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전(前) 검찰총장 아내 김건희씨를 두고 이른바 ‘쥴리’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월간조선이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의 김건희씨 모습이 담긴 사진 3장을 최근 발매된 2021년 9월호를 통해 단독 공개했다. ‘윤석열 김건희 관련 X파일’ 등에 따르면,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은 이른바 김건희씨가 ‘쥴리’라는 가명(假名)으로 술집 호스티스로 일했다는 시기다.
월간조선이 입수한 사진은 1998년 당시의 김건희씨 모습이 담겨 있는 사진 1장과 2001년에 촬영된 김건희씨 관련 사진 2장이다. 월간조선은 이 사진들과 함께 이 시기 김건희씨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지인들의 증언을 통해 그녀의 삶을 역추적했다.
취재 결과, 월간조선은 김건희씨가 해당 시기 ‘쥴리’라는 예명을 갖고 술집 호스티스로 일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먼저, 1998년 촬영된 김건희씨 사진을 살펴보면, 당시 김건희씨의 나이는 26세였다. 숙명여대 교육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시기다. 월간조선이 입수한 사진에서 보듯, 김건희씨 주변에 어린 학생들이 몰려 있는 게 눈에 띈다. 김씨 지인 A씨는 조성호 월간조선 기자와의 통화에서 “내겐 김건희란 이름보다는 김명신이 익숙하다”고 했다. ‘김명신’은 김건희씨의 개명(改名) 전 이름이다. A씨는 이런 말을 기자에게 들려줬다.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사진은 김명신씨가 중학교에서 미술 교생 실습할 때 촬영한 겁니다. 김명신씨는 서울 광진구 광장동에 있는 광남중학교에서 교생 실습을 했어요. 교육대학원에서 공부하면 으레 교생 실습을 나가잖아요? 김씨도 그런 과정을 밟은 거죠. 김명신씨는 평범한 대학원생이자 교생,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어요.”
A씨는 “지금도 그렇지만 교생 실습을 나가면 눈코 뜰 새 없는 게 현실”이라며 “일종의 ‘인턴십’ 과정이라 학교에서 허드렛일을 도맡아 해야 한다. 그러니 얼마나 바빴겠느냐”고 반문했다. A씨에 따르면, 당시는 김대중 정부 출범과 맞물려 이른바 ‘교육개혁’ 바람이 불던 때였다. 교육부에서 하달되는 각종 업무 지시와 협조 공문으로 인해 일선 중·고등학교가 매우 분주했던, 몇 안 되는 시기였다고 한다. A씨는 “그런 상황에서 김명신씨가 술집에서 일했다는 건 누가 봐도 코미디 같은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2001년 촬영된 사진은 김씨가 미술 작가로 활동하던 시기에 찍은 것이다. 그해 7월, 서울 관훈동 단성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을 때 촬영한 사진이다. 김건희씨가 개인전을 연 사실은 같은 해 7월9일자 《경향신문》에도 보도가 됐다. 당시 기사 전문이다.
〈여성 서양화가 김명신씨의 첫 번째 작품전이 (7월) 11~17일 서울 관훈동 단성갤러리에서 열린다. 황토색과 회색빛이 주조를 이루는 ‘노스탤지어’ 제목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어릴 적 할머니에 대한 추억으로부터 고향의 정취와 따뜻한 인간애까지, 오랜 추억을 지닌 오브제들을 오려 붙이고 나이프의 끝으로 물감을 덮고 지운 작업들이다. 경기대 회화과와 숙명여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대한민국 미술대전과 구상전 등에서 활동했다.〉
개인전 관련 사진 중 한 장은 개인전을 열면서 가진 다과회 장면이며, 또 다른 한 장은 단성갤러리 앞에 설치된 개인전 홍보 플래카드를 촬영한 사진이다. 이로써 2000년대 초반부터 김건희씨가 미술 작가로 활동하고 있었다는 사실 역시 증명된 셈이다.
김건희씨 지인 B씨는 “명신이는 자기 일에 애착이 강했다”며 “작가로서 자기 영역을 구축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이 있을 정도로 일에 몰두했다”고 회상했다. B씨 역시 일각에서 제기된 ‘술집 호스티스설’에 대해 “명신이는 내가 아는 갤러리에서 일한 적도 있었다”며 “술집에서 일했다는 말도 안 되는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이들은 전부 처벌받아야 마땅하다”고 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조선 9월호 참조.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A&nNewsNumb=202109100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