와대에 힘이 모이고, 청와대의 장악력이 커지니까 부처는 먼저 움직이지 않게 됐다는 것"이라고 전한 바 있다. 그는 "오죽하면 '지금 장관들은 청와대 수석의 정책 보좌관'이란 말이 나오겠는가"라며 "청와대는 유능하고 겸손한 국정운영을 했는지 되돌아볼 때가 됐다. 시민의 눈에는 그렇게 비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진보 지식인도 '청와대 政府' 비판

진보 성향의 지식인도 현 정권 청와대의 국정 독주를 비판한 바 있다. 책 《청와대 정부》를 쓴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2018년 9월 14일 자 《시사저널》 인터뷰에서 "청와대는 정부가 될 수 없다. 이는 헌법에 위반되는 것이며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일"이라며 "지금처럼 대통령 비서실이 하나의 부서가 돼 국정 운영을 주도하는 건 민주정부론이 아닌 일종의 개혁군주론에 가깝다. 법률에 의한 조직인 내각이 잘 운영되도록 해야지, 청와대가 그 역할을 다 하려 하는 건 '거짓 민주주의'라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장은 같은 해 8월 13일 자 《프레시안》 인터뷰에서도 "정부를 민주적으로 운영하겠다던 문재인 정부가 왜 청와대라는 임의조직을 강화시키나. 왜 내각과 국회와 같은 민주주의의 여러 요소를 무시하나"라며 "이는 '선출직 군주제'와 다르지 않다. 청와대를 대폭 줄이고, 적어도 장차관급 직책인 수석 제도는 없애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