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 사태가 전 세계를 휩쓸며 2년간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전체주의(全體主義) 체제의 보편화를 우려하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의 사전적 정의(定義)에 따르면, 전체주의란 ‘개인의 모든 활동은 민족국가와 같은 전체의 존립과 발전을 위해서만 존재해야 한다는 이념 아래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상’이다. 구체적으로는 ‘개인은 전체, 즉 집단 속에서만 존재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국가 권력이 막강한 권능(權能)을 행사해 국민 생활을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논리의 사상이다.
전문가들은 국가 권력을 집행하는 위정자(爲政者)들이 코로나 방역과 사회 질서 유지를 빌미로 개인의 동선과 사생활 등 개인정보를 수집, 디지털 ‘빅 브라더’를 만들어 적극적인 국민 통제에 앞장설 수 있다고 전망한다. 방역을 명분으로 이동의 자유, 종교의 자유, 생활의 자유, 집회·모임의 자유 등을 억압하면서 이에 반발하는 사람들에게 ‘전염병 전파자’라는 낙인(烙印)을 새겨 매도하는 식으로 통치 기조를 잡아가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개인의 모임을 제한하고 상점의 영업시간을 통제하려는 이른바 ‘사회적 거리 두기’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정권의 무능 탓에 최선의 해결책인 백신 수급은 미비한 상황에서, 사실상 ‘동족방뇨(凍足放尿)식의 미봉책’에 불과하며 국민적 희생과 고통을 담보로 하는 ‘거리 두기’에만 의존하는 방역 시스템이 지나치게 고착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독재, 포퓰리즘, 전체주의 그림자 드리워진 코로나 이후의 세계
문제의 핵심은 이러한 국가 권력에 의한 국민 통제 시스템이 세계적으로 보편화되고, 국민들도 장기화된 사회 통제에 점차 익숙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각국의 체제 전체가 개인의 권리가 신장되는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중앙권력의 간섭이 심해지는 집단전체주의로 흐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여러 나라의 각 분야 지식인들이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이 같은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심하게는 과거의 무단통치식 왕조시대(王朝時代)나 포퓰리스트형 일인독재(一人獨裁), 중국식 과두제(寡頭制)의 귀환을 부를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까지 나오고 있는 현실이다.
김재영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교수는 작년 5월 18일 자 《아주경제》 칼럼 ‘사회적 묵인 강요하는 코로나 빅 브라더’에서 “위기 상황 속 임시방편은 사회적 묵인에 따른 체제의 경직성으로 그 방법이 타당한지 신중한 숙고 없이 진행되고, 상황이 지나고 난 이후에도 고착되기 마련”이라며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특수한 상황은 개인의 사생활 침해나 개인정보 유출을 막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함에도, 이를 사회적으로 묵인하고 용인되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의 글이다.
〈전 세계는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pandemic)을 경험하며, 그 어떤 때보다 정부 역할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역할이 강조되면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부분은 바로 빅 브라더의 출현이다. 빅 브라더(Big Brother)는 조지 오웰의 소설인 《1984년》에 등장하는 전체주의 사회 속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정보를 통제함으로써 영속적인 집권을 기획한 가공의 인물이다. 하지만, 소설 속에만 존재하던 빅 브라더의 위협(Big Brother is watching you)은 사회적 묵인과 정보기술의 발달에 따라 언제라도 우리 주변에 나타날 수 있다.〉
디지털 빅 브라더의 개인정보 수집... 지식은 곧 권력 투쟁의 핵심
코로나 방역을 명분으로 개인의 생체·생활 정보를 독식(獨食), 지식 구덩이로서의 ‘빅 데이터’를 만든 ‘빅 브라더’는 통제 권력으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악용된 지식이 권력의 채찍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사라 밀스 영국 셰필드 할렘 대학 교수는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의 사상을 연구한 책 《현재의 역사가 미셸 푸코》(앨피, 2008)에서 “푸코는 지식을 권력 관계와 정보에 대한 욕망이 결합되는 지점이라 규정하고, 지식이 언제나 권력 관계를 동반한다는 의미에서 지식을 ‘권력/지식’이라고 정의한다”며 “그의 논문 〈감옥 이야기〉에 따르면 ‘지식 없이 권력이 행사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지식이 권력을 생성하지 않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고 했다”고 말했다. 밀스 교수는 “지식과 권력의 관계에 대한 이런 통찰은 지식이 정치적 고려가 배제된 순수한 것이 아닌 권력 투쟁의 핵심적 요소임을 강조하고, 또한 지식을 생산하는 행위 자체가 권력을 추구하는 방식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6월 1일 발간된 책 《친절한 독재자, 디지털 빅 브라더가 온다 - 21세기 전체주의의 서막》(웨일북)의 저자 한중섭은 “나는 고발한다. 코로나19로 전방위적인 디지털 감시가 정당화됨에 따라 새로운 형태의 전체주의가 부상하고 있음을”이라며 “코로나19는 언젠가 종식될 것이다. 그러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결코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자는 “다가올 ‘초(超)감시사회’에 우리들의 몸과 마음은 모두 데이터로 환원되어 감시당할 확률이 높다. 데이터를 수집하고 활용할 권한을 가진 디지털 빅 브라더들이 우리의 생각을 통제하고, 특정한 행동을 유도하고, 더 나아가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해킹하는 일은 더 이상 공상과학영화만의 이야기가 아니다”라며 “디지털 빅 브라더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초감시사회를 지배하는 ‘친절한 독재자’로 군림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안면 인식으로 인민에 대한 감시 통제 강화하는 중국
저자는 “중국 정부는 시민들로부터 수집한 얼굴 데이터를 기반으로 안면 인식 알고리즘을 고도화한다. 또한 CCTV뿐 아니라 여타의 안면 인식 기기를 아파트, 학교, 공중화장실, 쇼핑몰, 호텔, 대중교통 출입구, 은행, 관공서 등에 설치해 시민들을 감시한다”며 “중국의 안면 인식 확산 기세가 무서운 것은, 이 기술이 초감시사회에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얼굴 데이터 등록이 의무화됨에 따라 중국 정부는 체제에 불만을 품은 세력, 소수민족, 홍콩 민주화운동 지지자들을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통제하는 것이 손쉬워졌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티머시 스나이더 미국 예일대 사학과 교수는 작년 5월 1일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막연한 불안은 전체주의 정권을 자라게 할 자양분이 될 위험이 있다. ‘코로나가 무서우니 지금까지 지켜온 원칙은 일단 다 접어두어도 되고, 정부가 무엇을 해도 받아들이겠다’는 자세가 전체주의의 문을 열 수 있음을 명심하라”며 “코로나라는 위기는 정부가 해결해야 할 문제일 뿐, 정부가 무엇이든 해도 되는 기회가 아니다. 자유의 가치를 믿는 국민이라면 심호흡 한 번 하고 침착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환경부 장관을 지낸 김명자 서울국제포럼 회장은 작년 4월 28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주최한 ‘포스트 코로나19: 뉴 노멀 그리고 도약의 기회’라는 제하의 온라인 토론회에서 “코로나19 이후에도 세계 곳곳이 강한 정부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예전 혼란을 틈타 무솔리니, 히틀러가 출현했던 것처럼 전체주의 확산 우려가 있다. 디지털 시대 시민사회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코로나는 정부가 해결해야 할 위기일 뿐, 무엇이든 해도 되는 기회 아냐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은 작년 7월 6일 자 ‘펜앤드마이크’ 칼럼 ‘포스트 코로나 뉴 노멀 시대, 선진국 도약 이끌 리더십 중요하다’에서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개인 봉쇄는 물론 디지털 기기를 이용한 동선 파악 등 사생활 침해가 불가피하게 일어나고 있다. 위기 이후에도 이런 유혹에 노출될 우려가 적지 않을 것”이라며 “이로 인해 많은 전문가들은 전체주의의 대두와 민주주의의 후퇴를 우려하고 있다. 빅 데이터 디지털 기술이 발달할수록 천부의 인권인 개인의 자유와 존엄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새로운 차원의 민주적 리더십이 요구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헌수 전 숭실대 총장은 작년 11월 《월간조선》 인터뷰에서 “감염자의 확산 경로를 차단하려는 목적으로(비록 법이 허용하고 있지만) 감염자의 이동 경로를 휴대전화 기지국의 접속 기록과 신용카드 사용 내역, 촘촘한 CCTV로 확인한다. 감염자가 경유한 업소가 공개되고, 같은 시간대에 방문했던 사람들도 ‘검체 검사에 응하라’는 문자 메시지를 받는다”며 “이게 바로 K-방역의 작동법이고 K-방역이 성공한 이유”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느 권력도 사생활을 마음껏 들여다보고 개인의 행적을 실시간으로 추적할 순 없다. 그런 권리를 (권력에게) 허락하거나 양도한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한 전 총장은 “코로나19 사태를 관리하면서 개인의 통신과 금융 정보를 이용해 확진자의 동선을 파악하는 것을 본 서구권 국가들의 시각이 한국 정부에, K-방역에 우호적인 것만은 아니더라”며 “개인정보를 국가가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가능한 일이니 서구인들에게 한국은 이해하기 어려운 나라로 생각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느 권력도 사생활 들여다보고 개인 행적 실시간 추적할 수 없다
인류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작년 3월 영국 조간(朝刊) 《파이낸셜타임스》 기고에서 “(코로나 사태 이후 각 나라에서) 평시(平時)에는 수년간의 심의를 거칠 수도 있는 결정들이 몇 시간 만에 내려진다. 성숙되지 못하고 심지어 위험할 수 있는 기술들이 곧바로 도입된다”며 “한 국가 전체가 거대한 사회실험을 위한 기니어픽(실험용 동물)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하라리는 “지금까지는 당신의 손가락이 스마트폰의 특정 링크나 어플리케이션을 누를 때 정부는 당신이 무엇을 클릭했는지를 알고 싶어 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정부가 당신의 체온과 혈압까지 알고 싶어 한다”며 “감시 기술과 관련해서 우리가 직면한 문제 중 하나는, 우리 중 누구도 우리가 어떻게 감시되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며, 앞으로 이것이 어떻게 될 것인지 모른다는 것에 있다”고 말했다. 그의 글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진 환자가 0으로 감소하여도, 데이터 수집에 굶주려 있는 정부들은 2차 확산을 막기 위해 생체 감시가 필요하다고, 또는 에볼라를 막기 위해서, 또는 그 이유가 무엇이든지 간에 어떤 이유를 만들어 내서 계속 주장할지도 모른다. 최근 몇 년 동안 우리의 개인 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전쟁이 지속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이 전쟁의 티핑 포인트가 될지도 모른다. 사람들에게 건강과 개인정보 중 양자택일하라고 한다면, 대부분 건강을 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무책임한 정치인들, 과학과 언론에 대한 불신 의도적으로 증폭시켰다
사람들은 과학을 믿을 필요가 있고, 공권력을 믿을 필요가 있고, 언론을 믿을 필요가 있다. 최근 무책임한 정치인들이 과학과 언론과 공권력에 대한 불신을 의도적으로 증폭시켰다. 그리고 이들 무책임한 정치인들은 다시 전체주의적 길을 걷고자 한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옳은 일을 하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감시 체제(regime)를 만들기보다, 과학과 공권력 그리고 언론을 다시 믿게 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이끌어야 한다.
새로운 기술은 물론 사용해야 하지만 이 기술을 이용해 시민들의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나의 체온과 혈압을 측정하는 것은 동의하지만, 이 데이터가 전지전능한 정부를 만드는 것은 거부한다. 데이터는 나의 개인적 선택과 관련, 나에게 더욱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데 사용되어야 할 것이고, 또 정부가 내리는 결정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하는 데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