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조선일보DB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국가장 영결식이 30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엄수된 가운데, 29일 영국주재 북한공사를 지낸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노 전 대통령의 외교력과 대북(對北) 치적을 높게 평가했다.

태 의원은 "대부분 사람들이 노태우 전 대통령이 분단 70여 년의 역사에서 유일하게 김일성의 고집을 꺾고 북한 노동당의 정책을 바꾼 지도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 못한다"라며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85년부터 소련 공산당과 동구권에서 일어나고 있는 페레스트로이카의 흐름을 먼저 파악하고, 세계 정세를 예견하여 미국의 동의를 얻어 88올림픽을 동서화합의 무대로 만든 유능한 지도자였다"고 평가했다.

태 의원은 "한반도에서의 치열한 이념 대결 속에 아직 우리의 위상이 세계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그 시절, 대한민국 서울에 와본 동구권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이루어낸 '한강의 기적'을 보고 공산주의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태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은 연이어 북방정책에 드라이브를 걸고 총력전을 벌여 소련, 중국 등과 수교를 이루어냈다"며 "지금 와서 보면 노태우 전 대통령은 외교의 귀재였다.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을 미국에만 맡겨놓지 않고 본인이 직접 소련, 중국 지도자들을 만나 김일성을 설득시켜 줄 것을 부탁하고, 실제로 소련과 중국 지도자들을 움직이게 만들었다"고 밝혔다.

태 의원은 "당시 김일성은 수십년 동안 북한 노동당의 정책인 '두 개 조선 유엔 동시 가입 반대' 정책을 계속 고집했다. 김일성도 판이 이미 기울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더 큰 고민은 북한 지도부와 주민들 앞에서 유엔 동시 가입을 어떻게 합리화하겠는가였다"며 "북한에서 신과 같은 존재인 김일성이 정책 실패를 인정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 북한 외교부에서도 유엔 동시 가입을 합리화할 수 있는 안을 찾아보라는 김정일의 지시를 추진하지 못해 절절매고 있었다"고 전했다.

태 의원은 "이때 노태우 전 대통령은 밀사를 통해 남북한이 2개 국가로 유엔에 가입해도 '남북 관계는 국가 간 관계가 아닌 통일 지향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 관계'라는 새로운 정의를 북으로 전달했다"며 "또 노 전 대통령은 이 사안을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남북이 합의하는 형식으로 진행하자고 제안했다. 김일성은 '이렇게 하면 된다'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고, 결국 체면을 살릴 수 있게 되었다. 이후 북한 노동당은 공식적으로 유엔 동시 가입을 정책화했다"고 설명했다.

태 의원은 "김일성은 '노태우가 군인인데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을까' 하고 북한 외교부 간부들 앞에서 여러 번 언급했다"며 "결국 노태우 전 대통령은 남북 분단 역사에서 북한 지도자의 생각과 노동당의 정책을 바꾼 유일한 대한민국 대통령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