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이 2018년 3월 27일 오후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문에 서명 후 교환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북한의 핵미사일이 발사되는 상황에서 나의 평화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공중에서 요격하는 것이지, 북한에게 평화를 위한 약속을 지키라는 요구가 아니다. 당연히 정부가 해야 할 일도 평화를 주창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북핵대비태세를 강구해 북한이 핵공격을 감행하더라도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강구하는 것이다."

박휘락 전(前) 국민대 교수는 올해 6월 말 정치·외교학술지 《통일전략》에 게재한 '평화협정에 관한 확증편향과 집단사고' 논문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박 교수는 북한의 핵위협이 심각해진 상황에서도 한국에서 평화협정이나 종전선언이 주장되는 것은 평화 관련 개념에 대한 심각한 오인식(誤認識), 확증편향, 집단사고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저자는 먼저 한국의 일부 국민들은 평화, 평화체제, 평화협정, 종전선언이 남북한 간의 평화나 통일을 위해 긴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오인식이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평화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데 있어서 이런 형식적인 사항들은 중요하지 않고, 평화에 대한 강조나 이를 위한 협정이나 선언만으로 평화를 보장할 수는 없기 때문"이라며 "오히려 그런 주장이나 노력 자체가 한반도의 실질적인 평화 정착을 비현실적이면서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여기서 근본적인 사항은 평화에 대한 오인식인데, 그것은 평화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인식하는 데서 발생한다고 밝혔다. 평화는 결과론적이면서 상대적인 가치일 뿐으로서, 자유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나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제도가 구비된 상태로 이해하는 것이 더욱 현실적이라는 지적을 수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다수의 국민들은 평화를 보장할 수 있는 정형화된 어떤 협정이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정형화된 것도 없을 뿐만 아니라 강제적인 효력을 발휘하기도 어렵다"며 "국제 사회에서는 약속을 파기할 경우 국내법처럼 처벌할 수 있는 세계 정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저자는 관련 예로 1973년 파리 평화협정을 거론했다. 북베트남이 파리 평화협정을 2년 후에 파기하면서 남베트남을 침공했지만, 국제 사회가 북베트남을 저지시킬 수 있는 어떤 수단이나 방법은 없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실질적인 평화에는 협정이나 평화 상태를 지속하게 만드는 평화이행 장치가 중요한데, 그의 기반은 군사력일 수밖에 없다"며 "이런 점에서 평화 체제는 바로 전쟁억제 체제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논문은 국내에서는 남한만 허용하면 북한과의 평화협정이나 종전선언이 금방 체결될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 또한 오해임을 지적했다. 북한은 남한이 아닌 미국과의 평화협정이나 종전선언을 추진하고 있고, 그것도 협정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협정을 위한 미국과의 협상 과정에서 한반도에서의 주도권을 확보하고자 하는 의도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논문은 북한과의 평화협정이나 종전선언이 북한의 핵무기 폐기를 유도해내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도 오인식이라고 밝혔다. 박 교수는 "북핵이 폐기되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과 북한이 평화협정이나 종전선언에 합의하는 것은 북핵을 인정하는 결과가 될 뿐"이라고 경고했다. 미국과 북한이 평화협정이나 종전선언을 맺고자 해도 한국이 반대해야 할 것인데, 현 정부가 앞장서서 그것을 유도하는 것은 심각한 오인식에 빠져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해석했다.

박 교수는 이어 우리 정부와 국민의 확증편향에 관해 말했다. 그는 "북한의 무수한 도발과 핵무기 개발을 경험한 상태에서도 평화, 평화협정, 평화체제, 종전선언에 관한 요구와 논의가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 국민 사이에 상당한 확증편향이 존재한다는 증거"라며 "지금까지 북한이 자행한 도발 사례를 기억한다면 어떤 협정이나 선언으로 평화를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저자는 특히 북한의 비핵화에 대해서 심각한 확증편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논문에 따르면 북한은 현재 수십개의 핵무기를 개발한 상태이고, 판문점 선언과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선언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했지만, 그 동안 비핵화를 추진한 바는 전혀 없다. 랜드연구소와 아산연구소의 분석에 의하면 북한은 매년 12~18개의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고, 2027년경이면 영국과 프랑스의 수준에 가까운 핵능력을 구비한다고 한다. 또한 북한은 싱가포르 회담에서 자신이 동의한 것은 '조선반도 비핵화'로서, 그들의 핵무기가 아니라 주한미군과 미국의 핵우산을 먼저 철수시키는 의미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논문은 실제로 한국 국민들의 상당수가 확증편향에 빠져 있다면 관련 통계를 제시했다. 2020년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발표한 '2019 통일의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5%가 평화협정이 시급하게 체결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자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도 불구하고 국민 10명 중 7명 이상이 평화협정의 추진이 필요하다고 믿고 있는데, 이것은 확증편향 이외에는 설명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일부 국민들은 종전선언에 대해서도 확증편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9월 28일 리얼미터에서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비핵화 여부와 상관없이 정부가 종전선언을 추구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국민의 49.0%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의 절반 가량이 찬성하고 있는 것이다. 동일한 질문에 대해 보수 성향 정당인 '국민의 힘' 지지층은 21.4%만 찬성하고, 75.0%는 반대했다. 반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의 경우 84.6%가 찬성하고, 11.9%만 반대했다. 논문은 10명 중 8명 이상이 종전선언에 동의하는 것으로 심각한 편향이 존재한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이어 "현 정부는 극심하게 편향된 인사의 관행을 보여왔다"며 현 정부의 집단사고를 꼬집었다. 논문에 따르면 문 정부가 출범하고 난 7개월 후인 2017년 12월을 기준으로 63명 정도인 청와대 1급 비서관 이상 가운데 35%인 22명이 운동권 및 진보 사회단체 출신이었고, 대통령 비서실의 경우 30명의 비서관급 중에서 57%인 17명이 그런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8월에도 이런 비율이 지속돼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 36%, 비서실의 61%가 운동권 및 진보 사회단체 출신이었다. 

논문은 야당에서 현 정부의 청와대가 '운동권 동문회관'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듯이 다른 어느 행정부에 비해서 동질성이 높았고, 따라서 집단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현 정부는 임기 중에 북한에 대한 접근 방식이나 평화협정 등에 관한 정책을 변경한 적이 없는데, 그것은 그들이 집단사고를 가졌기 때문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박 교수는 "실제로 4년 동안 현 정부가 집착에 가까운 노력을 해왔음에도 북한은 핵무기 폐기는커녕 핵무기 증강을 지속하고 있다"며 "정상적이라면 대대적인 정책 전환이 있어야할 것인데, 그렇지 않은 것은 집단사고 이외에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집단사고를 주창한 미국의 사회 심리학자 어빙 제니스(Irving Janis)는 집단사고의 세 가지 특징으로 ▲집단의 힘과 도덕성에 대한 과대평가 ▲닫힌 마음 ▲통일성을 향한 압력을 제시했는데, 이를 현 정부에 적용해 볼 때도 현 정부가 집단사고일 가능성이 낮지 않다고 논문은 주장했다.

박 교수는 "현 정부 인사들은 '촛불 혁명'이라고 말하듯이 변화를 추구하는 국민의 광범위한 지지에 의해 탄생했다면서도 힘과 도덕성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며 "문 대통령은 '적폐 해소'를 강조함으로써 현 정부의 도덕성을 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닫힌 마음'의 경우에도 현 정부는 그 정도가 낮지 않다"며 인사청문회 통과 없는 장관급 인사 임명을 예로 들었다. 논문에 따르면 2000년 이후 한국은 인사청문회를 통해 장관을 임명하고 있는데, 국회에서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않았음에도 장관급에 임명한 숫자를 보면 노무현 정부 3명, 이명박 정부 17명, 박근혜 정부 10명인데, 현 정부는 올해 6월까지 33명이었다. 야당의 반대로 인한 불가피성을 감안하더라도 이 정도로 큰 숫자를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논문은 지적했다.

논문은 '통일성에 대한 압력'도 현 정부의 경우 적지 않다면서 청와대 내에서는 운동권 및 진보 성향 시민 단체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어 다른 부처에서 이들을 의식하지 않은 채 정책을 결정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 중에서 정부의 주요 인사들이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경우를 찾아보기는 어렵다"며 "통일성에 대한 보이지 않는 압력이 존재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끝으로 "평화는 과정이 아니라 결과이고, 그 결과의 최소한 조건은 '전쟁의 부재'이다. 따라서 전쟁을 없애는 것이 평화 보장의 첫 번쨰 조건이고, 그것은 결국 전쟁의 억제와 대비를 위한 노력"이라며 "평화를 위한 평화만을 강조하는 것은 전쟁 억제와 대비 태세를 소홀히 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적은 전쟁의 승리가 가능하다고 오판해 전쟁을 발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자칫하면 평화를 위한 노력이 평화의 궁극적인 파괴 즉 전쟁의 발발을 유도할 수도 있다는 경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