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국성씨. 사진=BBC 캡처

장성택 숙청 이후 2014년 탈북해 한국으로 망명한 북한 고위 스파이 출신 김국성씨가 BBC 인터뷰 이후 국내 언론과는 처음으로 시사주간지 《시사저널》과 인터뷰하며 대한민국 내 북한 간첩의 암약 실태에 대해 증언했다.

이 잡지의 보도에 따르면, 김씨는 북한 "정찰총국에서 대남 및 해외정보를 담당하는 5국의 부국장급"으로 김책공업종합대, 인민경제대학,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을 졸업했다. 대학 졸업 이후 노동당 35호실과 작전부, 대외연락부, 정찰총국 등 4개 정보기관에서 근무했다. 이 매체는 그가 "우리의 대령 계급에 해당하는 대좌 군사칭호는 김영철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2016년까지 총국장을 맡던 정찰총국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부여받았다고 한다"고 전했다.

김씨는 해당 인터뷰에서 "북한 공작원의 청와대 근무는 분명한 사실"이라며 "박명수로 알고 있는 이 사람은 1976년 한국으로 직파된 첫 부부 공작조 중 한 짝으로, 김영삼 대통령의 청와대에서 근무하다 1994년 북으로 복귀했다. 이후 대남 자료의 총본산이라 할 정찰총국 소속 314연락소 10과(특수과)에서 일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BBC 인터뷰 때 북한의 공작원이 청와대에 들어가 근무했다고 내가 말하니까 다들 넥타이 매고 일하는 비서관이나 행정관만을 생각하더라"며 "박명수는 기술 업종, 그중에서도 공조 계통을 담당하는 일을 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냉난방을 담당하는 공조 기술자는 건물의 구조를 다 꿰고 있을 수밖에 없고 이 때문에 북한이 청와대를 밑창 나도록 다 들여다보고 있었다"며 "유사시 공조 시스템을 통해 독가스 살포 같은 테러를 벌여 폭삭 내려앉힐 수 있다"고 말했다. 이후 박명수는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평양 귀환 후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았고, 문수동에 아파트도 배정받았다고 한다.

김씨는 과거 고(故) 황장엽 비서 암살 시도 사건에 대해서도 증언했다. 그는 "김정은이 후계자로 부상하던 시점인 2009년 2월 정찰총국이 처음 무어졌고('조직됐다'는 의미) 2009년 5월에 첫 번째 공작 임무로 황장엽을 살해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고 전했다.

김씨는 당시 "김정은 대장 동지가 직접 황가(당시 북한은 황장엽 비서를 비하해 '황가'로 지칭했음)를 제끼라고 했으니 수행방안을 만들라"고 해 '상무조(TF)'를 만들었다고 했다. 이 TF의 책임자는 김영철 정찰총국장이 직접 맡았다고 한다.

김씨는 "황 비서가 그렇게 죽지 않았다면 결국 북한 공작조에 의해 암살당했을 것"이라며 "황 전 비서가 자연사하도록 놓아두어서는 안 된다는 게 김정은과 북한 공작부서의 확고한 입장이었다"고 증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