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회고록을 펴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8일 《조선일보》 '아무튼 주말' 인터뷰에서 지난 19대 대선 출마 당시 벌어졌던 각종 논란과 현 정국 및 문재인 정권의 외교 문제에 대해 작심 비판했다.
반 전 총장은 "외무부 여권과 담당으로 시작해 유엔 사무총장까지 지낸 50년 공직 생활 동안 나를 헐뜯거나 비난한 사람은 없었다. 유엔 총장 시절 각국의 독재자와 싸울 때도 저속하거나 노골적인 표현은 쓰지 않았다"며 "그런데 총장 마치고 귀국한 첫날부터 온갖 중상모략이 쏟아지더라. 사람이 그렇게 희화화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아주 바보가 됐다"고 2017년 초 당시를 회고했다.
반 전 총장은 "나중에 법원 판결로 드러났지만 드루킹 세력이 비방 댓글을 쏟아내며 여론 조작을 한 결과였다. 선량한 시민이 아무것도 모르고 걸어가는데 요소요소에 복병을 해놓고 총을 쏴댄 셈"이라며 "공직자로서 내 50년 명예와 유엔의 명예가 무참히 훼손된 그 20일에 대해 한 말씀은 꼭 드려야겠다 싶어 책(회고록)으로 썼다. 나라를 위한 충정 어린 마음에서 쓴 것이라 여겨달라"고 토로했다.
반 전 총장은 '박연차 뇌물 보도'에 대해 묻는 기자의 질문에 "내가 (노무현 대통령과 가까운) 박연차씨에게서 20만불을 받았다는 보도는 참을 수 없었다"며 "《시사저널》이 적시한 문제의 그날은 저녁 6시 30분부터 베트남 외무장관과 만찬이 있었는데 박연차란 사람은 7시 30분이 돼도 나타나지 않다가 뒤늦게 도착해서는 ‘시시한 포도주 말고 폭탄주를 마시자’며 깽판을 부렸다. 내가 외교 만찬 자리에서 무슨 짓이냐고 역정을 냈는데, 그날이 박연차란 사람을 처음 본 날"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런데 《시사저널》은 만찬 2시간 전에 박연차를 만나 내가 돈 봉투를 받았다는 기사를 나의 귀국일에 맞춰 보도했다. 외교부에 보관된 당일의 사진과 기록들을 과학수사연구소가 분석한 결과 그 보도는 엉터리로 결론났다"며 "국회 기자들에게도 자료를 주고 설명했는데 아무도 쓰지 않더라. 주위에선 형사소송 하라는데 유엔 총장까지 한 사람이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해서 검찰에 드나드는 게 말이 되나, 확인이 됐으면 그만이다 하고 접었다"고 술회했다.
반 전 총장은 '2017년 대선판에서 실수하고 공격받은 것에 비하면 내년 대선 주자들에게 제기된 의혹의 무게는 그 몇 배인데도 아무렇지 않게 굴러가니 억울할 것 같다'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내게 만일 대장동 사건이 닥쳤다면 비리에 연루됐든 안 됐든 장(長)으로서 책임을 지고 벌써 그만뒀을 거다. 그런데 눈도 깜짝 안 하더라(웃음). 나는 그렇게 못 한다. 거짓말을 하거나 양심에 찔리거나 하면 금방 얼굴에 나타나서… 외교부 장관을 하고 유엔 사무총장 하면서도 ‘권력을 좇는다’ ‘권력을 휘두른다’는 말은 나와 무관한 것이었다."
반 전 총장은 문재인 정부의 종전선언 추진에 대해 "북핵 협상 당사자로 남북문제를 오래 다뤄본 나로서는 순서가 완전히 잘못됐다고 볼 수밖에 없다. 비핵화라는 어마어마한 숙제가 안 풀리고 있는데 종전선언을 집어넣는 게 무슨 소용인가"라며 "이미 ‘9·19 군사 분야 남북 합의서’에서 종전 선언 비슷한 걸 했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까지 최소 8번(트럼프 포함)에 걸쳐 북한 지도자들과 정상회담도 했다, 그중에서 제대로 이뤄진 게 뭔가"라고 지적했다.
반 전 총장은 "평화적 교류, 비핵화 약속 하나도 지켜지지 않은 마당에 종전선언? 언론이 얘기하는 정치 쇼밖엔 안 된다"며 "북한은 안보리 결의도 안 지키고 여전히 제멋대로 하는데 우리 국민들 자존심은 생각 안 하나. 대통령은 유한하고 국민과 국가는 영원하다, 당장 북한에 좋은 구실만 준다, 종전했는데 왜 유엔사가 필요하냐며 해체를 요구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 전 총장은 '새로 선출될 대통령은 북한에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원칙을 지켜야 한다. 북한에 끌려다니며 애걸복걸하는 형국이 되어선 안 된다, 좀 당당하게 하자, 천안함에 대해서 왜 말을 못 하나"라며 "고립될수록 북한만 손해 본다. 나는 북한이 얼마나 갈 수 있을지 의심한다, 누구도 동독이 그렇게 빨리 망할 거라고 예측하지 못했다"고 충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