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TV조선 캡처

2022년 1월 1일 자 《조선일보》 오피니언 면에는 의미 있는 칼럼 2편이 실렸다. 모두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담론으로, 하나는 워싱턴 특파원의 논평 또 하나는 김영수 영남대 정치학 교수의 논단이다. 그들은 작금의 시대에 자유민주주의가 위기에 놓였다고 진단한다. 무엇이 우리 국가이념이자 헌법정신이요 사회질서의 중추인 자유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하는가? 그것은 결국 선의를 가장한 전체주의, 파시즘적 대중독재의 흐름이다. 지금 사회 곳곳에서 자유가 질식하는 파열음이 솟구치고 있다. 코로나 사태와 디지털 발달로 중앙권력이 개인을 쉽게 영악하게 감시·통제하고, 좌우 가릴 것 없이 혹세무민하는 포퓰리즘의 그림자가 세계를 잠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의 경고 "민주주의 對 전제정치"

김진명 《조선일보》 워싱턴 특파원은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22년 이후 세계의 앞날을 전망한 최근 특집 호에서 '민주주의 대 전제 정치'의 대결을 2022년 주목해야 할 10개 트렌드 중 첫 번째로 꼽았다"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9일(현지 시각) '민주주의 정상회의' 개막연설에서 '올해 프리덤하우스는 세계의 자유가 15년 연속 후퇴했다고 보고했다'며 '이것이 우리 시대를 규정하는 도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적었다.

김 특파원은 "세계를 둘러보면 어느 틈엔가 우리가 당연시하게 된 '자유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있다는 것을 금방 느낄 수 있다"며 "중국이나 러시아 같은 전제주의 국가들은 인공지능과 안면 인식 같은 첨단 기술로 자국민을 옥죄는 한편, 자유민주주의 사회에 침투해 여론을 교란하는 사이버 작전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것이란 우려도 계속 제기된다"고 지적했다.

김 특파원은 "한국인들의 자유와 한국 사회의 민주적 원칙도 여러 방면에서 시나브로 잠식돼 왔다. 자유·민주의 위기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건 중 하나가 최근 드러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무차별 통신 자료 조회라고 생각한다"며 "외신 기자를 포함한 언론인들의 통신 자료와 학회 단체대화방 등을 광범위하게 조회한 것이 '고위공직자와 그 가족의 범죄를 척결'한다는 공수처 설치 목적에 어떻게 부합하는지 알 수 없다. '수사상 필요'란 말 한마디면 별 한계 없이 수사기관이 통신 자료를 조회할 수 있게 돼 있는 법체계 자체에 의문이 느껴진다"고 비판했다.

"민주·민족·정의, 아름다운 모든 것이 넘쳐도 자유가 없으면 대한민국의 미래도 없다"

김영수 영남대 교수는 "한국도 1919년 3·1운동 때 자유민임을 선언했고, 1948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선택했다. 자유를 향한 결단과 선택이 식민지와 전쟁, 빈곤의 가시밭길을 헤쳐 오며 오늘의 한국을 만들었다, 현대 한국은 자유의 아들이다"라며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자유'를 불편해한다. 2018년 개헌안 초안에서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서 자유를 뺐다, 역사 교과서에서도 국체를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민주주의로 기술토록 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경제에서도 자유보다는 규제를, 검찰의 정치적 독립성보다 이른바 민주적 통제를 강조한다. 북한인권법에 반대하고, 5·18왜곡처벌법을 제정했다"며 "나치즘도 처음부터 나치즘은 아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을 선의로 포장하기 때문이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김 교수는 "말의 기술이 중요한 정치 세계는 특히 그렇다. 파시즘은 민족·정의·평화 같은 훌륭한 이념의 외피를 쓰고, 대중의 힘으로 침묵을 강요할 때 시작된다"며 "한국은 70여 년 만에 처음으로 퇴조하고 있다. 민주·민족·정의, 아름다운 모든 것이 넘쳐도 자유가 없으면 대한민국의 미래도 없다"고 일갈했다.

민경국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는 학술지 《제도와 경제》 제7권 제3호에 게재한 논문 '자유사회와 정치질서: 제한적 민주주의'에서 자유민주주의의 본질과 형성 원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한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시장경제를 빼고 민주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시장의 자유는 시민적 자유와 민주주의보다 먼저 생겨나서 이 두 가지 가치의 생성과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그래서 시장경제는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적 요소이다. 시민들이 번영을 누리면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해서는 자유민주주의에서 경제자유를 빼서는 안 된다.

"자유사회를 위한 정치질서는 헌법을 통해 민주주의 권력을 제한하는 사회"

그러나 주목할 것은 자유사회를 확립하고 유지하기 위해 적합한 정치질서는 '제한된' 민주주의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공공선택론이 보여주고 있듯이 다수의 지배를 의미하는 민주주의는 그룹 산업을 유리하게 하고 다른 지역이나 산업은 불리하게 하는 차별적 입법을 산출한다. 장기적 정책보다는 단기적 정책을 선호하는 게 민주적 정치과정이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독재를 초래하고 이는 일인 독재나 다름이 없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에서 민주주의는 제한될 때만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양립한다. 이는 자유사회의 정치질서는 무제한적 민주주의가 아니라 제한적 민주주의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한된 민주주의를 기초로 하는 정치질서가 한국사회의 미래지향적 자유사회라는 것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자유사회를 위한 정치질서는 헌법을 통해 민주주의 권력을 제한하는 사회이다. 다수의 권력이 제한된 민주주의가 자유사회이다."

이와 관련, 필자가 3년여 전 《주간조선》 기자 시절 보도한 기사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가 빠지면'의 핵심 대목들을 열거해본다.

"헌법 조문과 교육 방향 이전에 자유민주주의 정신·체제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이다. 대한민국이 건국 70년 만에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한 북한과 달리 선진국 진입에 성공한 것은 바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6·25전쟁 당시 UN은 왜 한국에 파병을 결정했나.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는 한국이 미국과 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이었다. 북한의 국호에는 ‘자유’라는 말이 없다. 북한에서는 고문과 아사가 빈번하다. 민주주의 앞에 붙는 ‘자유’는 단순한 수식어가 아닌 이념적 지향이다.

학계에서는 ‘자유’가 빠진 ‘민주주의’라고만 표현하게 되면 오독(誤讀)의 위험성이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체제도 실상은 다양하다. 사회, 인민, 숙의, 참여 등 노선과 방법론을 기준으로 저마다 수식어를 붙이기 나름이다. 민주주의 자체는 제도이기 때문에 특정 지향점을 부여해야 하나의 이념이 되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가 말살된 북한도 국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민주주의가 분명 들어간다. 그런데 실상은 어떤가. 물론 정상적인 현대 국가의 민주주의라면 당연히 자유민주주의를 의미한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상식의 차원이다.
   
헌법과 교과서에서는 모호한 표현이 아닌 적확한 의미를 새겨 넣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 그 자체를 명문화(明文化)해 혹여 있을지 모를 오독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을 확고하게 천명해야 한다는 뜻이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는 이념적 지향점이고, 민주주의는 정치제도를 뜻한다. 민주주의를 채택하더라도 자유주의가 아닌 전체주의를 지향하면 ‘전체주의적 민주주의’가 된다. 이른바 나치즘 같은 것이다. 히틀러가 이끈 당대의 독일은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뽑았지만 자유주의도 민주주의도 이루지 못했다. 전체주의적 민주주의는 오직 ‘지도자’만이 국민의 진정한 이해관계를 표현한다는 주장에 근거를 두고 있다. 즉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루려면 절대 독재도 할 수 있다는 궤변이 나오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실질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선 자유주의를 목표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
   
자유민주주의는 권력의 감시와 분리를 지향하는 민주주의 틀 안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바탕으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이념이다. 헌법재판소는 판례를 통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즉 자유민주주의의 구성요소에 대해 예시하고 있다. 기본적 인권의 존중, 권력분립, 의회제도, 복수정당제도, 선거제도,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골간으로 한 경제질서 및 사법권의 독립 등이다. 우리나라 자유민주주의의 개념은 1987년 개헌 당시 폭력노선의 인민민주주의와 구분해, 독재체제로 흐를 수 있는 위험성을 차단하고 국민의 자유와 주권을 보장한 통치이념이다.
   
자유민주주의에 있어 특히 경제적 자유의 제한은 개인의 자유권 전체를 위태롭게 만든다. 이와 관련 민경국 강원대 경제학과 명예교수의 책 ‘자유민주주의란 무엇인가?’(백년동안·2015)에 따르면 부(富)의 생산을 통제하는 것은 인간생활 그 자체를 통제하는 길이다. 책은 세무조사를 예로 든다. ‘정부의 말을 듣지 않는 기업들, 정부의 간섭주의 정책을 비판하는 기업들에 대한 세무조사가 대표적인 예다. 자유주의를 지향하는 언론 매체나 또는 시민단체를 지원하는 기업들에 대하여 세무사찰을 감행해 기업인들의 정치적 선호의 표현을 억압한다. 따라서 경제자유가 적으면 적을수록 국가가 다른 자유를 억압할 수 있는 여지가 그만큼 커진다.’
   
자유민주주의는 인간의 존엄성을 중시한다.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헌법을 세우고 민주적 절차로 선출된 대표자들이 행복추구권, 사회보장권, 사상·언론·표현·결사·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도록 만들었다.
   
헌법재판소는 판례요지집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즉 헌법상의 자유민주주의 원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우리 국민들의 정치적 결단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및 시장경제원리에 대한 깊은 신념과 준엄한 원칙은 현재뿐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통틀어 일관되게 우리 헌법을 관류하는 지배원리로서 모든 법령의 해석기준이 된다.” (2000헌마238 판례집 중)
   
이와 관련 ‘한반도 인권·통일 변호사모임’ 성명서에 따르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자유민주주의)는 1948년 제헌헌법으로부터 건국 후 제9차 개헌을 통한 현행헌법까지 일관하여 유지되고 있는 헌법의 핵심 가치로서 개헌으로도 파기할 수 없는 헌법 제정규범 내지는 근본규범”이라고 규정돼 있다.
   
다시 말해, 애초부터 우리나라 헌법에서도 자유민주주의는 지고(至高)의 가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