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히 '이준석 신드롬'이라 할 만하다. 이제 갓 30대 중반을 넘긴 청년이, 시사-예능 프로에서 활약하던 토크맨이, 정치 입문 10년간 원외(院外) 생활을 거듭한 '만년 의원 후보'가 한국 정치사를 새로 썼다. 당심(黨心)과 여론의 압도적 지지를 바탕으로 당권(黨權) 경쟁 초반부터 기세를 올리더니, 급기야 꿈 같은 '청년 당수(黨首)'라는 헌정사 초유의 신화를 현실로 만들었다.
비상한 논리와 언변으로 각종 토론 방송을 휘어잡던 청년 논객의 기개만큼이나, 당 대표직에 오르고서도 그의 톡톡 튀는 재기(材氣)와 총기 어린 위트는 빛을 발했다. 쏟아지는 축하 전화를 받느라 정작 중요한 대통령 전화는 놓치고, 전설적 록 가수 임재범의 명곡 가사를 변용한 취임사를 발표하는 등 다소 엉뚱하면서도 솔직담백한 그의 정치적 제스처들은 낡고 부패한 우리 정치에 새 바람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는 앞으로 '불혹의 나이'인 40대를 바라본다고, 정치 도전 10년 만에 이제야 당을 장악했다고, 이전과는 다른 괜한 근엄함을 내비치거나 엄숙한 분위기로 당을 이끌지는 않을 것이다. 당심과 계파를 평화롭게 통합하고 대선 경선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려면 어느 정도의 진중한 면모는 필요하겠으나, 그렇다고 억지스럽게 '어른 놀이'를 할 인물은 아닌 것이다.
털털하고, 솔직하고, 생각 정리와 사고 전환에 빠르고, 무엇보다 또래 세대의 고민과 열망을 잘 아는 인물. 그래서 민심과 당심은 '이준석'을 선택한 것이다. 30대 청년 정치인의 파격적인 비상을 박수치며 정권 교체를 넘어 세대 교체, 시대 교체를 촉구한 것이다. 지옥문 같은 취업 시장에 대한 분노, 주식-부동산-가상화폐로 상징되는 계층 상승의 욕구, 좌우이념과 주의주장을 떠나 자기 개성과 이익 추구를 당당하게 드러내보이는 'MZ 세대'의 '시대 개혁 의지'가 이준석 현상에 투영돼있다고 할 수 있다. 거듭되는 분열과 좌절 속에서 공정과 자유, 정의를 부르짖는 젊은이들의 이야기, 바야흐로 '30대 기수론'의 탄생이다.
물론 이제 이준석은 방송 논객이나 청년 당직을 맡은 원외 정치인이 아닌, 명실상부한 제1야당 대표다. 계파 통합, 중진 존중, 대선 흥행이라는 막중한 대임(大任)을 맡고 있다. 곧바로 단행될 당직 인선만 해도 초미의 관심사다. 당내 할 일들이 태산처럼 쌓여 있다. 그러나 그는 당 대표로서 각종 업무를 바쁘게 처리해나가면서도, 결코 자신을 지지했던 여론의 갈망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준석 현상'으로써 우리 시대 '30대 기수론'을 썩고 허물어진 정치권에 폭탄처럼 투척한 민심의 노도(怒濤) 같은 열망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가부장적인 보수정당도 변화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시대도 지금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허우적대는 청년 세대가 살아나야 발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민심은 매서운 '죽비소리'처럼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강남좌파'와 '내로남불'로 상징되는 문재인 정권 하 586 기득권 구(舊) 세대에게 가하는 청년들의 정문일침이자 퇴진 촉구의 함성이다. '가짜 진보' 권문세족들이 4년 넘게 자행한 위선과 무능, 독선에 대한 청춘의 반격이자 민심의 일갈이다. 지난 재보선에서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의 유세 트럭에 자주 보였던 시민 연사들은 주로 청년이었다. 2030 대학생, 취준생, 고시생, 직장인들이 진보를 참칭해온 현 집권세력과 기득권 586 세대에게 느꼈던 환멸과 분노가 표심으로 나타났다. 여권의 돌림노래 같은 그 어떤 공수표와 포퓰리즘에도 현혹되지 않고 단호히 정권 심판을 택했다.
이준석 현상도 마찬가지다. 구 세대들이 나눠먹기 바빴던 당권을 되찾아, 당의 미래를 이끌 30대 청년에게 쥐어준 당심과 민심이 원하는 것은 단 하나 '혁신'이다. 가짜 진보의 가증스럽고 왜곡된 '혁신 가장'이 아닌 제대로 된 정치 혁신, 시대 혁신이다. 지금 청년들은 무슨 대단한 정치적 기적이나 정부가 세금 써서 다 먹여살리는 나태한 사회주의 따위를 원하는 게 아니다. 어떤 분야든 반칙이나 특권의 개입 없이 오로지 자기 실력대로 정당하고 공정하게 경쟁해서 성취하고 싶을 뿐이다. 이 당연하고 간단한 이치조차 작금의 우리 사회는 지켜내지 못했다.
586 기득권층은 수십 년 전 민주화 운동 참여 경력을 무슨 전승(戰勝)의 훈장처럼 주렁주렁 매달고, 온갖 특혜는 다 받아 챙기는 것도 모자라 제 자식들에게까지 특권을 세습하고자 했다. 가재, 붕어, 개구리들은 알아서 개천에서 놀면 그만이고, 내 자식은 용으로 키워 대대손손 잘 먹고 잘 살게 해야겠다는, 그야말로 '눈물겨운 내리사랑'이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의 간섭과 방해로 흙수저 청년들은 꽃다운 청춘 제대로 펴보지도 못한 채, 경쟁에서 부당하게 밀려나 길거리를 헤매고 밤이면 소주잔을 드는 처량한 신세가 됐다.
적폐청산이니, 나라다운 나라니 운운하며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개조에 몰두하다, 국가의 정체성과 경제의 근간을 뿌리채 흔든 집권세력의 무도한 행태에 국민들은 신물이 난 지 오래다. 벌기보다는 쓰기 바빴고, 화합하기보다는 싸우기 좋아했으며,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기보다는 남탓으로 돌리는 데 선수였던 그들이었다. 용이 자력으로 승천할 개천은 아스팔트로 메워버리고, 제 자식들은 가짜 스펙과 엄빠 찬스로 학벌과 출세의 길을 닦아주면서 겉으로는 기회 균등과 평등 사회를 운운했던 그들이었다. 그들의 진보는 퇴행이었고, 기득권의 사죄는 악어의 눈물이었다. 배신감에 몸서리친 국민들은 우리 곁에서 각종 모순과 비리에 고통받던 청년들을 권력과 세대를 한꺼번에 교체할 시대 변화의 주역으로 등장시켰다.
국민들은 지금 이준석 돌풍이 586 기득권의 먹구름을 걷어내는 시원한 폭풍이자 강력한 태풍이 되기를 원하고 있다. 그 옛날 5.16 거사(擧事)로 사회분열과 정치부패를 일소하고 국가 재건에 박차를 가했던 박정희와 김종필, 민주당 신구파 노정객(老政客)들을 제치고 당내 혁신과 정권 교체에 도전했던 김영삼과 김대중. 그 시절 박통과 삼김(三金)의 '40대 기수론'을 계승하고 한 단계 더 발전시킨 이준석의 '30대 기수론'이 '시대의 대변혁'을 염원하는 국민 열망을 제대로 실현할 수 있을 것인가. 자유 경쟁의 가치를 정착시키고 공정 사회의 도래를 구현해낼 수 있을 것인가. 이준석 대표가 가는 길을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