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파적 양극화는 대선 후보를 바라보는 유권자의 인식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당파적 양극화가 기성 정치인뿐 아니라 정당 정치 외곽에서 등장하는 정치 신인에 대한 이념적 인식에도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장승진 국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지난 9월 정치 학술지 《한국정치학회보》에 게재한 '당파적 양극화 속 새로운 정치적 대상에 대한 이념적 인식: 윤석열 현상을 사례로' 논문.
장승진 교수는 지난 3월 검찰총장에서 전격 사퇴한 뒤 현재까지 대선 지지율 1~2위에 오르내리고 있는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사례, 이른바 '윤석열 현상'을 중심으로 유권자의 정치적 대상에 대한 이념적 인식을 분석했다.
논문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윤석열이 검찰총장직을 사퇴한 직후인 올해 3월 18일부터 25일까지 일주일에 걸쳐 수집된 자료를 사용했다. 전국의 만18세 이상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지역별, 성별, 연령별 기준 비례 할당을 통해 추출된 1200명의 응답자가 온라인 설문에 참여했다. 윤 후보가 국민의힘에 입당하기 약 4개월 전에 수집된 자료를 수집·분석해 유권자가 정당 정치 밖의 정치 신인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알아봤다.
장 교수는 서론에서 "윤석열 현상에 대한 분석은 윤석열에만 국한되지 않는, 앞으로도 다시 나타날 수 있는 또 다른 정치 신인의 예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는 이론적·경험적 함의를 제공해 줄 수 있다"며 "본 논문은 안철수, 반기문, 윤석열 등과 같이 기성 정치권 외부에서 반복적으로 소환되는 제3후보가 어떻게 유권자들에게 정치적으로 인식되고, 결과적으로 익숙한 정당 정치의 틀 안으로 편입되는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논문은 연구 결과를 분석하며 정당 정치에 대한 불만이 기성 정당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새로운 후보에 대한 수요를 발생시키지만, 역설적으로 이런 새로운 후보에 대한 정치적 인식은 다시 현존하는 정당 정치에 기대어 형성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유권자들이 새로운 정치적 대상을 인식하기 위해선 기존에 익숙한 대상에 대한 정보로부터 추론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논문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일수록 그리고 국민의힘과 이념적으로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윤석열이 스스로와 이념적으로 가까운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 교수는 "윤석열이라는 새로운 정치인의 이념적 위치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윤석열이 현 정부와 갈등을 겪으면서 검찰총장직에서 사퇴했으며 그 과정에서 국민의힘과 지속적으로 연결됐기 때문에 대통령 및 국민의힘에 대한 평가가 윤석열의 이념적 위치를 추론하는데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논문이 보여주는 중요한 발견은 새로운 정치적 대상에 대한 추론이 인지적 정보뿐만 아니라 정서적 호감도에도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정서적 호감도에 기반한 추론 과정은 정치 지식 수준이 낮은 유권자가 아니라 오히려 높은 유권자들 사이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이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논문은 정치 지식이 높은 유권자일수록 인식 대상에 대해 기존에 갖고 있는 정서적 태도에 부합하지 않는 정보를 무시하거나 혹은 그 태도에 부합하도록 재해석하는 것이 더 쉽게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치 지식이 높은 유권자일수록 윤석열이라는 새로운 정치적 대상의 이념적 위치와 입장을 새롭게 인식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이 경험하는 정서적 양극화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해석하기 쉬워진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결론에서 "본 논문의 발견은 당파적 양극화가 가져오는 결과의 폭과 범위가 매우 크고 넓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며 "무엇보다도 당파적 양극화가 심화될수록 새로운 정치적 대상이 기존의 정당 정치의 문법에 기대어 인식되는 경향이 강화되며, 이는 다시 새로운 정치적 대상이 등장하더라도 기존의 정당 정치의 틀에는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점차 축소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