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섭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현 국민의힘 도봉갑 당협위원장)은 18일 《조선펍》 인터뷰에서 "‘이준석 현상’은 청년들의 정치 효능감을 현실로 보여준 사건"이라며 "저는 앞으로 이준석 대표의 ‘비판적 지지자’로서 활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조선일보DB

첫 ‘30대 원외(院外) 당수(黨首) 탄생’이라는 대한민국 헌정사(憲政史)의 전인미답(前人未踏)을 개척한 국민의힘. “낡고 늙은 영남당(嶺南黨)”이라 지적받던 보수정당(保守政黨)이 어느덧 ‘이준석 돌풍’ ‘이준석 현상’이라는 날개를 달고 비상(飛上)하며 청년들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한 달 만에 신규 당원(黨員) 2만3000명이 입당(入黨)하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총선(總選) 직후였던 작년 같은 기간의 10배에 달하는 수치라고 한다. 개중에서 ‘청년 당원’이라 할 수 있는 ‘2030 세대’의 비중이 과거보다 확연히 커졌다는 사실 또한 놀라운 일이다. 

이 같은 변화를 이끈 ‘이준석 신드롬’의 주인공은 당연히 이준석 현 국민의힘 대표다. 최근 그의 전당대회 승리 요인을 분석한 《주간조선》의 기사가 정가(政家)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준석 후배가 밝힌 “당 대표 거머쥔 이준석의 영업기밀”〉이라는 도발적인 제하(題下)의 기사, 정확히 말하면 외고(外稿) 형식의 칼럼을 쓴 필자(筆者)가 바로 ‘제2의 이준석’이라 불리는 김재섭(34)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이다. 

김 전 위원은 해당 칼럼에서 “‘이준석 현상’을 제대로 짚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그가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를 이끄는 정치인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디지털 네이티브란, 디지털 언어와 장비를 마치 특정 언어의 원어민처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출생자들을 일컫는다”며 “이준석은 기성 주요 언론매체에 등장하는 이슈 이외에도, 온라인 공간에서 분출되는 각종 현안들을 유심히 관찰한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어떤 키워드들이 커뮤니티를 장악하고 있는지, 어떤 기사나 글이 온라인에서 호응을 얻고 있는지를 시시각각 파악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소위 ‘조중동’을 통해 아침(조간)과 저녁(석간)에 정치 현안을 살펴, 보도자료를 내거나 세미나를 열어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기성 정치인들과는 이슈에 대응하는 메커니즘 자체가 다르다. 당연히 속도와 내용 면에서 천양지차다”라고 진단했다.

이준석 대표보다 두 살 아래인 김 전 위원은 현재 이 대표의 지역구인 서울 노원구 병과 인접한 도봉구 갑 당협위원장을 맡고 있다. 유도선수를 꿈꿨던 체육인(體育人)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를 졸업, IT 스타트업의 청년 CEO이기도 했던 김 전 위원은 작년 1월 같이오름 창당준비위원회를 결성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이후 미래통합당에 합류한 뒤 ‘퓨처 메이커(Future Maker)’ 전형으로 공천(公薦)을 받아 도봉갑에 출마했지만 낙선(落選)했다. 작년 9월부터 이준석 대표 체제 출범 직전까지 ‘김종인 비대위’에서 비대위원으로 활동했고, 지난 4·7 재보선 때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을 위해 이준석 대표와 머리를 맞대며 선거운동을 했다. 18일 《조선펍》이 김 전 위원을 인터뷰했다.

“이준석 현상은 청년들의 ‘정치 효능감’을 현실로 보여준 사건”

- 최근 들어 국민의힘에 청년들의 입당이 쇄도하고 있다. ‘이준석 현상’ 열풍을 실감하는가.

“그렇다. 지금 입당하는 친구들은 ‘본인이 정치에 참여했을 때 정치가 바뀐다는 걸 아는’ 사람들이다. 이른바 ‘정치 효능감’을 맛본 이들이다. ‘이준석 현상’은 이들의 정치 효능감을 현실로 보여준 사건이다. ‘내가 이 사람을 응원하면 여론조사 1위도 하고, 실제 당 대표도 되는구나’ 하고 정치 효능감의 실현 가능성을 본 것이다. 그 흐름이 이어져서 ‘정당 가입’이라는 정치적 액션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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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1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새로 선출된 이준석 대표가 당기를 흔들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 이준석 대표와 연배도 비슷하고 정치 활동도 함께 해온 것으로 안다.

“저는 이 대표에 비해 뒤늦게 정치권에 입문한 편이지만 서로 공통점이 있다. 정치권 입문 경로가 같다. 이 대표도 (한나라당) 박근혜 비대위 시절, 김종인 전 위원장과 함께 비대위원으로 정치에 입문했고 저 역시 김종인 비대위에서 비대위원으로 본격적인 정치를 시작했다. 또 최근까지 이 대표와 함께 활동한 일들이 많았다. 지역구도 맞붙어있고 방송 활동도 함께해왔다. 특히 지난 재보선 때 오세훈 시장을 당선시키기 위해 매일같이 만나며 전략을 짜고 선거유세에 나섰다.”

- 후배로서 ‘선배 청년 정치인’ 이준석을 평가하자면.

“이준석 대표는 그동안 정치권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젠더’라는 이슈를 여의도 한복판으로 끌고 들어온 인물이다. 같은 30대인 저도 그랬고, 정치권에 있는 40~50대들 대부분이 이 문제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게 무슨 대수인가’라고 넘어간 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20대 사이에서는 젠더 문제에 대한 갈등과 대치가 심했다. 일자리 문제로까지 연결됐다. 이 대표는 그 핵심을 간파했고, 이슈 선점과 돌파를 통해 여론의 주도권을 쥐게 됐다.”

“기성 정치인 SNS는 ‘지식 나열형’, 이준석의 SNS는 ‘최적화 콘텐츠’”

- 《주간조선》에 쓴 칼럼을 보면, 이준석 대표가 당권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핵심 요인으로 ‘디지털 네이티브 성향’을 꼽았다. 그가 남다른 SNS 활동으로 온라인에서 이슈 선도에 능했다는 것인데, 이전에도 연령대와 상관없이 당권주자들은 모두 SNS를 중시한 것으로 안다. 소위 ‘올드보이’라 불리는 여야의 정치인들도 거의 모두 SNS의 중요성을 알고 발 빠르게 활용하고 있다. 본인이 직접 활용하든, 참모진을 통하든 말이다. SNS 활용이 이 대표만의 특별한 강점(强點)이었다고 볼 수 있을까.

“이전에는 기성 정치인들에게 있어 SNS는 ‘원 오브 뎀(One of Them)’이었다. 여러 가지 홍보 수단 중, 그렇고 그런 ‘한 가지’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SNS 활용에 있어서도 고민이 없었다. 전화로 소통할 때, 카톡이나 문자로 소통할 때, SNS로 소통할 때 서로 ‘온도 차’가 있기 마련인데 이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공보 문자 보내는 것이나, 보도자료 내는 것이나, 모두발언 하는 것이나 차이가 없었다. 똑같은 내용으로 채널만 바꿔가며 쓴 것이다. SNS에 보도자료 전문을 그냥 옮겨놓거나, ‘지식 나열형’의 뻔한 글만 쓴다. 그런 것들은 SNS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아닌, 기자들을 위한 콘텐츠다. 기사화만 추구한 것이다. 이준석 대표는 그런 방식을 답습하지 않았다. 우리가 실제 친구들과 온라인상에서 대화하듯이 SNS를 사용했다. 기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콘텐츠가 아닌 SNS에 가장 최적화된 글을 썼고, SNS를 직접 사용하는 유저들과 소통했다. 그래서 밈(Meme)이 형성될 수 있었고, 여러 범위로 활용되며 ‘재생산 기능’을 발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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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조선일보DB

“100m 달리기 10초대 벽 깬 이준석... 이제 다른 청년들이 8~9초대 벽 깨고 나가야”

- 이준석 대표의 당선으로 당내 청년 정치인들의 기대감이 커졌을 것으로 본다. 차기 당권 도전 등 본인의 정치적 미래에 대한 긍정적 신호로 받아들였을 것 같은데.

“당연히 그래야 하고, 또 실제 그렇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사람이 100m 달리기를 할 때 ‘10초 안’으로 못 들어온다고 했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처음으로 ‘마의 벽’이었던 10초대가 깨지고 9초대 기록이 등장했다. 이후 여러 (육상) 선수가 10초대의 벽을 깨기 시작했다. 저는 이준석이라는 인물이 정치권에서 ‘10초대의 벽’을 깨고 ‘9초대의 신기록’을 처음 달성한 사람이라고 본다. 그러니 당 안팎의 청년들이 ‘이게 깨지는 구나’ 하고 기대를 품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도 능력 있는 젊은 정치인들이 얼마든지 당 대표를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이준석 대표가 ‘9초대’를 열었다면, 이제부터는 9초에서 얼마나 더 ‘빨라질’ 것인가가 관건이다. 7초대, 8초대의 신기록을 세우는 건 젊은 정치인들의 몫이다.”

- 그러한 ‘정치적 기록 경신(更新) 주자’에 본인도 포함되지 않겠나.

“물론이다. 다만 시기의 문제다. 언제 내가 새로운 기록을 세울 것인가. 정치를 한다고 했을 때는 큰 뜻을 품고 가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 저희가 (작년) 총선 나갈 때만 해도 ‘30대 국회의원은 너무 어리다’는 말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제는 ‘30대 당 대표’도 있는데 ‘30대 국회의원’이 뭐가 문제가 되겠나.”

- 기수와 서열을 중시하는 ‘운동권 문화’가 짙은 진보정당은 청년 정치인들을 도제식(徒弟式)으로 가르친다고 들었다. 바로 공천을 주기보다는 보좌진이나 당직자로 시작하게 해 ‘정치의 기초’부터 배우게 하고, 이후 어느 정도 실력이 쌓이면 기회를 주는 것이다. 반면 보수정당은 체계적인 가르침을 전해주기보다는, 신언서판(身言書判)이 훌륭한 명문가 자제들만 불러 모아 ‘구색 맞추기 카드’로만 쓰다가 버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험지(險地)에 함부로 공천을 줘서 낙선하면 팽개치는 격이다. 입신양명(立身揚名)에 매몰돼 당장의 공천만 노리며 보수정당에 입당하는 청년들도 문제라는 얘기도 있다. 보수정당의 ‘청년 정치인 양성’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치의 生理만 아는 사람’ 아닌 외부서 전문성 쌓고 정치권 입문하는 人才들도 대우해야”

“일리가 있는 말이다. 민주당은 정치력 자체가 좋고, (정치인들을 잘 길러) 정치조직을 잘 만든다. 사실 우리 당은 오랫동안 집권을 해온 당이기 때문에 인재 수급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은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탄핵정국 이후에 끊임없이 (선거에서) 연전연패(連戰連敗)하면서 수많은 정치인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대체재’가 없었다. ‘사람을 키우지 않는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다만 저는 이렇게도 생각을 한다. 일부 소양을 가진 정치인이 (당내의 정치적) 배움을 통해 길러지는 것도 있지만, 외부에서 쌓은 능력을 지니고 정치권에 들어와 나름의 기량을 펼칠 수도 있는 것이다. 당내에서 인재들이 충분히 발굴되고 길러질 수도 있지만, 외부에서 역량을 갖추고 정치권에 들어오는 것도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리고 (당에 들어온 이후) 배움을 통해 기를 수 있는 정치적 성장의 폭은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국회는 각자가 ‘정치력’과 함께 ‘전문성’을 발휘하는 곳이다. 정치 자체에만 매몰돼있는 사람, 정치의 생리만 몸에 밴 사람보다는 조금 더 (외부에서) 전문성을 갖춘 정치인들이 필요하다. 우리 당이 집권했을 때만 생각해봐도 그렇다. 경제·안보·외교·산업 등 여러 분야에 안목이 있는 사람들이 국정 운영에 있어 탁월한 면모를 보여왔던 것이 사실이다.”

- 당 대표와 가까운 본인에게 앞으로 대선 정국에서 당내 조직을 이끌 일정한 역할이 부여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당 안으로 들어가는 건 지금으로선 생각이 없다. 열심히 방송 활동하고 지역구 관리하는 데 힘쓸 생각이다.”

“링(무대) 밖의 사람들을 위한 정치도 필요... 정치적 해결 필요한 체육계 문제 발굴할 것”

- 이준석 대표 체제에 바라는 점과 앞으로의 계획은.

“저는 이준석 대표의 ‘비판적 지지자’로서 활동할 것이다. 이 대표의 정치적 지향점이 저와 상당히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 역시 많다. 앞으로는 ‘링(무대) 위에 있는 사람들끼리의 정치’가 아닌 ‘링 밖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링만 쳐다보면서, 링이 나의 무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찌 됐든 이준석호(號)가 잘 항해(航海)하면서 대선 승리를 이룩할 수 있도록 제 나름의 역할을 하겠다. 또 ‘운동인 정치인’으로서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체육계 문제들을 계속 다룰 생각이다. 우리 정치권은 그동안 체육계 이슈들을 가벼운 문제로 취급하고 취미 생활 정도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체육계에 발전이 더딘 부분들이 있었는데, 그런 어젠다들도 적극적으로 발굴해서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