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경기지사의 우리 근현대사, 해방 전후사에 대한 역사관이 도마 위에 올랐다. 소위 '친일 세력, 미(美) 점령군' 발언 논란 때문이다. 이 지사는 2일 경북 안동의 이육사 문학관을 방문한 자리에서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의 정부 수립 단계와 달라서 친일 청산을 못 하고 친일 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서 지배 체제를 그대로 유지했다. 깨끗하게 나라가 출발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국제 정치와 해방 정국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왜곡된 역사관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조선일보》는 3일 사설에서 "대한민국 정부는 우리 역사상 첫 자유민주 선거인 5·10 총선거에 의해 탄생했다. 투표율이 95%를 넘을 정도로 국민적 지지를 받았다"며 "유엔은 대한민국 정부를 대다수 한국인의 자유 의사로 선출된 유일한 정부라고 결의했다. 어떤 나라 정부보다 투명하게 민주적 절차에 따라 수립됐다"고 반박했다.
《조선일보》는 "대한민국 초대 정부의 이승만 대통령은 세계가 인정하는 반일 독립투사였다. 그의 반일은 지나칠 정도였다, 역사 책을 읽으면 곧 알 수 있다"며 "이시영 부통령은 상해 임시정부 내무총장, 이범석 총리는 광복군 참모장, 이인 법무장관은 항일 변호사, 조봉암 농림장관은 좌파 독립운동가였다. 초대 내각 대부분이 항일 인사로 채워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반면 북한은 소련에 협력하면 친일파를 장관에 기용했고 반대하면 조만식과 같은 항일 독립운동가도 숙청했다"고 덧붙였다.
《조선일보》는 "미국이 우리를 일제로부터 해방시켰는데 미군이 해방군이지 어떻게 점령군인가. 미군이 일제를 패망시킨 것이 잘못된 일인가"라며 "우리 사회 일부 세력은 해방 후 역사를 집요하게 왜곡해왔다. 적어도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만은 단편적인 역사 지식으로 대한민국의 기적적 성공 역사를 폄훼하지 말았으면 한다"고 비판했다.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전 《월간조선》 대표, 편집장)는 같은 날 '이승만(李承晩) 정부는 독립투사 내각, 김일성(金日成) 정부는 비명횡사(非命橫死) 내각'이라는 제하의 글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원문 자체가 국한문 혼용체임을 미리 밝혀둔다.
[1. 소위 조선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의 초대 내각 명단을 보자.
수상 金日成, 부수상(외무상 겸임) 朴憲永(처형), 부수상(산업상 겸임) 金策, 부수상 洪命熹, 내무상 朴一禹(숙청), 민족보위상 崔庸健, 재정상 崔昌益(처형), 사법상 李承燁(처형), 상업상 張時雨(처형), 교통상 朱寧夏(처형), 노동상 許成澤(처형), 국가검열상 金元鳳, 도시 경영상 李鏞, 교육상 白南雲, 문화선전상 許貞淑, 농림상 朴文圭, 보건상 李炳南, 보위성부상 김무정(처형), 최고회의 의장 許憲, 최고회의 상임위원장 金枓奉(숙청). 이상 20명 중 10명이 사형되거나 정치범 수용소에서 사라졌다. 非命橫死 내각인 셈이다.
2. 대한민국 초대 내각을 본다.
대통령 李承晩(상해임시정부 초대 대통령), 부통령 李始榮(임시정부 재무총장), 국회의장 申翼熙(임시정부 내무총장), 대법원장 金炳魯(抗日변호사), 국무총리 李範奭(광복군 참모장), 외무장관 張澤相(청구구락부 사건으로 투옥), 내무장관 尹致暎(흥업구락부 사건으로 투옥), 재무장관 金度演(2·8독립선언 투옥), 법부장관 李仁(抗日 변호사), 국방장관 李範奭 겸임, 문교장관 安浩相(철학교수), 농림장관 曺奉岩(공산당 간부·사형), 상공장관 任永信(독립운동, 교육가), 사회장관 錢鎭漢(抗日 노동운동가), 교통장관 閔熙植(철도교통 전문가), 체신장관 尹錫龜(교육 사회운동가), 무임소 장관 李靑天(광복군 총사령관), 무임소 장관 李允榮(抗日 기독교 목사), 국회부의장 金東元(수양동우회 사건으로 투옥), 국회부의장 金若水(사회주의 독립운동).
이상 19명은 거의 전부가 독립운동을 한 사람이다. 친일파는 한 사람도 없다. 反共反日을 國是로 삼다시피한 李承晩 대통령이 親日한 사람을 장관으로 기용할 리가 없었다.]
책 《대한민국 이야기》(이영훈, 기파랑, 2007)에는 이 같은 내용이 나온다.
[어쨌든 숨김 없는 사실은 우리 민족은 아시아와 태평양의 헤게모니를 두고 일본이 미국과 벌인 전쟁 덕분에 미국에 의해 해방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 민족은 미국이 일본 제국주의를 강제로 해체시키는 통에 해방되었습니다. 1980년대까지 거대한 유라시아 대륙의 대부분이 소련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국제체제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 대륙의 동쪽 끝에 하나의 점과 같은 한반도의 남부가 사회주의 국제체제의 바깥에 놓인 것을 무엇으로 설명해야 합니까. 그것은 차라리 기적과 같은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한국전쟁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 전쟁은 소련의 스탈린이 한반도의 남쪽을 자기 진영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목적에서 기획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전쟁은 미국에 의해 방어되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미국은 그들의 젊은이 3만여 명의 목숨을 희생해가며 그 전쟁에 개입했습니까. 전 세계를 사회주의 진영의 공세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동서냉전에서 질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니까 정부 수립 이후 지난 60년간 한국인들이 누려온 신체의 자유, 기회의 평등, 대의민주주의 등의 기초적 가치는 세계사에서 그러한 정치 원리에 입각한 국가의 효시를 이루면서 그러한 원리로 세계를 통합하고자 했던 미국 체제를 배제하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역사적 현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