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정원 청사 중앙 현관 벽면에 있는 '이름없는 별' 조형물. 사진=청와대 제공

지난 10일 국가정보원 창설 60주년을 맞아 국정원 60년의 역사와 활약상, 선진 정보기관으로의 도약을 위한 변화 등 총 7회에 걸쳐 보도하고자 한다. 오늘은 그 여섯 번째 시간으로 국민·국익 지킴이로서 헌신해 온 국정원 요원들의 활약상을 조명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7월 20일 국정원 청사를 처음 방문했을 때 중앙 현관의 벽면에 설치된 '이름없는 별' 조형물을 제막했다. '소리 없이 별로 남은 그대들의 길을 좇아 조국을 지키는데 헌신하리라'는 글귀와 함께 검은색 오석(烏石) 위에 별이 새겨진 조형물도 처음 공개됐다.

별은 18개였다. 1961년 중앙정보부 창설 이후 지금까지 북한·해외 정보활동 과정에서 희생된 요원들이 18명이란 뜻이다. 최근에는 별이 19개로 늘었다고 한다. 국정원 직원들은 해외 도처에서 목숨을 걸고 국가안보를 위한 비밀공작을 수행하며 때로는 불의의 사고로 희생된다. 실로 목숨을 건 '총성 없는 정보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국정원 관계자는 "요원들이 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더티워크(dirty work)" 라며 "그래도 긍지를 갖는 이유는 국가안보를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황장엽 北 노동당 비서 송환 작전

1997년 2월 12일 오전 10시 북한 노동당 비서 황장엽은 여광무역 총사장 김덕홍과 함께 베이징 소재 주중 한국 대사관 영사부에 진입, 대한민국 망명을 공식 요청했다. 국정원은 중국 안전부 및 외교부에 황장엽의 망명 사실을 알리고 국내송환과 우리 공관에 대한 경비강화를 긴급 요청했다. 

북한은 다음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남조선이 황장엽 비서를 납치하고 망명이라 떠든다면 응당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협박했고, 수십 대의 차량과 150여 명의 북한인을 우리 영사부 주위에 배치해 노골적인 위협을 가했다. 

2월 15일에는 보위부 산하 정예 특공 요원을 북경에 파견, 영사관 일대의 긴장감이 최고치에 달했다. 안기부는 즉각 황장엽 근접 경호와 방탄 설비 설치, 독살에 대비한 요리사 파견 등 대비 태세를 갖추고 상황을 주시했다. 

2월 17일 북한은 중앙통신을 통해 "황장엽이 망명했다면 변절을 의미하므로, 변절자는 갈 테면 가라는 것이 우리 입장이다"고 노선을 선회한다. 안기부는 이때부터 황장엽 일행 탈출 계획을 세우고 한 달 후인 3월 18일, 위장 차량을 사전에 출발 시켜 취재진과 북한당국의 추격을 따돌린 뒤 필리핀으로 이송했다. 황장엽 일행은 안기부와 협조 관계에 있던 필리핀 보안당국의 전폭적인 협조로 한 달간 안전히 체류 후 4월 20일 무사히 국내로 송환됐다.

◇ 헝가리 다뉴브강 유람선 침몰사고... 국민 보호 및 구조 작업 지원

국정원은 지난 2019년 5월 헝가리 다뉴브강에서 발생한 유람선 침몰사고 직후 신속대응팀을 현지에 급파해 사고 수습을 위한 지원 활동에 나섰다. 헝가리 정부가 정보기관인 대테러청(TEK) 청장을 사고대책본부장으로 임명하자 평소 정보 협력관계를 유지해오던 국정원이 일선에 투입됐다. 

국정원 요원들은 헝가리 측 내부회의에 참석해 효율적인 수색·구조 활동을 요청하고, 헝가리 정부 사고대응 현황 등 관련 정보를 우리 정부에 공유했다. 헝가리 정부가 자국의 내부회의에 외국 정부 인사를 참여시킨 것은 이례적인 일로 평가됐다.

국정원 요원들은 또 유가족 헬기 배정과 수색 장비 통관 지원 등에도 역할을 했으며 침몰선박 인양 시 현장 동향을 파악해 국정원 본부 24시간 상황반에 실시간 보고, 중대본 회의에 상황이 공유되도록 했다.

◇ 국정원 직원의 해외 첩보 현장 생존기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 첩보전의 시작"

평소 알고 지내던 L국의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여기 Z라는 사람이 본인의 처지에 불만이 많아 술만 마시면 그렇게 신세 한탄을 한다고 합니다. 새롭게 살아보고 싶다고 하네요." X요원은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Z는 국정원이 오랜 기간 관심을 두고 있던 인물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가까스로 Z의 연락처를 확보한 후 "도움이 필요하다면 연락을 달라" 는 비밀 메시지를 남겼다.

Z가 연락을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3주가 지나고 전화벨이 울렸다. X요원은 긴장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X요원은 Z와 정해진 시간에 정기적으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심한 경계심을 보이던 Z는 점차 마음을 열고 드디어 협조 의사를 밝혔다. 드디어 Z를 직접 만나야 할 시간이 된 것이다.

Z는 L국에서 주시하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에 그와 만나는 것이 현지 당국에 발견되지 않도록 극도로 조심해야 했다. X요원은 Y요원과 함께 L국에서 Z를 만나기 위한 철저한 접선 계획을 세웠다. Z의 모 도시 출장 기간을 활용하기로 했다. Z가 우리 요원들을 유인·테러할 가능성에도 대비, 현지 탈출계획도 마련했다.

드디어 접선 당일 X요원은 Z에게 접선 장소를 알려주지 않은 채 이동 지시를 내렸다. "○○에서 버스를 타고 ○○로 이동", "○층 출입구로 나와 ○○에서 대기". 이미 Z의 주요 이동 루트 상에서 은밀히 대기하던 Y요원은 Z의 모든 이동 상황을 체크하면서 현지 당국의 감시가 없음을 확인했다.

밤늦게 처음 얼굴을 마주한 Z는 "드디어 만나 반갑습니다"라며 악수를 굳게 했다. 밤새워 이야기를 나눈 Z는 다시 돌아갔다. 다음 날 Z에게서 문자가 왔다. "반가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Z는 X요원의 협조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