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李在明) 경기지사가 집권여당(執權與黨) 더불어민주당의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로 최종 선출됐다. 이 지사는 10일 민주당 대선 경선 마지막 순회 경선지인 서울 지역 경선에서 51.45%(4만5737표)를 득표해 36.50%(3만2445표)에 그친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를 이겼다. 이 지사는 누적 득표에서 50.29%(71만9905표)를 기록, 가까스로 과반을 달성해 결선투표 없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 최종 선출됐다.
이 지사의 예상 밖 신승(辛勝)은 3차 선거인단 투표에서 이 전 대표에게 대패(大敗)했기 때문이다. 이날 집계된 3차 선거인단 투표는 전국 일반 국민과 당원 24만8000여 명이 참여, 이 전 대표가 62.37%(15만5220표)를 얻어 28.30%(7만4441표)에 그친 이 지사를 압승(壓勝)했다. 이 때문에 이 지사 측 대선캠프에서는 ‘찜찜한 승리’라는 분위기가 돌았다. 이 전 대표 측에서는 정세균·김두관 등 중도 사퇴한 경선 후보들의 득표를 무효표 처리한 당 선관위에 ‘이의 제기’를 신청, 유효 처리를 관철하겠다는 입장이다. 두 후보의 득표가 유효 처리될 경우 이 지사의 최종 득표율은 49.3%로 과반이 되지 못해 2위인 이 전 대표와 결선투표를 치러야 한다.
향후 당 선관위의 판단이 나오기까지 여권의 대선후보는 일단 이 지사다. 2017년 19대 대선 당시 경선에서 문재인·안희정 후보에 밀려 3위 그친 이 지사는 재수 끝에 민주당 최종 대선 후보 자리를 거머쥐게 됐다. 성남시장 시절 추진한 대장동 개발 사업의 ‘비리 의혹’이 경선 도중 터져 나와 이 지사의 발목을 잡기도 했지만, 그의 대권 가도(街道) 질주를 멈추게 하진 못했다.
이 지사는 1963년 12월 22일 경북 영양·봉화·안동이 접하는 청량산 자락에서 5남 4녀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위로 누나 두 명이 세상을 일찍 떠났고, 가난한 형편에 참꽃·찔레 등 뒷산의 야생초로 허기진 배를 채우며 자랐다. 가세(家勢)를 일으키기 위해 진학(進學)을 뒤로 한 채 어릴 적부터 일해야 했다. 초등학교를 간신히 졸업하고 14살 어린 나이에 경기도 성남 상대원동으로 상경, 단칸 셋방에 기거하며 반지하 목걸이 공장에서 소년공(少年工)으로 일했다. 고무 공장에서는 전기모터에 손가락이 말려 들어가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함석판을 다루는 공장에서는 선임 노동자들의 구타를 견뎌내야 했다. 야구 글러브 공장에서 다친 상처로 인해 16살부터 왼팔이 구부러진 채로 자라났다. 이후 시계 공장에서 주경야독(晝耕夜讀)하며 중·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패스하고 중앙대 법대에 합격했다.
1980년대 대학 시절에는 광주 항쟁의 실체를 깨닫고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읽으며 민주화 운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24살이 되던 해 제18기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 사법연수원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성남에 변호사 사무실을 차렸다. ‘민변’ 소속 노동·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며 ‘성남시민모임’ 창립에 참여하는 등 경기 남부를 중심으로 시민운동에 투신했다. ‘분당 백궁·정자지구 용도 변경 특혜 사건’ ‘분당 파크뷰 특혜 분양 사건’ 등 지역 부동산 비리 의혹 등을 파헤쳤고, ‘성남시립병원설립추진위원회’ 공동대표로 활동하기도 했다. 2006~2008년 성남시장과 국회의원 선거에 나섰지만 낙마한 후 2010년 민선 5기 성남시장에 당선됐다.
성남시장 초선 시절 지방정부 최초 모라토리엄(국가의 공권력에 의해서 일정기간 채무의 이행을 연기 또는 유예하는 일)을 선언, 성남시가 빚진 4572억 원 규모의 채무를 3년 만에 상환했다. 당시 ‘호화청사’로 불리던 성남시청의 구조를 바꿔 시장실의 권위를 낮추고 시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성남시립의료원 건립, 성남형 교육지원사업 등 ‘이재명표’ 복지 정책을 구현했다. 2014년 재선에 성공한 이후에도 ‘세금체납실태조사반’ 발족, ‘시민순찰대’ 출범, ‘성남서점협동조합’ 창립 등 지역 민원 해결을 위해 각종 정책을 추진했다. 무상급식, 무상교복지원, 청년배당, 저소득층 청소년 생리대 지원 사업 등 현 ‘기본소득론’의 기초가 되는 무상 복지 정책을 시정(市政) 차원에서 펴왔다.
2017년 19대 대선 경선에서 패배한 뒤 이듬해 경기지사에 도전했다. 2018년 같은 당 친문(親文) 핵심 전해철 의원을 꺾고 최종 후보가 돼 56.4% 득표율로 도백(道伯)에 올랐다. 취임 이후 기본소득과 청년배당 관련 정책을 도정(道政) 차원에서 추진했고, 코로나 사태 이후 전체 도민(道民)에게 재난기본소득으로 1인당 10만 원을 지급하는 파격적인 무차별 현금 복지 정책을 감행했다. ‘친형 강제 입원 의혹’ 등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등 혐의로 재판을 받았으나, 작년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고 다시금 여권의 유력 대선 주자로 부상했다. 마침내 이낙연·정세균 등 문재인 정부 총리 출신의 중앙 정계 ‘정치 선배’들을 꺾고 민주당 최종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형수 욕설 문제’ ‘비문(非文) 성향 논란’ ‘여배우 스캔들’ ‘대장동 게이트’ 등 갖은 악재(惡材)들을 뚫고 파죽지세(破竹之勢)로 ‘과반 달성’을 이룩해냈다.
이 지사는 10일 여당 최종 대선후보 발표 직후 수락 연설에서 “편을 가르지 않는 통합의 대통령이 되겠다. 4기 민주 정부, 이재명 정부를 창출하겠다”며 “유용하면 진보·보수, 박정희·김대중 정책이 무슨 차이가 있나. (이를 통해) 일본을 추월하고, 선진국을 따라잡고, 마침내 세계를 선도하는 나라,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 지사는 또 “국민의 기본권이 보장되는 보편 복지국가를 완성하겠다. 세계 최초로 기본 소득을 지급하는 나라, 기본 주택, 기본 금융으로 기본적 삶을 지켜주는 나라를 만들겠다”며 “그 어떤 것도 먹고사는 문제보다 우선일 수 없다. 정쟁(政爭)에 빠져 민생을 소홀히 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