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시내 한 대형 병원 신생아실. 사진=조선일보DB

미국 싱크탱크 피터슨국제연구소(PIEE)가 한국의 합계출산율 하락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며, 그에 따른 생산인구 감소가 코로나19 여파보다 더 큰 충격을 한국 경제에 줄 수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23일 용혜인 의원실(기본소득당)은 기획재정부의 의뢰를 받아 제작된 PIEE 보고서 '코로나19 대유행의 광범위한 영향: 한국의 재정 전망 및 출산율 전망'(The pandemic’s long reach: South Korea’s Fiscal and Fertility Outlook)을 공개했다.

보고서는 한국이 코로나19 대유행에 성공적으로 대응한 결과 전면적 경제 봉쇄를 피하고 경기부양책을 G20 회원국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규모로 썼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코로나19에도 정부 순부채를 GDP 대비 약 1/4로 낮게 유지하는 등 다른 선진국에 비해 재정 상황이 크게 악화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은 코로나19 이전부터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급격한 인구구조 변동을 겪는 중이고 코로나19는 그 변동을 가속했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2020년 한국 합계출산율은 0.84로 사상 최저이며 이는 G20 국가 가운데 가장 낮다. 한국은 2010~2020년 사이 출산율이 1.23에서 0.84로 32% 감소했는데 이는 G20 및 주요 국가 중 가장 가파른 감소다. 대표적인 고령화 국가인 일본은 2010~2020년에 출산율 1.38에서 1.35로 2%만 감소했을 뿐이다. 싱가포르는 2010년 출산율이 1.21로 한국보다 낮았으나 2020년에는 한국보다 높은 1.1이다.  

보고서는 한국이 현재 속도대로 생산인구가 감소하고 부양비율(total dependency ratio)이 증가하면 경제에 상당한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경고했다. 한국의 생산인구는 2018년 약 3760만 명으로 정점을 찍고서 2060년대 초 2000만 명으로 가파르게 떨어질 전망이다. 한국의 부양비율은 2015년에 36.2였는데 이는 생산인구 세 명이 아동이나 노인 등 피부양인구 한 명을 부양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2030년까지 부양비율은 53으로 증가해 생산인구 두 명이 한 명을 부양한다. 2055년 부양비율은 100에 이르는데, 생산인구 한 사람당 한 명을 부양하게 된다. 

보고서는 한국에서 출산율이 떨어지는 이유로 ▲고학력 여성의 결혼 기피 ▲여성의 과도한 가사노동 부담 ▲혼인한 부부 외의 가정에서 양육되는 자녀에 대한 법적·사회적 차별 ▲상대적으로 높은 교육비 부담 등을 지적한다. 

고등교육을 받은 한국 여성의 비율은 76%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반면 무급 가사노동의 85%를 여성이 수행하며 이는 OECD에서 인도, 일본, 터키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다. 높은 가사노동 부담은 고학력 여성에게 결혼의 매력을 떨어뜨린다. 또 한국은 가구 가처분소득 대비 교육비 지출 비중이 약 14%인데 이는 칠레, 영국과 함께 OECD 최상위권이다. 높은 교육비 지출 부담은 출산을 기피하는 경향으로 이어진다.  

한국 정부는 장래인구추계(중위추계)에서 합계출산율이 2040년까지 1.27로 51% 반등하리라고 전망한다. 현재 일본의 합계출산율보다 조금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보고서는 합계출산율이 반등이 쉽지 않다고 지적한다. 다른 나라에서 출산율이 반등한 바 있지만 한국 정부가 기대하는 정도의 반등은 아니기 때문이다. 가령 덴마크는 1983년~2008년 출산율이 1.38에서 1.89로 37% 반등했고, 스웨덴은 1999년~2010년에 1.50에서 1.98로 24% 올랐다. 그러나 이들 국가는 사회안전망, 양육지원, 사회규범 등이 한국과 많이 다르고 한국처럼 낮은 합계출산율을 경험하지도 않았다.  

용혜인 의원은 "출산율 제고가 국가의 최우선 목표일 수는 없다"면서도 "출산율을 떨어뜨리는 요인은 국민의 행복을 저해하는 요인이기도 하므로 이를 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가사노동의 성별 불평등을 해소하려면 남녀 모두 일터에서 일하는 시간이 줄어야 한다"며 "차별을 없애고 삶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 소득 불안을 줄이고 경제적 안정성을 높이는 것이 먼저다. 출산율 반등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