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권의 대선주자 이재명 경기지사가 성남시장 재임 시절 추진한 ‘대장동 개발 사업’에 비리(非理)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관련 논란의 중심에 있는 기관·업체 관계자들에 대한 검경(檢警) 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당시 개발 시행사였던 특수목적법인 ‘성남의뜰’ 컨소시엄 구성에는 공공 사업자 측 성남도시개발공사(이하 성남도공), 민간 사업자 측 화천대유자산관리(이하 화천대유) 및 천화동인 1~7호(SK증권 특정금전신탁 형태)가 참여했다. 현재 검경은 대장동 사업 설계의 핵심 인사인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과 법조기자 출신 김만배 화천대유 대주주를 중심으로 집중 조사에 돌입하면서, 도미(渡美)한 천화동인 4호 소유주 남욱 변호사에 대한 추적도 이어가고 있다.
이 가운데 이른바 ‘대장동 게이트’의 전모(全貌)를 파악할 수 있는 증거물이 최근 검찰에 넘겨졌다. 바로 ‘정영학 녹취록’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천화동인 5호 소유주인 정영학 회계사는 지난달 27일 서울중앙지검 대장동 전담수사팀에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해 유동규 전 본부장과 김만배씨, 기타 대장동 개발 사업자들과 나눈 대화를 녹취한 녹취 파일 19개와 녹취록, 통화 녹음 파일, 사진, 양심선언서 등을 제출했다. 정 회계사는 대장동 개발 사업에서 5581만 원을 출자해 3년간 배당금 644억 원을 받았다. 정 회계사 부인은 작년 3월 본인이 대표로 있는 법인 명의로 강남구 신사동의 한 빌딩을 173억 원에 사들였다.
정 회계사는 남욱 변호사 등과 함께 2009년부터 개발 시행사인 ‘판교프로젝트금융투자(PFV)’ 소속으로 대장동 개발 사업에 참여했다. 남 변호사가 자금 조달과 땅 수용(지주 작업), 인허가 등 대관(對官) 담당을 맡고, 정 회계사는 판교PFV 자산관리업체인 ‘판교AMC’ 대표 및 사내이사를 맡아 사업 구조와 수익 배분을 설계했다. 두 사람은 대장동 개발 방식과 유사한 것으로 알려진 위례 신도시 개발 사업에도 참여해 수익을 올린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대장동 사업이 막대한 개발 이익을 얻게 되자 이를 배분하는 과정에서 관계자들의 실랑이가 이어졌고, 일부 투자자는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고 한다. 갈등 상황을 지켜본 정 회계사는 나중에 검찰 수사 등 문제가 커질 것으로 염려해 비밀리에 주요 대화를 녹취해왔고 증거 자료를 수집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정영학 녹취록’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신문·방송 및 지금까지의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배당금·분양수익 등 개발 이익 및 관련 자금 배분 과정에 대한 논의가 주된 내용인 것으로 전해진다. ‘유동규 전 본부장에게 돌아갈 몫이 700억 원이다’ ‘유 전 본부장이 별도 회사를 설립해 이 돈을 투자받는 방안 등 실행 계획’ ‘정관계·법조계 등에 로비할 350억 원대 자금을 어떻게 갹출(醵出)할 것인가’ ‘화천대유 자금 중 용처(用處)가 불분명한 83억 원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등에 대한 내용이다.
이밖에 화천대유 자금 담당 직원이 약 2년 동안 2~3000만 원씩 수시로 현금을 찾아간 문제, 유 전 본부장이 천화동인 1호의 지분 상당 부분을 차명 소유한 의혹, 유 전 본부장이 화천대유 관계자에게 금품을 요구해 돈을 받아낸 정황 등도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녹취록 외에도 정 회계사가 검찰에 제출한 증거물에는 의문의 현금 다발이 찍힌 사진과 해당 금전이 개발 사업 관련자에게 전달된 사실을 보여주는 자료, 정 회계사 본인이 유 전 본부장 등 성남도공 주요 간부에 10여억 원을 전달했다는 내용의 자술서 등이 있다고 한다.
한편 김만배씨는 1일 화천대유 측 법률대리인을 통해 입장문을 내고 “개발 이익이 예상보다 증가하게 되자 투자자들 간에 이익 배분 비율을 두고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예상 비용을 부풀려 주장하는 과정에서 과장된 사실들이 녹취된 것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유 전 본부장 역시 2일 변호인을 통해 특혜 제공과 대가는 없었다며 “700억 원 약정설은 사실무근”이라고 입장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