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재형 전 원장의 부친 최영섭 예비역 대령이 8일 소천했다. 최 예비역 대령은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가족들에게 전하는 '유음(遺音·죽기 전에 남기는 말)'의 글을 매년 작성해왔다. 최 예비역 대령의 저서 《바다를 품은 백두산》(프리덤앤위즈덤 출판)에 '2020년 유음'의 전문(全文)이 수록돼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최 예비역 대령은 지난해 5월 2일 작성한 유음의 글에서 "2년 전 2018년, '내 여생은 세월이 아니라 시간'이라고 말했다"며 "언제 이사를 떠날지 알 수 없기에 2018년 3월 31일 그리고 2019년 3월 31일 스탠포드호텔에서 유음을 전했다"고 밝혔다. 최 예비역 대령은 '죽음'을 '이사'라고 표현했다.
그는 "인간의 수명은 내가 쓸 수 있는 시간의 적분(積分)"이라며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소중한 시간이다. 어떻게 잘 써야 하나. 수명은 길이보다 깊이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이어 "파란만장(波瀾萬丈)한 인생,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주어진 사명이 있다. 본분(本分)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명은 마무리가 중요하다. 인생의 결산이다. 천평칭(天平秤) 저울에 달아보자"며 "우측에 자기 욕구를 위해 쓴 시간의 적분을, 좌측에 이웃, 사회, 국가, 민족 등을 위한 봉사·이타(利他)에 쓴 시간의 적분을. 어느 쪽으로 기우는가? 좌측이면 좋다"고 했다.
최 예비역 대령은 자기 욕구를 위하기 보다 이웃, 사회, 국가, 민족을 위한 봉사와 이타에 더 많은 시간을 쓰라고 자녀들에게 권면했던 것이다. 또한 유언으로 최 전 원장에게 "대한민국을 밝혀라"라는 글과 함께 "소신껏 하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장례식을 치르며 취재진에게 아버지의 유언만 전했을 뿐 향후 행보에 대한 말을 아꼈던 최 전 원장. 아버지 최영섭 예비역 대령이 남긴 유언과 유음이 그를 어떤 선택으로 이끌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하는 최영섭 예비역 대령이 남긴 '2020 유음'의 글 전문(全文).
사랑하는 식구들에게
2년 전 2018년, '내 여생은 세월이 아니라 시간이다'고 말했다. 언제 이사를 떠날지 알 수 없기에 2018년 3월 31일 그리고 2019년 3월 31일 스탠포드호텔에서 유음을 전했다.
지난 해 증손(曾孫) 서로(瑞路)와 해성(海星)이 출생했다. 내 증손이 10명이다. 크나큰 축복이다.
지금 질병으로 온 세계가 혼란에 빠졌다. 우리나라에도 휘몰아치고 있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 식구 모두 힘써 자기 몫을 다하고 평강함에 감사할 따름이다.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 했다. 너희들의 정성 어린 효성으로 93년이란 긴 세월을 보람 있게 살고 있다. 특히 '삼식(三食)'이 늙은 아비를 정성으로 봉양하는 명희, 수고 많다.
나는 인생절일(人生節日)마다 너희들의 축연(祝筵)을 받아왔다. 회갑, 고희, 희수, 산수, 미수, 금혼식, 그것도 일가친척, 교우, 동기, 선후배를 초대하여...
인간의 수명(壽命)은 내가 쓸 수 있는 시간의 적분(積分)이다.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소중한 시간이다. 어떻게 잘 써야 하나. 수명은 길이보다 깊이가 더 중요하다.
파란만장(波瀾萬丈)한 인생,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주어진 사명이 있다. 본분(本分)이다.
수명은 마무리가 중요하다. 인생의 결산이다. 천평칭(天平秤) 저울에 달아보자. 우측에 자기를 위해 쓴 시간의 적분을 <수신제가(修身齊家) 본분 이외에 자기 욕구를 위해 쓴 시간>, 좌측에 봉사, 이타(利他)를 위해 쓴 시간의 적분을 <이웃, 사회, 국가, 민족 등>. 어느 쪽으로 기우는가? 좌측이면 좋다.
인생은 W와 T자 사이의 삶이다. Womb-Tomb(자궁-묘지). 폴란드 출신 영국 인류학자 브로니슬라브 말리노프스키는 말했다. '인생은 사랑하다 죽노라.' 장자(莊子)는 '죽음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 두려울 것도 싫어할 것도 없다.'
죽음은 인생의 완성이요. 새로운 시작이다. 죽음은 영원(永遠)에 동참하는 영적인 삶의 새로운 탄생이다. 사즉생(死則生)이다. 나무의 일생을 보라. 자라서 잎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때가 되면 잎은 떨어져 흙으로 돌아가 거름이 되고, 열매는 떨어져 새 생명을 싹 틔운다.
생년불만백(生年不滿百) 상회천년우(常懷千年憂). 사람이 백년도 못 하는데 천년을 살 것처럼 근심 걱정 탐욕을 하는구나.
이사를 떠나면서 '신세 많이 졌습니다. 나는 별로 이룬 것이 없지만 태어나서 여러분과 같이 살아온 것이 행복했습니다. 고마워요 안녕' 미소 지으며...
성공학 학자 스티븐 코비 박사의 가족사명서. '우리 가족의 사명은 신앙, 질서, 신뢰, 사랑, 행복, 휴식을 제공하는 가정이 되게 하고, 각자가 책임 있고 독립적이게 하며, 사회봉사를 위해 효과적이고 상호의존적이 되도록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코비 박사의 슬하에 9명의 자녀와 19명의 손주가 있다.
일모도원(日暮途遠)이지만 보람있는 인생길을 걸어가고 있다. 나는 너희들이 있어 행복하다. 애썼다. 사랑한다.
2020년 5월 2일 일산에서
순호(舜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