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가 2014년 크림반도 합병과 돈바스 전쟁 개입에 이어 최근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위협까지 우크라이나 사태를 장기화하고 있다. 러시아가 서방 세력과 갈등을 빚고 손해를 감수하며 우크라이나 사태를 지속하는 이유는 뭘까? 현재까지 많은 연구자들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확장 저지, 러시아 공세 정책의 연장 등 전통 안보의 시각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
그런데 최근 러시아의 '존재론적 안보'(ontological security) 불안을 우크라이나 사태의 원인으로 지목한 논문이 나왔다. 윤도원 연구원(연세대 정치학과 박사과정)이 지난 8월 사회과학 학술지 《사회과학연구》에 게재한 '돈바스 전쟁은 왜 끝나지 않는가?: 존재론적 안보와 러시아-우크라이나 관계' 논문.
윤 연구원은 논문의 서론에서 "물질적·물리적 안보의 시각에서는 우크라이나 개입과 분쟁의 장기화를 정합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며 "러시아는 물질적·물리적 안보의 측면에서 손해를 감수하는 행위를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러시아의 행위는 '존재론적 안보론'에 입각해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논문에 따르면 '존재론적 안보' 개념은 심리학자 랭(Ronald D. Laing)에 의해 제창됐으며, 해당 용례를 사회과학적으로 전유(專有)한 인물은 기든스(Anthony Giddens)이다. 기든스은 존재론적 안보를 '사건에 대한 연속성과 질서의 감각'으로 정의했다. 그는 특히, '일관성'이 존재론적 안보의 '핵심'임을 강조했다.
저자는 "존재론적 안보론의 시각에서는 자아와 정체성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행동이라면 물질적·물리적 시각에서 비합리적으로 판단되는 행태들도 '합리적인' 행동으로 간주할 수 있다"며 "논리의 연장에서 존재론적 안보를 추구하는 국가는 '상대방과 갈등이 발생하거나 지속되는 상황이 존재하더라도 해당 관계가 일정 이상의 인식적, 물리적 측면의 안보를 제공·보장할 수 있다면 갈등을 방지하지 않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고 전했다. 존재론적 안보를 추구하는 국가는 조건과 맥락에 따라서 일정 이상의 물질적·물리적 안보의 불안정성을 감내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또한 존재론적 안보론의 핵심 구성요소로 '관례'(routine)와 '서사'(narrative)가 있다고 소개했다. 윤 연구원은 "관례와 서사는 불확실성이 높은 국제정치 환경 속에서 일정 이상의 연속성을 제공해 불확실성을 축소하는 데 기여한다"며 "반대로, 안정적이며 잘 변화하지 않는 관례의 특성상 갈등이 지속되는 요인으로도 작동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이어 "서사는 국가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이를 통해 국가는 '자신의 행동을 자신에 대한 이해와 연계'시킴으로써 국가 정체성을 유지한다"며 "특히, 위기 시 두려움과 불안감을 줄이기 위해 서사가 적극적으로 활용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저자는 "푸틴 3기 러시아의 외교정책인 신유라시아주의(Neo-Eurasianism)에 기반한 문명주의(civilizationists)는 러시아의 자타 구분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이런 자타 구분에 따른 동질적 정체성 형성은 존재론적 안보론에서 강조하는 정체성의 일관성 유지 기제와 일정 부분 상통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우크라이나는 벨라루스와 함께 러시아의 문명주의 기획에서 가장 핵심을 구성하는 동슬라브 3개국에 속한다"며 "따라서, 러시아에게 우크라이나는 외국이 아니라 자국과 이격될 수 없는 이웃 국가로 인지됐다"고 말했다. 그러기에 우크라이나가 서방 세력과 가까워질수록 러시아는 존재론적 안보 불안을 느끼고 강경 대응을 하게 된다는 분석이다.
이어 러시아의 '크림합병'과 '돈바스 전쟁'의 두 사례를 존재론적 안보 관점에서 분석했다. 윤 연구원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개입과 크림합병은 유로마이단 이후 심화된 러시아 정책결정자들의 존재론적 안보 불안을 감소시키고자 하는 선택이었다"며 "나아가, 돈바스 전쟁의 장기화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양자 간 새로운 관례화된 관계와 서사를 형성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는 러시아의 존재론적 안보에 있어서 새로운 초점으로 기능하고 있으며, 예측가능성과 새로운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데 토대로 기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저자는 이런 분석에 입각해 양자 관계의 향방을 추론해보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갈등은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윤 연구원은 "크림합병과 돈바스 전쟁의 장기화를 통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양자 간에 새로운 관례화된 관계가 형성되고 있으며, 당사국들 역시 새롭게 형성된 관례에 종속되고 있다"며 "역으로 추론해보면, 형성돼 있는 관례화된 관계를 변경 시켜 새로운 관례화된 관계로 변화시킬 동력을 제공할 상황과 행위자가 급격히 부상하지 않는 이상 기존의 형성된 관례화된 관계는 현상유지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