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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의 유력한 차기 대권(大權) 잠룡(潛龍)으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부상하는 가운데, 정가(政家)에서는 충청권 대통령의 탄생을 염원하는 이른바 '충청대망론'이 다시금 불붙고 있다. 최근 입당 문제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국민의힘 내 충청권 의원들의 적극적인 협력 의지도 돋보인다. 예로부터 한국정치사에서 "중원의 민심을 잡는 자가 대권을 쟁취한다"는 말이 있었는데, 그간 김종필 전 총리, 이인제 전 의원, 반기문 전 UN사무총장 등이 이루지 못한 '충청의 꿈'을 과연 윤석열 전 총장이 실현시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사실 윤 전 총장의 고향은 충청도가 아닌 서울이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의 부친(父親)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의 고향이 충남이라 사실상 충청권을 지역 배경으로 삼고 있다. 윤 교수는 파평 윤씨 문정공파 12대손으로 충남 공주시 탄천면 장선리와 논산시 노성면 죽림리에서 살았다. 공주와 논산은 행정구역은 다르지만 거리가 2~3㎞에 불과해 서로 인접한 지역이다. 공주시 탄천면과 논산시 노성면 일대에는 지금도 파평 윤씨 일가들이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충청의 권좌, 尹 주인 되나
작금 충청의 권좌(權座)는 사실상 무주공산(無主空山)의 형국이었다. 과거부터 보수세가 짙었던 지역이라 보수당과 중도우파 제3지대의 맹주(盟主)들이 차례차례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지만, 수십 년 연이은 낙마(落馬)로 인해 대망론에 기대를 건 민심이 사그라졌고 한동안 후예들도 나타나지 못했다. 그러다 일생 주류(主流)의 권력과 투쟁해온 윤석열이라는 걸물(傑物)이 정치권에 혜성처럼 등장하면서부터 메마른 충청 민심이 다시금 들불처럼 일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제3의 야권 잠룡'으로 거론되는 충북 음성 출신의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나 진보 성향의 민주당 출신인 양승조 충남지사를 '충청대망론의 적임자'로 지목하기도 하지만, 윤 전 총장의 정치적 무게감과 파급력에 비하면 아직은 미미한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충청 지역 국민의힘 의원들은 충청대망론을 고리로 윤 전 총장에 대한 적극적 구애를 펼치고 있다. 충남 아산의 이명수 의원은 "충청권을 기반으로 충청의 정서를 대변하는 분위기와 연계해서 (윤 전 총장이) 잘 되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할 의사가 있다"고 했고, 충남 홍성/예산군의 홍문표 의원은 "김종필 총재, 이회창 총재, 반기문 총장과 같은 분들이 충청대망론의 중심에 있었다. 윤석열 전 총장도 대망론이 충청에서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했다. 충남 공주의 정진석 의원은 "충청대망론은 국민통합론의 다른 이름이다. 충청대망론의 궁극적 목표는 영호남 패권주의의 폐해를 극복하는 국민통합이 돼야 한다"며 "윤석열 현상은 문재인 정부의 폭주를 막고 심판하고자 하는 국민들이 그를 적격자로 고른 것이다. (충청대망론은) 그러한 맥락과 같다"고 했다.
충청권 野 의원들의 구애, 與 인사들의 위기감
지역 정치권에서도 윤 전 총장의 존재감을 여실히 느끼고 있다. 대전 출신 한 여권 인사는 지난 4월 《내일신문》에 "안희정 전 지사가 빠진 후 차기 정권과 관련해 기대감을 가질 수 있는 여권 인사가 안 보인다"며 "윤석열 전 총장에게 (충청 민심이) 통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전했다. 충남도의회의 한 4선 의원은 지난 3월 《주간조선》에 "윤 전 총장의 연고와는 별개로 그의 선산이 논산에 있다 보니 그에게서 느끼는 연대감이나 동질감이 상당하다"며 "뚜렷한 대권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현 정권을 상대로 해 나온 점은 지역에 강한 인상을 심고 있다"고 전했다. 충청 지역의 한 야당 중진은 "과거 실패의 경험으로 충청 인사의 대권가도는 지역민들의 염원이 됐다. 그때의 좌절감은 현재의 기대감으로 번지는 중"이라며 "윤 전 총장의 기세는 과거 인물들과는 다르다"고 평했다.
"이제는 영·충·호 시대... 충청은 국민 통합 위해 역량 있는 지도자 선택할 것"
육동일 충남대 자치행정학과 명예교수는 지난 3월 《디트뉴스24》에 쓴 칼럼 '충청대망론의 요체는 국민통합이다'에서 "2013년부터 충청 인구수가 호남을 초월하기 시작해서 한국 정치지형에 중대한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2021년 2월 현재, 양 지역 간 인구 차이는 45만 명에 이른다"며 "영·호남 시대에서 본격적인 영·충·호 시대로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이로써 내년 대선은 충청권의 표심이 그 승패를 결정 짓는 중요한 변수로 떠오를 것"이라고 진단했다.
육 교수는 "그렇다고 충청민들은 지역 출신 후보라고 해서 또는 지역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무조건 표를 주지는 않을 것"이라며 "그보다도 지금 시대가 요구하고 있는 국민 통합과 지역 화합을 중심으로 헌법정신과 민주주의의 회복, 국가 경쟁력의 강화, 정치 보복의 근절, 특권과 반칙의 타파, 그리고 분권과 자치를 실현시킬 수 있는 안목과 역량이 있는 지도자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바로 충청대망론이 갖는 진정한 시대적 의미이자 목적이기 때문"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