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30일 국민의힘에 입당(入黨)한 야권의 대선주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발 빠르게 당심(黨心) 잡기에 나섰다. 본인 캠프의 청년특보가 대표로 있는 청년 정치 조직을 탐방하고 초선 의원들의 공부모임 강연자로 참여하는 등 ‘신흥(新興) 세력 규합’에 나섰다. 김종인·금태섭 등 당 밖의 ‘중도 인사’들과도 접촉하면서 외연 확장 노력 또한 계속하고 있다. 2일에는 당 지도부를 예방해 입당 축하식을 치르면서 당의 ‘제1후보’로 승인받기 위한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앞서 윤 전 총장의 입당을 촉구한 국민의힘 의원은 40여 명, 원외 당협위원장은 72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총장이 이들을 지지 기반으로 삼아 당 장악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날 오전 국민의힘 초선 공부모임 ‘명불허전 보수다’ 강연자로 나선 윤 전 총장은 입당 전 민생 투어에서 느낀 점을 의원들에게 공유했다. 그는 “의원님들과 정치적 행동과 목표를 같이하는 당원이 되니까 진짜 정치를 시작하는 것 같다”며 “과격한 충격을 주는 제도들이 사람들의 삶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실감했다”고 전했다.
이어 문재인 정권에 대한 날 선 비판이 이어졌다. 윤 전 총장은 현 정부의 신도시 건설 등 부동산 정책에 대해 “서울에서 50∼60㎞ 떨어진 곳에 신도시를 지으면 거기 회사가 있나 뭐가 있나”라며 “무슨 생각으로 국민이 주택 소유자가 되지 못하게 저지하는 건지, 결론이 뻔하지 않냐. 핵심 세력은 카르텔로 뭉치고, 엷은 지지세력은 포퓰리즘으로 감싸 안고, 국민이 아닌 집권을 위한 선거전략을 일상 행정에도 적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윤 전 총장은 여성 할당제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우리 인식이 조금 더 바뀌어 나간다면 굳이 할당제 같은 것이 없어도 여성의 공정한 사회 참여와 보상이 이뤄질 수 있지 않겠느냐”며 “페미니즘이라는 것도 건강한 페미니즘이어야지, 정권을 연장하는 데 악용돼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페미니즘이라는 게 너무 정치적으로 악용돼 남녀 간의 건전한 교제도 정서적으로 막는 역할 많이 한다는 얘기도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정치권 일각의 ‘내각제 개헌 주장’에 대해서는 “집권 기간 내내 아무 말 없다가 느닷없이 내각제 하자는 건 야합도 아니고, 이런 식의 개헌 논의는 헌법에 대한 모독”이라고 받아쳤다. 대권 도전과 관련해서는 “총장 퇴임할 때만 해도 이런 생각을 갖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보면 불행한 일이고, 패가망신하는 길”이라며 “이게 가문의 영광이고 개인의 광영이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검사의 숙명으로 전직 대통령 사법 처리도 해봤지만, 그게 한국의 현실”이라고 밝혔다.
윤 전 총장은 강연을 마친 뒤 당 지도부를 예방, 이준석 대표에게 꽃다발을 받는 등 입당 축하식을 치렀다. 그는 “입당을 환영해준 당과 지도부, 당원께 깊이 감사드린다. 국민의힘과 함께, 다양한 국민과 함께 정권 교체를 확실하게 해낼 수 있도록 모든 걸 바치겠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이 정도면 대동소이가 아니라 대동단결, 일심동체다. 결국 우리는 하나라는 것을 강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윤 전 총장은 입당 이튿날인 지난달 31일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등 소위 당외 중도 인사들과 회동하기도 했다. 추종 의원들은 많으나 아직 당내 세력이 부족한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에 안착하기 위해 김종인 등 당 밖의 중립적 정객(政客)들에게 정치적 조언을 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윤 전 총장 측은 반문(反文) 진보의 상징인 금 전 의원과도 ‘정권 교체에 뜻을 같이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윤 전 총장 측이 당 안에서 캠프를 가동, 금 전 의원 등 중도 인사들을 포섭해가면 사실상 제3지대가 국민의힘에 흡수되는 형국이 조성될 수 있다. 국민의힘과 ‘합당 샅바 싸움’을 지속하고 있는 안철수 대표의 국민의당 세력의 입지도 그만큼 좁아지게 된다. 금 전 의원에 앞서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등 현 정권에 반대하는 진보 인사들을 만나기도 한 윤 전 총장은 현재 ‘조국 흑서’ 저자인 서민 단국대 교수, 김경률 회계사 등과의 접촉도 물밑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총장은 다음날인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정치 카페 ‘하우스’에서 열린 장예찬 청년특보의 2030 싱크탱크 ‘상상23’ 오픈 세미나에 참석했다. 그는 이 행사에서 청년들과 만나 “정부나 기성세대는 청년들에 비하면 아젠다를 만들어낼 역량이 안 된다 싶다. 청년 세대가 국가 정책 개발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며 “이념 등 기득권 카르텔에 편입돼 있지 않고 사고가 자유로운 청년세대의 아이디어가 국가가 지향해야 하는 실용주의, 실사구시, 탈이념에 딱 부응한다”고 독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