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콜린 파월 전 미국 국무장관이 18일(현지 시각) 향년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사인(死因)은 코로나19로 인한 합병증. 미국인들은 두 차례 백신 접종까지 마친 그의 별세 소식에 더욱 안타까워하고 있다. 고인의 유족은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성명에서 “우리는 훌륭하고 사랑스러운 남편이자, 아버지, 할아버지이면서 위대한 미국인을 잃었다”고 전했다.
1937년 뉴욕 할렘가의 한 자메이카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파월 전 장관은 군인 출신 정치가로 흑인 최초 미국 국무장관과 합참의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뉴욕시립대 ROTC(학사장교)로 입대한 그는 베트남전에 참전(參戰)해 훈장을 받고, 1970년대 후반 미군 중령으로 우리나라 동두천에서 복무하기도 했다. 육군 대장까지 진급, ‘아버지 부시’ 정권 때 전군(全軍)을 통솔하는 최연소 합참의장에 올랐다.
합참의장 시절 1차 걸프전(1990년 8월 2일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미국·영국·프랑스 등 34개 다국적군이 이라크를 상대로 이라크·쿠웨이트를 무대로 전개한 전쟁)을 지휘해 승전(勝戰)을 이끄는 등 혁혁한 군공(軍功)을 세우기도 했다. 걸프전 당시 그는 쿠웨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가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에게 맞설 수 있도록 이른바 ‘파월 독트린’을 내세워 유명세를 탔다. 외교적 해법이 통하지 않을 때는 ‘충격과 공포’로 불리는 압도적 전력(戰力)을 바탕으로 적국(敵國)을 제압해야 한다는 강경책이었다.
미국 영웅으로 부상한 그는 레이건 정부 말기 국가안보보좌관을 시작으로 총 4명의 대통령을 보좌했다. 1990년대 중반에는 국민적 명성을 바탕으로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1992년 걸프전 직후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언급됐고, 1996년 재선을 도모하려는 민주당 출신 빌 클린턴에 맞서 공화당의 대항마로 나서라는 출마 권유를 받기도 했다. 2000년 대선에서도 그의 정치적 존재감이 돋보였다.
‘아들 부시’ 정권 때는 국무장관으로 발탁돼 4년간 미국의 대외 정책을 총괄했다. 전장(戰場)에서는 적을 섬멸하는 용장(勇將)으로 불렸지만, 미국 정가(政街)에서는 강성주의자들과의 정쟁(政爭)을 멀리하고 명예를 중시한 ‘비둘기파’ ‘실용주의자’로 여겨졌다. 특히 부시 정부 당시 네오콘을 중심으로 한 미국 매파들과 달리 외교 등에서 유연한 입장을 보여 온건파로 통했다.
공직 퇴임 이후 부시 정권 정책을 비판하는 등 정치적으로 진보적 성향에 가까워졌다. 2008년과 2012년 대선 모두 민주당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했고, 2016년과 작년 대선에서도 힐러리 클린턴과 조 바이든 같은 민주당 후보들을 밀었다.
정치 성향과 관계없이 그의 타계 소식에 미국 정가에서는 초당적(超黨的)인 애도 목소리를 냈다. 피터 마이어 공화당 하원의원은 “그는 진정한 군인이자 정치인”이라고 했고, 마크 워너 민주당 상원의원은 “파월은 애국자이자 공무원”이라고 존경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