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일 국가정보원 창설 60주년을 맞아 국정원 60년의 역사와 활약상, 선진 정보기관으로의 도약을 위한 변화 등 총 7회에 걸쳐 보도하고자 한다. 오늘은 그 네 번째 시간으로 테러·국제범죄 대응의 첨병으로서 국정원의 활약상을 소개한다.
기존 안보 위협이 국가 대 국가의 대칭적 성격이 강했다면 최근에는 비국가·초국가적 위협으로 전선이 넓어졌다. 초국가적 안보위협은 개인, 국가, 다국적기업, 국제조직 등 행위자간 상호의존 심화로 발생하는 문제인 만큼 국정원의 대응 방식도 다양화하고 있다. 국정원은 최근 이러한 안보 환경 변화를 반영해 대테러, 마약, 국제조직, 환경 안보 등 '신(新)안보' 업무에서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 국정원 직원이 전하는 우리 국민 피랍사건 측면 지원
"사막에서 바늘 찾기"
우리나라 국민의 해외 이동이 증가함에 따라 재외국민안전 관련 크고 작은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해가 더해 갈수록 국민 안전에 대한 국가 역할의 기대치가 높아지고 있는 만큼 국정원 피랍사건 담당자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해외에서 피랍된 우리 국민을 찾는 일은 마치 '어두운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일'과도 같다. 실제 사건 해결 과정에서 피랍 인질의 정확한 위치와 납치주체 등 상세 정보를 파악하기는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18년 7월 발생한 리비아 우리 국민 피랍사건과 함께 작년 한 해 나이지리아 해적에 의해 발생한 피랍사건 3건(가봉·베냉·토고 해상 우리 국민 피랍)은 현지인들조차 길을 잃으면 빠져나올 수 없는 열대우림·맹그로브 숲과 수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광범위한 사막에 인질이 억류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건 초기 인질 안전정보 확인에 어려움이 많았고, 시간 경과에 따라 인질들의 건강 악화 등 돌발상황도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에서의 정보 활동은 정보 요원의 숙명이기 때문에 국정원은 포탄이 떨어지는 내전 국가에도, 지명조차 생소한 아프리카 열사의 땅에도 대테러 전문가를 급파했고, 각국 정보기관들과의 정보 협력 및 가용 정보자산을 총동원해 인질의 신변 안전 확인을 비롯해 협상 주도권 확보에 필요한 정보수집에 진력했다.
사건 해결 이후에도 가담 인물 추적은 물론 외교부 등 관계 기관과 함께 사건 발생 지역에서의 유사 사건 재발 방지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밤을 지새우고 새벽을 깨워야 우리 국민이 돌아오신다"
저녁 8시 회사로부터 연락이 온다. "결국 피랍되었습니다. 현재 연락 두절입니다." 전화기 넘어 다소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뒤로한 채 몇 분 전 벗었던 옷을 다시 챙겨 입고 아내에게 "긴 밤이 될 거 같다"는 짧은 인사를 전하며 현관문을 나선다. 차를 몰고 회사로 향하는 도중 외교·해수부 등 관계 기관으로부터 쉴 새 없이 전화가 온다. "정보 들어오는 대로 공유하겠습니다."
사무실은 벌써 전쟁터가 돼 있었다. 매년 수차례 발생하는 사건이지만 피랍 상황은 몇 번을 해결해도 도통 익숙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누가 지시한 것이 아님에도 맡은 자리에서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 동료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간 피랍사건에 대한 내공이 얼마나 쌓였는지 알 수 있다.
국정원은 피랍사건 발생 시 체계적인 매뉴얼을 토대로 T/F를 구성해 사건 조기 해결을 위해 총력 대응한다. T/F에는 대테러·협상·무기·지리정보분석·특수어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참여하고, 이들은 각기 가용할 수 있는 정보 채널은 물론 지식과 정보를 총동원한다.
그와 동시에 사무실 한쪽에서는 사건 발생 지역으로 대테러 파견관을 급파하기 위한 출국 준비에 분주하다. 특히, 2020년에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하늘길이 막혀 파견관을 급파하는 데에 애로사항이 많았으며, 파견 국가 대부분이 열악한 환경을 가지고 있어 파견관은 파상풍·황열병 등 다양한 종류의 예방주사를 맞아야만 했다.
현지로 급파된 대테러 파견관은 사건 발생 지역에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는데, 현지 해외 정보기관과의 정보협력과 함께 본부에서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납치주체와의 협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도록 관계 기관 및 피해 기업에 주요 정보를 제공하고 컨설팅 업무도 병행한다.
한편, 국정원 본부에서는 자체 정보자산을 비롯해 관계 기관·해외 정보기관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입수된 납치 주체·인질안전 관련 정보를 분석하여 우리 정부의 사건대응전략 수립을 뒷받침한다.
이러한 피랍사건 관련 정보활동의 대부분은 시간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여기서 시간이라 함은 빠름과 느림의 차이도 있겠지만, 거기에 더해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적시 대응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낮과 밤이 바뀌어 근무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함께 포함된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정보들의 진위를 파악하여 진짜 정보를 솎아내는 것과 활용 방안을 강구하는 일은 고도의 집중력과 판단력이 필요하다. 또한, 국정원에서 생산한 정보가 피랍된 우리 국민의 생명과 직결돼 있다고 생각하면 막중한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으며 '새벽별을 보며 출근하고, 저녁달을 머리에 이고 집에 돌아가는 일'은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납치 주체와 피해기업 간 협상 타결 이후에도 인질의 신병확보 과정에서 아직 많은 변수가 남아있다. 범인들로서는 인질을 넘겨주는 순간이 현장 체포라는 최대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작은 오해로도 인질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신병인수 장소가 사막 또는 정글과 같이 복잡한 지형을 가지고 있다면 서로의 위치를 찾지 못해 접선이 무산되는 경우도 종종 있기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피랍 우리 국민에 대한 신병을 인수하게 되면 관계 기관으로 구성된 '합동조사팀'이 사건 경위 파악과 더불어 범인의 인상착의·행동 패턴 등을 면밀 조사하고, 해당 데이터는 피랍사건 가담 인물 추적과 유사사건 방지를 위한 예방대책 마련에 활용한다.
합동 조사가 완료되면 납치피해 우리 국민의 의사에 따라 한국으로의 귀국을 지원하게 되는데, 인천공항 게이트로 우리 국민이 입국하면 그때서야 국정원은 조용히 퇴장한다.
◇ 사상 최대 국제 마약조직 필로폰 112㎏ 적발
그간 동남아 골든트라이앵글 지역에서 생산되는 필로폰은 주로 중국을 거쳐 일본이나 한국으로 공급되었다. 하지만 중국 당국의 국경 단속이 강화됨에 따라, 국정원은 국제 마약조직이 마약 유통 경로를 바꿔 태국이나 베트남 등을 경유해서 한국으로 밀반입할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국정원은 2018년 7월 말 국내 정보 출처로부터 대만 조직의 마약 거래 동향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를 확보했다. 곧이어 동남아의 또 다른 정보 출처로부터 유의미한 첩보를 입수했는데 내용은 태국에서 부산으로 대량의 필로폰을 보냈다는 것이었다.
이후 경찰과 공조해 필로폰 거래 임무를 띠고 국내 입국한 대만 조직원 '장○○○○'를 추적하는 한편, 세관에도 정보를 지원하여 필로폰 밀반입에 악용된 수입화물 추적을 실시했다.
마침내 2018년 8월 26일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하려던 장모씨를 체포하였고, 서울 시내 소재 임대주택에서 필로폰 90kg(시가 3000억 원)을 압수했다. 이는 우리나라 수사기관이 적발한 필로폰 양 중 역대 최대 규모이다. 조사 결과 장모씨는 필로폰 총 112kg을 밀반입해 야쿠자 이나가와카이 조직원들의 손을 거쳐 22kg을 이미 국내 마약조직에 판매한 것으로 밝혀졌다. 국정원은 필로폰 유통 경로를 끝까지 추적해 국내 최대 마약조직인 대구 거점 '성일파' 조직원 등 총 9명을 추가로 적발했다.
◇ 강남 등 도심 활개 친 일본·대만 마약 조직 검거
2017년 7월 국정원은 "일본 야쿠자 조직원들이 서울 강남 고급 주택가에 아지트를 마련해놓고 활동 중인데 곧 대만 폭력조직과 필로폰을 대량으로 거래할 것이다"라는 첩보를 입수한다. 시내 한복판에서 마약 거래를 한다는 것은 당시로선 상상하기 힘든 이야기였다. 다만, 신뢰할 수 있든 그렇지 않든 진위를 반드시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검증에 나섰다.
일단 국정원은 해당 야쿠자 조직원의 동선을 파악하고 접촉 인물을 확인하는 등 감시 활동에 돌입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의 신원이 하나씩 확인되면서 처음 반신반의하며 시작한 추적 활동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야쿠자 조직원은 강남 일대 고급 아파트에서부터 허름한 빌라까지 여러 개의 거처를 마련해두고 각기 용도를 달리해 사용하고 있었다.
약 2개월간의 지난한 추적 활동을 통해 대만조직이 필로폰을 선박화물 등으로 밀반입하면 야쿠자 조직이 이를 건네받아 대구에 있는 한국인 마약조직에게 공급하는 프로세스를 밝혀냈다. 조직 간에는 철저하게 차단해 어느 한쪽이 검거되더라도 연계 조직원이 더 이상 검거되지 않도록 방어막을 친 것이다.
마약 거래 장소는 강남역·홍대역 등 인파가 밀집한 곳으로 정하고 거래 상대방에게 SNS를 통해 장소 사진과 GPS 위치정보를 알려주고 현장에서는 미리 전송받은 1000원권 지폐 일련번호를 대조해서 상대방을 확인하는 등 고도로 지능화된 수법을 사용하고 있는 사실도 확인했다.
국정원은 검찰, 세관과 공조해 수차례에 걸쳐 검거 시도와 실패를 거듭한 끝에 2017년 10월 일본 야쿠자 및 대만 폭력조직원 등 4명을 검거하고 필로폰 8.6kg을 압수했다. 확인 결과, 국정원의 분석처럼 대만조직이 중국 광저우에서 전통가구 내부에 필로폰을 숨겨 선박화물에 적재한 후 홍콩, 대만을 거쳐 인천항을 통해 국내로 반입한 것으로 파악됐다.
◇ 동남아 거점 한인 마약조직 총책 잇따라 검거·송환
국정원은 2018년부터 올해까지 태국·캄보디아 등 동남아 정보협력기관들과 공조해 현지에서 활동 중인 거물급 한인 마약조직 총책 5인방의 검거를 지원했고 이 중 3명은 국내 송환까지 이끌어냈다.
이 사건들은 모두 국정원만의 특장점인 해외 정보역량을 바탕으로 이뤄낸 성과이자 '해외는 국정원, 국내는 검찰·경찰'로 각 기관이 맡은 바 임무에서 최상의 호흡을 보여 주었던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이들 중에는 캄보디아를 거점으로 국내에 다량의 필로폰을 공급해 '캄보디아 마약왕'으로 불린 한국인 마약공급 조직 총책도 있었고, 캄보디아를 거점으로 한 동남아 최대 한인 마약조직 총책으로 '아시아 마약왕'이라 불린 사람도 있었다.
국정원은 해외 수사당국과의 협조를 통해 마약공급책들을 검거하기도 했는데 캄보디아 경찰은 국정원의 정보를 토대로 2020년 '20년 경력의 마약 총책'을 검거했고 필리핀 보안당국은 국정원의 정보 지원으로 탈옥 후 텔레그램을 이용해 국내로 마약을 공급하던 '텔레그램 마약왕'을 체포할 수 있었다. 이들은 현재 현지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 中 거점 보이스피싱 조직 적발·와해
2019년 4월, 국정원은 "중국 천진 거점 조직이 가짜 금융앱을 이용해 보이스피싱 범행을 벌이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국정원은 곧바로 검증에 나섰고 첩보가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국내 제2금융권 금융사의 것으로 위장한 해킹 앱을 통해 피해자의 스마트폰에 저장된 각종 정보를 탈취하는 것은 물론, 가짜 메시지를 받은 피해자가 해당 번호로 전화를 걸 경우 보이스피싱 조직에게 연결되도록 스마트폰을 완전 장악하는 수법을 사용했다.
국정원은 경찰과 2년간 공조 추적해, 중국 내 코로나19 확산을 피해 국내에 일시 귀국한 조직원 4명을 순차적(2020년 1~6월)으로 붙잡은 데 이어, 2020년 7월 중국 현지에서 총책 등 4명을 추가로 검거했다. 국정원은 중국 공안 측에 중국에서 붙잡힌 4명의 송환을 지속적으로 요청해 검거 8개월 만인 2021년 3월 결국 이들을 국내에 송환시켰다.
◇ 캄보디아 거점 해킹 조직 적발
지난 2019년, 국정원은 "캄보디아 거점 해킹 조직과 연계된 J씨 일당이 국내 시중은행 해킹을 기도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국정원은 경찰에 관련 내용을 지원한 뒤 합동 검증을 벌였고, J씨 일당이 국내 모 은행 직원과 공모하여 은행 데이터를 조작해 은행 돈을 범행계좌로 이체하려 한 정황을 포착했다. 입금 금액보다 많은 돈을 찾을 수 있도록 은행 전산망을 조작하는 악성코드를 심으려 한 것이다. 이들의 목표는 하루에 3~5억 원씩 1년 동안 500억 원 이상의 돈을 몰래 빼돌리는 것이었다.
국정원은 이 조직의 악성코드를 입수해 실제 은행 전산망 해킹 가능성과 위험성을 평가한 후 해킹 추진 동향을 집중 모니터링했다. 그러던 중 국정원은 이들이 타깃으로 삼은 시중은행에 보낸 이메일에 해킹 프로그램이 설치된 사실을 포착했고, 경찰과 공조해 본거지인 동남아로 출국하기 직전 J씨와 공범 2명을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검거 이후 수사 과정에서 해커의 노트북에서는 이미 과거에 시중은행을 해킹했던 전력과 함께, 수백만 건의 개인정보를 도용해 신용카드 범죄까지 저질렀던 흔적도 추가로 발견됐다. 금융위원회는 이 사건을 계기로 금융전산망 해킹 대비 훈련을 보완·강화했고, 금융감독원도 각 시중은행의 전산망 보안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도록 조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