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하반기 대선 정국을 앞두고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정치권 복귀가 점쳐지고 있다. 최근 정가(政街)에서는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 대선캠프에서 선대위원장 격으로 영입하려 한다는 설이 돌고 있다. 김 전 위원장은 장관에 청와대 수석, 비례대표 5선(選)을 거쳐 여야(與野) 비대위원장을 지내는 등 화려한 정치 이력으로 일명 ‘여의도 차르’로 불린다.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 비대위를 지휘해 20대 총선과 지난 4.7 재보선을 승리로 이끄는 등 당의 수장(首長)으로서 지도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이렇듯 남다른 경륜 때문에 정계 원로로서 최근 당 지도부와 대선주자 간 갈등 같은 국민의힘 당내(黨內) 잡음을 일소하는 역할을 요구받고 있기도 하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29일 지역 민방 9개사 특별 대담에서 “김 전 위원장은 재보선 승장(勝將)이고 (그분에게) 경외심을 표한다”며 “김 전 위원장이 (당을 다시) 돕겠다고 하시면 버선발로 나가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의 총괄 관리자냐, 윤석열 캠프 좌장이냐
김 전 위원장의 다음 행로(行路)는 어디일까. 다시 당의 총괄 관리자가 될까, 윤 전 총장 대선캠프로 합류할까. 사실 김 전 위원장은 윤 전 총장의 총장직 사퇴 전후로 ‘별의 순간’을 언급하는 등 윤 전 총장 측에 러브콜을 보냈지만 두 사람의 제대로 된 만남은 한동안 이뤄지지 못했다. 김 전 위원장의 ‘장고(長考) 제안’에도 조기 입당(入黨)을 택한 윤 전 총장의 행보를 놓고 ‘두 사람 사이가 더 멀어진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그러다 윤 전 총장이 본격적인 대권 행보에 나서면서부터 양측의 거리는 다시 가까워졌다. 최근까지 전화 통화, 양자 회동 등 양측의 접촉이 활발히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달 4일 서초구의 한 식당에서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나 대화를 나눴다는 보도가 나왔고, 입당 이튿날인 같은 달 31일에는 윤 전 총장이 직접 김 전 위원장의 광화문 사무실을 찾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7일에는 정갑윤 전 국회부의장 주선으로 서울 종로구 한식당에서 오찬을 함께하기도 했다. 정 전 부의장은 《주간조선》에 “윤석열과 김종인 사이에 갈등이 생기기 전에 약속이 됐다. 내가 윤석열한테 ‘김종인 박사와 식사를 하기로 했다’고 말했더니 ‘그 식사 자리에 나도 갈 수 있느냐’고 하더라”고 설명했다. 오찬에 동석한 역술인 노병한 한국미래예측연구소장은 “한 3년 전부터 김(종인) 박사가 ‘윤석열이 어때’ 하고 여러 번 물어보더라. 김종인 박사하고 윤 후보 아버지(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하고 잘 아는 사이다”라며 “그래서 ‘괜찮다. 좀 소란스럽기는 하겠지만 감이 된다’고 말한 기억이 난다. (두 사람은) 잘 맞는 궁합”이라고 전했다.
경선 관심 없다는 金... 본선 캠프로 등판하나
한편 김 전 위원장은 지난 29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경선 과정에서 선대위원장 그런 것을 할 수가 없다”며 “그것은 내 의사와 관계없는 이야기니까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윤 전 총장이 대선후보로 정해질 경우에는 도와줄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그것은 그때 가서 봐야 한다”고 답했다. 김 전 위원장의 이 같은 발언 맥락으로 봤을 때, 그가 특정 후보의 ‘경선 캠프’가 아닌 최종 후보가 정해진 ‘본선 캠프’에서 총괄선대위원장을 맡는 식으로 정계에 복귀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 전 위원장의 ‘정계 복귀 시나리오’는 어떻게 흘러갈까. 《조선펍》이 30일 박상병·이종훈·차재원 등 3인의 정치평론가에게 물었다. 이들은 예측대로 김 전 위원장이 윤 전 총장 등 특정 후보의 경선 캠프가 아닌 대선 후보가 확정된 당 차원의 본선 캠프에서 선대위원장 등 중책(重責)을 맡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스스로 정치판 방향타, 컨트롤 타워로 생각... 정권 교체에 큰 역할 하길 원할 것
박상병 정치평론가(인하대 교수)는 “김 전 위원장은 ‘립 서비스’를 하다가도 나중에는 ‘실익’을 취하려 하는 등 그때그때 말이 바뀌는 인물이라 (차기 행보에 대해) 합리적으로 추론하긴 어렵다”면서도 “비대위원장이라는 직책, 팔순이 넘은 연세, 정권 교체라는 대의(大義)를 생각한다면, (대선) 후보가 확정된 다음에 국민의힘 중앙선대위원장으로 (당을) 도와주는 방향으로 갈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이종훈 정치평론가(iGM컨설팅 대표)도 “지금 국면에서는 경선 캠프로 갈 가능성이 없다. (자신에게) 급이 안 맞는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김 전 위원장이 후보 캠프로 들어간) 옛날(2012년 18대 대선)의 박근혜 전 대통령처럼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면서 유력 대선 후보였을 때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니지 않나. 설령 윤 전 총장이 최종 후보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하더라도, 조금 더 기다렸다가 모양새를 갖춰서 합류하는 길을 택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차재원 정치평론가(부산가톨릭대 교수) 또한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 최종 후보가 되고, (당 차원의) 대선 캠프가 만들어질 때 (캠프에서) 선대위원장으로 모시면 갈지 모르겠으나 지금의 경선 캠프로는 안 갈 것”이라며 “김종인은 스스로의 위상을 정치판을 좌지우지(左之右之)하는 방향타, 컨트롤 타워로 생각하기 때문에 특정 캠프에 매몰돼 정치적인 공간을 좁히는 쪽으로는 가지 않을 것이다. 경선 상황에서 한 인물의 좌장(座長) 역할을 하기보다 정권 교체에 있어서 큰 역할을 하는 그림을 원하고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들의 전망처럼 김 전 위원장이 국민의힘 대선 본선 캠프의 선대위원장으로 복귀한다면, 대선 국면에 미치는 정치적 영향력은 어느 정도일까. 이에 대해서는 시각이 서로 엇갈렸다.
엄청난 여론 따라오리라 생각하는 건 오버... 정치 파급력과 상징적 의미는 충분
박 평론가는 “지금 우리 정치판이 과연 그의 말에 휘둘리겠는가. (30대 젊은 원외 정치인인) 이준석을 대표로 뽑을 정도로 엄청난 변화와 정치 역동성을 원하고 있지 않나”라며 “김종인의 인기, 가문, 경륜은 훌륭하지만 그분이 한 명 (당에) 들어간다고 해서 엄청난 여론이 따라올 것처럼 생각하는 건 ‘오버’다. 다만 10개월 이상 비대위원장을 지내며 당을 추스른 인물이 정권 교체의 대미(大尾)를 장식하기 위해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야권을 단단하게 결속시킬 수 있는 상징적 의미로 다가올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평론가는 “요즘 국민의힘이 어른이 없고 교통 정리도 안 돼 사분오열(四分五裂)되고 (여권과의 대권 경쟁에서) 손해를 보고 있지 않나. (이런 상황에서) 김 전 위원장에게 가장 요구되는 역할은 ‘정치적 가지치기’를 통해 당의 기조를 잡아나가는 것”이라며 “(당 대표인) 이준석이나 (유력 주자인) 윤석열 모두 예전의 YS·DJ처럼 판을 만들어가는 정치를 못하니, (본선이 시작되면) 당장 ‘프레임 전쟁’에서부터 여권에 밀리기 시작할 것이다. 그 때문에 김 전 위원장의 정치력을 기대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차 평론가는 “김 전 위원장은 아마 윤 전 총장이 최종 후보가 되면 ‘삼고초려(三顧草廬)’ 식으로, 못 이기는 척 (선대위원장 등을) 맡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 분은 명패만 걸어 놓는 위원장직이라면 안 할 가능성이 높다”며 “지위에 맞는 실권을 쥐고 후보의 전략·동선·메시지 상당 부분을 자기가 생각한 대로 갖고 가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김 전 위원장이) 선대위원장이 된다고 하더라도, ‘역할 분담’ 등 이후 풀어야 할 쉽지 않은 숙제들이 남아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