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일교포 북송(北送) 사업으로 북한에 들어갔던 탈북민들이 북한 정권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의 첫 재판이 오는 10월 일본에서 열린다.
6일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이 소송을 낸 탈북민 가와사키 에이코(川崎榮子·79)씨와 대리인 후쿠다 겐지 변호사는 전날 도쿄 법조기자클럽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그간 6차례에 걸친 준비 서면 제출을 마무리했다"며 "10월 14일쯤 첫 구두변론이 열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소송을 제기한 지 약 2년 반만이다. 이들은 구두변론에서 가와사키씨 등 탈북자 원고 5명과 전문가 심문도 이뤄질 전망이라고 밝혔다.
가와사키씨를 포함한 탈북자 5명은 지난 2018년 12월 "''북한은 지상 낙원'이라는 북한의 거짓말에 속아 '귀환 사업(북송 사업)'에 참가해 북한에 갔다가 인권을 억압당했다"며 북한에 총 5억엔(약 51억원)의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도쿄지방법원에 냈다. 북한에서 충분한 식량을 배급받지 못했고 출국도 금지당했다는 것이다.
가와사키씨는 6일 《조선일보》와의 통화에서 "북송 사업이 정상적인 사회에선 있을 수 없는 인간의 자유를 짓밟는 행위라는 점을 이번 판결로 세상에 명확히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1959~1984년 사이 북송 사업을 통해 북한으로 이주한 재일 교포와 그 가족은 9만30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일본 정부는 이를 일제 시대에 끌려온 재일 교포를 한반도로 돌려보낼 기회로 보고 암묵적으로 지원했다. 가와사키씨 등 원고 5명은 모두 1960~1970년대 허위 선전을 믿고 가난과 차별을 피해 북한에 갔다가 2000년대 탈북한 사람들이다. 이후 일본으로 돌아온 탈북민도 수백명에 달하지만, 북한 정부를 상대로 소를 제기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재일교포 탈북민이 당시 북한 정권과 함께 북송 사업을 추진했던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시효 만료와 증거 불충분 등으로 기각된 바 있다. 이 때문에 가와사키씨 등은 북한 정권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북한 정권이 거짓말을 해서 북한으로 데려간 뒤 출국을 막은 것은 '납치 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일본 민법상 '납치 행위'에는 불법행위의 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
또 국제법상 외국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은 '주권면제' 원칙에 따라 성립되지 않지만, 북한이 국제적으로 미승인 국가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들은 또 북한 정권에 의해 억류당해 가혹 행위를 당하다가 귀국 직후 사망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부모가 미국 법원에 북한 김정은을 상대로 소를 제기한 전례를 참고해 달라고 했다.
일본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재판을 개시함에 따라 앞으로 북한 정권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거론된다. 북한은 일본과 국교가 없어 대사관 등 정부를 공식 대표하는 기관도 일본에 없다. 이 때문에 도쿄지방법원은 소장 등 관련 서류를 보낼 곳을 특정하지 못해, 공시 송달 역시 법원 게시판에 관련 서류를 게시해두는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한편, 가와사키씨는 자신이 경험한 북송 사업과 북한 정권의 실체를 소설 형식으로 담은 책 '일본에서 북한으로 간 사람들의 이야기'(다큐스토리)를 지난달 30일 국내 출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