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3년 갑인출판사에서 출간된 《청와대 비밀메모》는 문재철 당시 KBS 청와대 출입기자가 쓴 책으로 노태우 정권의 비화(祕話)를 담고 있다. 26일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 서거에 따라 책에 수록된 당시 공개되지 않은 노 전 대통령의 주요 발언 몇 토막을 발췌·정리해 게재한다.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 개탄하다
1989년 9월 4일 민정당 당직자와 국회 간부들이 청와대로 초청된 만찬 석상에서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역사 앞에 부끄러움 없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6공화국 출범할 때 여러분들 너무나 잘 아실 거예요. 권위주의 하지 말라는 것이 국민들 여망 아니었습니까? 권위주의, 보통 사람과 비슷하게 관료주의요 권위주의요, 이제 몇 사람 특정인들만 가지고 일을 처리하는 것을 싫어했던 것이 우리 국민들의 여망이었다면 나는 그것을 따라야 된다, 이래서 심지어는 내가 법적으로 누릴 수 있는 어떤 신분의 권위도 편의도 거의 버리다시피 희생하다시피 이렇게 해왔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여기에 좀 대칭되게 강하게 뒷받침해주는 사람들도 있어야 되는데 이런 것이 아쉬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것이 행정부에도 있어야 되겠지만 당에도 있어야 된다, 대통령이 강하면 당은 좀 부드럽고 대통령이 좀 부드러우면 당은 좀 강해 줘야 한다. 그런데 어떨 때 보게 되면 당직자가 더 부드러우려고 애쓴단 말이야. 그것은 조화가 맞지 않은 것이다. 더구나 정치의 행태가 국회 모습이 여소야대라는 이런 우리 현실, 우리 정치사에서는 처음으로 있는 이런 일들이기 때문에 참으로 고통스럽기 짝이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에 여소야대, 그러면 우리가 여당의 입장에서 아주 다부지게 강하게 나아가고자 하는 이런 자세를 처음부터 굳게 가다듬었으면 그렇진 않았을 텐데 제대로 가다듬지 못한 상태에서 작년 정기 국회가 다가왔고 이러다 보니까 우물닥 쭈물닥 하는 사이에 노상 당하기만 하고.
작년에 청문횐가 거기에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수모와 곤욕을 겪지 않았느냐…. 해서 이런 교훈을 우리는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에 다시 이런 전철을 절대로 밟아서는 안 된다, 이 점을 여러분들에게 강조합니다.”

정책 홍보 강조하다
“내가 언짢게 생각하는 것은 야당들이 5공 청산이다 뭐다 자꾸 앵무새처럼 떠드니까 국민들이 따라간다 이 말이야, 왜 여러분들은 이것 이것 했다, 우리도 앵무새처럼 강조를 못 하느냔 말이야. 야당이 백 마디 할 때 우리는 한마디 할까 말까 이것입니다. 왜 그러느냐, 여기서부터 벌써 홍보에서 지고 있는단 말이야.
여러분들, 민주화 발전을 위시해서 사회 부조리 등등 할 것 없이 전부 다 논리를 정리를 해봐요. 한 것이 얼마나 되는지. 부정을 해서 다스린 사람, 구속한 사람, 재판한 사람 얼마나 되며, 또 각 분야별로도 잘못된 것, 다스린 사람 얼마나 되며, 또 제도적으로 잘못된 것 고친 것 얼마나 되며, 법적으로 잘못된 것 고친 게 얼마나 되며, 굳이 책으로 만들면 책으로 만들 거예요. 이걸 만들어서 큰 것부터 자꾸 국민들한테 홍보를 하라 이거예요.
이걸 안 하고 거꾸로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조금 보충 설명을 하자면 이제 5공이 6공으로 넘어왔을 때 잡지, 신문 이런 데서 5공은 전부 부정투성이다, 전임 대통령이 호주에 땅이 얼마고 미국에 땅이 얼마고 스위스 은행에 얼마고……. 전부 거짓말 아니냐.
여러분들 입에서 거짓말이다 거짓말이다, 이렇게 한 사람 얼마나 있어요, 얼마 없을 거다. 보고만 있지. 거짓말인데도 언젠가 밝혀질 건데 하지만 거짓말은 거짓말이라고 떠들어야 할 것 아니냐. 책에 쓰는 사람 거짓말 쓰는 사람은 자꾸 쓰는데, 밝혀야 될 것 아니냐. (중략)

정리를 해가지고 매일 일간신문에 광고를 하든 뭐를 하든 지속적으로 끈질기게 홍보를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또 우리가 시정해야 할 것을 이놈으로 덮어두고 안 하겠다 이것도 아니잖아. 앞으로도 시정할 것이 있으면 한다 이 말이야. 사법적으로 잘못된 것이 있으면 당국에 고발해 가지고 우리가 고발하든 야당이 고발하든 잘못된 데 대한 다스림은 받아야 한다 이 말이야. 그것은 한다 말이야. 또 정치적으로 이러이러한 모양을 갖추어서 넘어가야 할 것은 여러분들이 하란 말이야. 못할 게 뭐 있어요. 다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첫째는 밑지는 홍보전을 만회해야 한다. 만회해서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춰 놓고 정치적인 협상도 하면 그렇게 어렵지 않다 말이야.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식으로 해서 우리가 소위 80년대를 그래도 보람 있게 마무리를 짓는다, 내가 5공 청산을 어떻게 멋있게 한다, 이제는 생각하기도 싫어요, 진절머리가 나.”
삼김(三金-김영삼·김대중·김종필)을 향한 진노(震怒)
1989년 10월 21일 청와대 본관에서 고위 당정회의가 소집된 가운데, 당시 한미(韓美) 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온 노 대통령은 정국에 대한 담화를 내놓았다.
“여러분들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미국에 떠나가기 전에 여러분들이 말했듯이 미국에 가는 두 가지의 큰 의의가 있는데, 다른 것도 물론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이 아마 미국 상하 양원 합동 회의에서 35년 만에 대한민국 대통령이 우리 국민의 알뜰하고 진지한 메시지를 미국 국민에게 전하는 그 일일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들이 잘해야 되겠다고 그렇게 큰 관심을 가졌던 일이었고, 또 나에게 얼마나 준비를 잘해 주었습니까? 이것을 내 서툰 영어지만 해냈습니다. 해냈는데 미국 사람들의 여기에 대한 반응, 나에 대한 대우, 존경 이것하고 또 우리나라는 어떤가 해서 오다가 비행기에서 우리 신문을 보니까 참으로 비애를 느꼈습니다.
그런데 무슨 놈에 3김이 뭐 손잡고, 나는 3김이 손잡고 있길래 내가 미 의회에서 합동 연설하는 것 그 수십 배의 어떤 큰 비전을 우리 국민들에게 제시해 주는구나라고 기대하고 기사를 열심히 읽었습니다. 그러나 없었습니다...... 없었어요.

참으로 이것이 우리나라 국민인가, 이것이 우리나란가, 솔직한 심정으로 대통령 하고 싶은 생각이 하나도 없었어요. 이런 사람들하고 내가 무슨 놈의 대통령을 하겠는가. 이런 비애를 느꼈습니다. (당시 기자 註: 3김씨는 노 대통령이 미 의회에서 연설하는 날인 89년 10월 1일에 때맞춰 국회에서 회담을 갖고, 노 대통령이 5공 청산을 미루면 노 정권 퇴진을 위해 투쟁을 벌인다는 데 합의했다. 야 3당 총재 회담은 이날 신문에 사진과 함께 1면 머리 기사로 대대적으로 보도되었고, 노 대통령의 미국 의회 연설은 상대적으로 눈에 잘 띄지 않을 정도로 적게 언론에 보도되었다. 노 대통령은 대한항공이 수송해온 국내 신문을 귀국하는 특별기에서 읽었던 것이다.)
해서 물론 여러분들이 뭔가 잘못해서 이렇게 됐다 하는 그것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들 다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최선을 다했는데도 이 나라의 수준이라 할까, 이 나라의 어떤 특징이라 할까, 이것이 이렇게밖에 되지 않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면서 혹시 그 신문에 그것을 쓴 미국 사람들이 보면 뭐라고 생각할까 이런 생각도 해봤습니다.
누구든, 어떤 나라든 잘하는 것도 있겠지만 잘못도 있을 수 있습니다. 엄청난 과오도 저지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느꼈을 때는 빨리 이를 뉘우치고 이 과오를 다시금 고쳐나가고 전화위복의 길을 펼쳐 나가고, 이렇게 해나가는 것이 올바른 일이겠다, 또 언론들도 한 번은 생각할 수 있는 이런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그래서 국민을 위해서 과연 우리가 잘한 일인가, 못한 일인가를 국민들도 올바르게 판단하리라고 봅니다.
왜 하필이면 정치적인 그날 19일에, 역사적인 연설을 하는 그날 3당이 모여서 그 작당을 했는지 아이로니컬하기도 하고 알 수 없는 이런 입장 같아요. 이것을 모두 참고로 해서 여러분들 정기국회에서 좋은 결실 내는 데 좋은 교훈이 되길 바라마지 않습니다.”

탈당(脫黨) 그 후
퇴임을 불과 6개월여 남겨 놓은 1992년 10월 22일. 노 대통령은 청와대 본관 집무실에서 몇몇 기자들과 차 한 잔 나누는 자리에서 ‘쉬고 싶다’고 했다.
“과로의 연속이었어. 이제는 좀 쉬고 싶어…….”
기자들과 만난 이날은 노 대통령이 민자당 당적(黨籍)을 떠나고 대통령 선거를 위한 중립선거 관리내각을 출범시킨 지 보름 뒤였는데, 그 사이에도 채문식-윤길중 고문 등 11명과 박철언-이자헌-유수호 의원 등 5명이 추가로 탈당하고, 이종찬 의원이 중심이 된 신당(새한국당)이 발기인 대회를 갖는 등 이런저런 당내외의 변화가 계속되었으나, 당적을 던져버려 집권당과는 무관한 상태에 놓이게 된 노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집사람(김옥숙 여사)도 속이 후련하다고 하더구만……. 참 좋아하더라. 나는 당과 완전히 뿌리 끊은 것이 가슴 아프기야 하지만 별것 아닌 것 가지고 끌려다니는 것보다야……. 예전 같으면 군수나 지사를 이 사람으로 저 사람으로 바꿔 달라고 야단일 테고, 이쪽(청와대)에서는 안 된다고만 거부할 수도 없을 테고, 당적을 계속 가지고 있었으면 국회는 계속 파행이었을 테고, 외국에서 볼 때 이게 무슨 창피야. 무어라고 그러겠어. 우리 집사람도 그전에만 해도 이런저런 정치인 부인들이 찾아와서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물어보고 도와달라고 하는 얘기를 듣느라 지쳤을 텐데 완전히 당과 딱 끊어버리니까 참 좋아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