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YTN 캡처

특별사면이 확정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오는 31일 0시 돌아온다. 2017년 3월 소위 ‘최순실 사태’로 인해 서울구치소에 구속 수감된 이후, 재판을 거쳐 22년형이 확정돼 4년 9개월간 감옥 생활을 하다 비로소 영어(囹圄)의 몸에서 풀려나게 됐다. 옥살이를 한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많은 기간 감옥에 있었고, 본인의 대통령 재임 기간보다도 많은 날들이다. 

어깨·허리 질환 등 지병으로 곧잘 병원 신세를 졌고 지금도 정서적으로 불안한 상태라고 전해지지만, 긴 수감 생활을 견뎌낸 그의 평정심과 정신력만큼은 좌우(左右) 진영의 정치적 평가를 떠나 공통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헌정(憲政) 사상 초유의 탄핵과 비선실세의 국정농단 프레임으로 불명예를 안았지만, 수감 생활 중에도 꾸준한 독서와 세상 소식 경청 그리고 지지자들이 보낸 편지에 꼬박꼬박 답장을 써내려가면서 박 전 대통령은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초연한 부동심(不動心)’을 기른 듯하다. 

지난 20대 총선을 앞두고 당(黨)에 ‘야권통합’이라는 대의명분을 강조한 옥중서신을 건네고, 사면 소식에 강인한 자세로 “국민들에게 직접 감사 인사를 드릴 것”이라는 말을 남기며 복귀를 예고한 일들만 봐도 그 내공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박 전 대통령의 차기 행보와 정치 메시지가 대선 정국에 어떤 영향력을 발휘할지, 국민의힘을 비롯해 재야(在野) 보수 세력은 어떻게 재편(再編)될지’ 정가(政街)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의 ‘초인적(超人的) 인내력’은 이미 선친(先親)인 박정희 대통령과 어머니 육영수 여사를 흉탄에 잃고 난 후, 청와대를 떠나 십 수 년간 칩거(蟄居)하며 단련된 것이다. 이는 그의 수필집 《평범한 가정에 태어났더라면》(남송, 1993)에 잘 드러나 있다. 박 전 대통령이 칩거 생활을 하면서 쓴 일기를 모아 펴낸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권력의 속성 ▲역사적 교훈 ▲인생의 지혜 등을 논했다. 특히 ‘배신의 정치’를 비판하고 상호 신뢰를 중시한 박 전 대통령의 평소 지론이 자세히 나와 있기도 하다. 역사·정치와 관련된 내용은 지금의 현실정치를 비판하는 ‘쓴 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그만큼 이 책에는 ‘이기주의에 빠진 사람들’ ‘권력만 좇는 정치 모리배(謀利輩)’들에 대한 박 전 대통령의 비판이 주로 담겨 있다. 그가 1991년 12월 28일에 쓴 일기의 일부분이다.

“인간이란 그 얼마나 나약하고 쉽게 변하는 존재이던가!”

“‘제가 고생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당신께서 편안하시기만 하다면.’ 평소 끔찍이 희생적인 말을 했던 사람도 막상 작은 불이익이라도 당하면 그때 그 말은 어디로 갔나 무색할 정도로 불평을 토로한다. ‘난 도저히 참을 수 없어요. 이제 견딜 수 없어요.’ 물론 당시 한 말이 적어도 그 당시로는 진심일 수도 있고 또는 입에 발린 말일 수도 있으나 조그마한 고통 앞에서도 허망하게 무너지는 것을 볼 때 결과는 마찬가지이고, 인간이란 얼마나 약한 존재인가를 또 한 번 느끼게 된다. 나약할 뿐 아니라 그리도 쉽게 변할 수가 없다.

인생은 고해라고 했는데 과연 맞는 말이다. 그 고해를 항해하여 도달하는 곳은 어디인가. 바로 ‘허망’이라는 항구이다. 그러므로 흔히 세속에서 얻고자 하는 것을 추구하며 살다 보면 고해를 거쳐 허망에 도달하는 오직 한 가지의 코스가 있을 뿐이다. 타인의 인격이 잘못되어 있다 해서 자신이 그리 속을 끓일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의 옹졸함과 권모술수, 그들의 부정과 변신, 나약함, 비겁함……. 기타 모든 것은 그들의 문제이다. 나는 나의 길을 걸을 뿐이고, 그들은 그들의 길을 가고 있을 뿐이다.

1990년 9월 2일에 쓴 일기에서는 “권력은 칼이다. 권력이 크면 클수록 그 칼은 더욱 예리하다”면서 “조금의 움직임으로도 사람을 크게 해칠 수 있다. 그러므로 큰 권력은 사람들을 두렵게 만들지만 정작 그 큰 권세를 가장 두려워해야 할 사람은 그것을 소유한 당사자”라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은 “깊은 철학을 지니고 수양을 많이 한 사람, 하늘의 가호를 받는 사람이 아니면 누구도 자기의 큰 권세를 제대로 다룰 수 없다”며 “그 칼을 마구 휘둘러서 쌓여지는 원망, 분노, 복수심 등은 되돌아와 그의 목을 조른다”고 설파했다.

“실컷 일하고 애쓴 사람은 욕먹고, 겉으로 光만 내는 사람은 훌륭하게 인정받아”

박 전 대통령은 또 “실컷 일하고 애쓴 사람은 빛을 못 보고 오히려 욕까지 먹고, 애쓴 것도 없이 겉으로 광만 내는 사람은 사회적으로 훌륭한 인물이라고 인정받는 경우가 왕왕 있다”면서 “어디 이런 경우뿐이랴. 하여튼 세상은 공평치 못하고 글 쓰는 사람들은 때로 깊은 내용을 모르고 자신의 편견과 겉핥기식의 지식, 정보만 가지고 마구 글을 써댄다(1991년 4월 20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가 1991년 2월 20일, 8월 3일에 쓴 일기의 일부분이다.

요즘 보는 역사책이 주는 한결 같은 교훈. 나라가 망하기 전에 먼저 임금의 마음이 결단난다. 임금 마음에 망조가 들면 제일 먼저 교만해진다. 그리되면 자연히 충신, 간신의 말을 구별 못한다. 나라를 잘 이끌고 지키려는 지도자는 마땅히 자기 마음부터 잘 지키고 다스려야 한다. 그리하면 그 나머지는 자연히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한 지도자가 이끌고 있는 나라의 모습, 그 현주소는 바로 그 지도자의 마음을 펼쳐 놓은 것일 뿐이다.

이 세상을 살면서 분노로 이성을 잃게 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분노로 인해 이성을 잃고 증오심으로 정신을 못 차린다면 그들은 분노를 유발한 사람보다 별로 나을 것이 없다. 그런 일들이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런 일들을 참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결국 이성까지 잃고 마는 자기 자신이 바로 문제인 것이다…. 역사를 살펴보면 왜 그다지도 억울한 백성이, 억울한 충신이 많은가. 그들은 양심대로 살고도 중상모략을 당하는 정도가 아니라 부지기수로 목숨을 잃었다. 역사는 그러한 사람들의 죽음의 행렬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어떤 사람은 국회의원 되는 것만이 지상 목표... 무조건 높은 자리에만 오르려는 사람들”

박 전 대통령은 1991년 8월 7일에 쓴 일기에서 “어떤 사람은 다른 것이야 어찌 됐든 무조건 높은 자리에만 오르려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국회의원 되는 것만이 지상 목표다”라며 “과장 된 사람은 국장이 되려고 하고, 국장은 사장이 되려고 하고, 그 외의 다른 것에서는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이 권세와 명예와 돈을 좇아 우왕좌왕, 마치 생(生)에 있어 그것이 모든 것인 양 난리를 치는 세상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위의 모든 것이 아무리 좋은 것들이라고 해도 근본적이고 절대적인 가치요, 목표는 될 수 없다”면서 “단 하루를 이 세상에 살다 가도 바르게 살고, 어떠한 환경에 처해도 마음의 평화와 고요를 잃지 않고 사는 삶이어야 한다”고 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