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최재형 감사원장에 이어 야권(野圈)의 장외(場外) 잠룡으로 꼽히는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의 최근 행보가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김 전 부총리는 퇴임 직후부터 사단법인 ‘유쾌한 반란’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국가·사회 개혁을 목표로 대중 강연과 시민 운동에 매진하고 있다. 그간 총선 출마, 서울시장 도전, 국무총리 권유 등 여권의 연이은 ‘정치 러브콜’이 있었지만 그는 응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갔다. 특히 봉사활동 등으로 시민들과의 접촉면을 넓히면서 ‘민생 살피기’를 한다는 차원에서 그가 ‘보다 더 큰 꿈’, 즉 차기 대권에 도전하지 않겠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高卒신화'의 엘리트 카르텔 비판... 586 기득권 사회 혁파 메시지 될까
더욱이 어려운 집안 환경에서도 자수성가(自手成家)해 ‘고졸 신화’를 쓴 김 전 부총리의 인생 내력은 최근 시대정신으로 떠오른 ‘586 기득권 혁파’ ‘공정 가치의 정립(正立)’과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그는 공직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줄곧 신문 칼럼 등을 통해 자유로운 계층 이동을 위해 ‘기득권·엘리트주의’에 찌든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김 전 부총리는 2014년 2월 10일 자 《중앙선데이》에 쓴 칼럼 ‘경제의 법칙 vs 인생의 법칙’에서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숙제를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한다. 개개인의 한계효용을 높이기 어렵게 만드는 제도나 여건을 개선하는 문제”라며 “무엇보다 패자부활전이 가능한 사회구조를 만들고 소득과 교육격차를 줄여야 한다. 계층 간 상승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이동(social mobility)’을 촉진하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이 특히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같은 신문 2013년 12월 15일 자 ‘킹 핀 쓰러뜨리기’ 칼럼에서는 “일단 진입을 하면 초과이윤이 생기는 시장에 대한 개혁이 필요하다. 독과점 시장, 공공 부문, 사회적 지대(rent)를 누리는 특정 직역(職域)사회 등이다”라며 “이런 ‘엘리트 카르텔’의 벽을 낮춰야 한다. 공무원 시험이나 공기업 입사시험 한 번 합격으로 평생에 걸친 ‘철밥통’을 얻거나 공정경쟁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는 일부 시장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경쟁의 바람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명동성당 무료급식소에서 나라의 미래를 이야기하다
김 전 부총리는 20일 서울 명동성당 내 무료급식소 명동 밥집에서 노숙인 무료급식 봉사에 나섰다. 그는 봉사 직전 기자들과 만나 자신을 여권 인사로 분류한 취지의 민주당 송영길 대표의 언급에 “글쎄, 그건 그분의 생각이시겠지만 제가 코멘트할 얘기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여야 중 어느 쪽에 가깝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도 “하하하하. 이 정도 하시죠”라고 웃어넘겼다. 봉사활동에 대해선 “정치적인 것과 상관없다”며 순수하게 이해해달라고 부탁했다.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별로 없고 과거 이야기를 하고 이상한 것 가지고 싸우는 상황’이라고 진단한 자신의 최근 강연 발언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가 보다 미래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을 두고 토론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어 “급변하는 국제정세, 코로나19, 지구온난화, 그리고 내부적으로도 여러 문제가 있지 않겠나. 이런 것들을 같이 해결하는 측면에서, 살아가면서 미래를 생각해보자는 뜻에서 한 이야기”라고 부연했다. 그는 또 “혁신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다 이뤄져야 하는데, 특히 사람들이 농·어촌 혁신을 어렵게 생각할 수 있다”며 이를 위해 지난주 경북 상주와 안동을 갔다 왔고, 이번 주 충남 서산 어촌(漁村)을 방문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과거 이야기로 싸우는 상황... 정부가 재정 쓴다지만 (국가의) 根本 생각하게 될 것"
1박 2일 일정으로 경북 지역 농가(農家)를 방문한 김 전 부총리는 19일 ‘JTBC’ 인터뷰에서 “그때(공직)도 많이 봤지만 (현장에서) 새로운 것 많이 보게 된다”며 부총리직에서 물러난 뒤 전국 50여 곳에서 만난 시민들에게서 ‘저력을 느꼈다’고 했다. 이어 “제가 만난 우리 국민 저력, 잠재력은 엄청나다. 공동체 생각하는 마음, 애국심 (세계 최고다)”라고 덧붙였다. 김 전 부총리는 작금의 정치 형국이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 별로 없고, 과거 이야기하고 이상한 것 가지고 싸우는 상황”이라며 “(코로나로 인해) 민생 기초가 흔들리면 기본이 무너지면서 경제회복 탄력성이 줄어들 수 있다. (정부가) 재정을 쓴다고도 하고 있지만 사실 근본적인 걸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현 정권에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21일 《한국경제》 보도에 따르면, 김 전 부총리는 여야(與野) 모두 대선 합류를 요청하는 데 대해 “그런 연락이 많이 오는 것은 사실”이라며 “대한민국의 문제는 국가 과잉, 격차 과잉, 불신 과잉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아직도 우리는 관(官) 개입의 중앙통제식이 힘을 발휘하고 있고, 소득 자산 격차로 인한 양극화가 심각해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이르렀으며, 흑백논리와 진영논리로 가득 차 있다”며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그는 오늘날 시대정신인 ‘공정의 가치’를 강조하며 국가 개혁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그의 말이다.

"청년들이 재난지원금 원하나? 창업과 공부의 기회, 실패해도 재기할 기회 달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한줌도 안 되는 소수의 정치 엘리트나 고위 관료 등에 의한 ‘톱다운’ 방식이 아니라 다수의 시민이 주도해야 한다. 지난 2년간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 보니 잠재력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이런 지혜가 모여 에너지가 결집되고 집단지성이 되면 성공할 수 있다. 청년들이 근본적으로 원하는 것은 기본소득, 재난지원금이 아니라 일하고, 창업하고, 공부할 공평한 기회와 실패해도 재기할 기회를 달라는 것이다. 다산은 ‘나라에 털끝 하나라도 병들지 않은 것이 없다. 당장 고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고 나서야 고칠 것’이라며 근본적인 제도 개혁을 주장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