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TV조선 캡처

이슬람 극단주의 신봉 테러 단체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정권을 장악한 가운데, 국내외 외교안보 전문가들이 북한의 동향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나섰다. 북한이 탈레반 집권에 자극받아 대남 적화 공세를 가속화할 가능성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일개 무장세력으로 보병 중심에 재래식 무기가 전부인 탈레반과 달리, 6.25 남침으로 국제적인 대전(大戰)을 경험한 바 있는 북한의 군사력은 차원이 다르다. 정예의 인민군대, 공작조직, 사이버 부대는 물론 장사정포와 각종 미사일 등 현대식 중화학 병기부터 생물무기, 수십 기의 핵(核)무기까지 다종다양(多種多樣)의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모두가 남침을 통한 한반도 적화통일의 야욕을 실현하기 위해 만든 것들이다. 대남 적화는 김일성의 교시다. 탈레반이 여성과 아동을 노예로 부리는 이슬람의 악법(惡法)을 신봉하듯, 김씨 독재 정권과 그 추종자들은 전범(戰犯) 김일성을 신으로 받든다. 백두혈통이니, 위대한 영도자요 민족의 지도자라는 날조적 수사(修辭)로 인민들을 세뇌시키려는 것만 봐도 그렇다.

북한은 6.25 이후 70년 넘게 숱한 대남 도발과 국지전, 공비-간첩 등 요인 남파에다 종북(從北) 지하당의 숙주 노릇까지 자행해왔다. 핵 포기의 대가로 국제 원조를 받아왔으나, 핵 개발은 미국 및 한국 대통령과의 비핵화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지속됐다. 그런 북한의 한반도 평화 맹약은, 아직 과도정부기인 탈레반이 국민 인권 보호에 앞장서겠다는 기만과 다를 바 없다. 북한은 줄곧 대한민국에 주한미군 철수와 대북 제재 해제를 위한 미국 설득을 요구해왔다. 탈레반의 아프간 재집권을 목도한 김정은의 마음이 달아올랐을 것이다. 따라서 기존의 거듭된 요구는 강압적 협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군과 휴전을 약속한 뒤 카불을 집어삼킨 탈레반의 습격은 한반도에서도 재현될 것인가.

지금 북한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에번스 리비어 전 미국 국무부 수석부차관보는 《조선일보》에 "북한은 아프간의 교훈을 한국에 적용하려 시도하며 한국 내 분열을 획책하고 한미 동맹을 약화하며 미군의 한국 내 주둔 근거를 약화시키려는 노력을 배가할 것"이라고 전했다. 반길주 인하대 국제관계연구소 전임연구원은 《파이낸셜뉴스》에 "북한은 미군 철수로 촉발된 군사적 공백을 이용해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한 것을 보고 한미를 상대로 싸우지 않고 이겼다는 심리적 성취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국회 외교통(通)으로 불리는 박진 국민의힘 의원은 "아프간 함락은 (탈레반처럼 반미 노선인) 북한을 자극해 한반도의 안보에도 위협을 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한반도에서도 '제2의 아프간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며 한미 동맹 및 안보 태세 강화를 주문했다. 김숙 전 주(駐)유엔대사는 《문화일보》 칼럼 '동맹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에서 "이번 아프간 사태도 지난 20년간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변화해 오다가 파국은 순식간에 왔다. 베를린 장벽 붕괴의 경우도 처음에는 천천히, 그러다가 갑자기의 패턴이었다"며 "북한도 가중된 경제난과 김정은의 건강 이상설 등이 간단없이 제기되고 있다. 언제 급박한 상황이 도래할지, 항상 대비하고 깨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대사는 "동맹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우리는 항상 자조(自助)와 자강(自强)을 깊이 새겨야 한다"며 "그런데 연합훈련 연기를 촉구하는 연판장에 74명의 국회의원이 서명하고, 국립외교원장은 연합훈련이 필요 없다고 말한다. 정부는 북한 김여정의 눈치를 보며 연합지휘소 훈련을 축소 진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전 대사는 "현 정부의 외교·안보·국방은 무척추동물처럼 흐물거리며 위축돼 패배감에 사로잡혀 있고 고쳐질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며 "내년 5월에 들어설 새 정부는 무엇보다 먼저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 그 첫 번째 조치가 동맹 복원의 가시적 조치로, 1993년 이후 사라진 팀스피리트 훈련을 재개하는 일이다"라고 촉구했다.

박휘락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교수는 《스카이데일리》 칼럼 '아프가니스탄 사태, 남의 나라 일 아니다'에서 "다수의 언론에서 현재의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1975년의 베트남과 비교하고 있다. 둘 다 미군이 철수하자마자 기존 정부가 붕괴되었기 때문"이라며 "둘 다 미군에 의존한 채 스스로 지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이들 국가와 분명히 다를까?"라고 반문했다.

박 교수는 "북핵 위협이 너무나 심각해졌지만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는 물론이고 군대조차 핵 대비에 진지하지 않다. 여당의 대통령 선거 후보자들이 벌인 수 차례 토론에서 한번도 안보 문제가 중요한 토론 주제가 되지 않았다"며 "한국군은 북한을 적으로 부르지도 못하는 상황이고, 자체적인 북핵 대비책을 적극적으로 강구하고 있지도 않다. 미군이 철수한 상태에서 북한이 핵무기 수 발을 한국의 주요 도시에 투하하면 한국도 아프가니스탄처럼 삽시간에 붕괴되지 않겠는가?"라고 경고했다.

박 교수는 "불편한 진실이지만, 현재 한국에서 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억제하고, 국민도 안심한 채 생업에 종사하도록 하는 핵심 요소는 주한미군과 미국의 안보 지원이다"라며 "미국의 '핵우산(nuclear umbrella)' 없이 핵무장한 북한으로부터 우리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진단했다.

박 교수는 "그런데 우리 내부에는 '자주'라는 감정적 사치에 빠져서 종교처럼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지식인일수록 이러한 감정적 사치가 더욱 심하다"라며 "아마 아프가니스탄의 지식인들도 얼마 전까지 유사한 논리를 주장했을 것이다. 한미 동맹 강화 이외에 우리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서는 없다는 점을 인정하라"고 지적했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전 국가안보전략연구소장)는 《세계일보》 칼럼 '청주 간첩단 사건과 아프간 함락'에서 "최근 아프가니스탄 사태는 남의 일이 아니다. 자신의 안보를 자신이 지킬 의사가 없다면 나라가 망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며 "과거 남베트남이나 2021년 아프간이나 적과 내통하는 간첩들의 이적행위는 나라가 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단단한 제방도 작은 틈새로 무너진다"고 말했다.

남 교수는 "청주에서 시작된 간첩 활동이 전국으로 확대될 경우 종착지는 명약관화하다.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접수하듯이 평양이 서울을 접수하는 시나리오가 결코 어불성설이 아닐 수 있다"며 "1975년 남베트남 패망에 이어 아프간 함락은 우리에게 많은 안보상의 과제를 던져 주었다. 청주 간첩단 사건을 철저히 수사하고 단죄해야 하는 이유가 나라 밖 지구 서쪽에서 들려오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