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염돈재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이 수년째 ‘영어(囹圄)의 몸’으로 수감 생활 중인 국정원 원장 및 간부들의 사면·복권을 촉구했다.
지난달 30일 오후 염 전 차장을 비롯해 국정원 퇴직자들로 구성된 ‘국정원장·간부에 대한 사면·복권을 위한 국정원 전직 직원 모임’은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해당 모임은 이날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직 국정원장과 국정원 간부 40여 명에 대한 사면·복권을 간곡히 청원한다”고 밝혔다. 현재 수감 생활을 하고 있는 국정원장은 남재준(징역 1년 6개월)·이병기(징역 3년)·이병호(징역 3년 6개월)·원세훈(징역 9년) 등 총 4명이다. 원세훈 전 원장은 정치 개입 등으로 유죄 판결을,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원장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 손실죄를 받았다.
염 전 원장은 “한명숙 전 총리가 사면·복권되고, 내란선동죄의 이석기 전 의원이 가석방됐다. 그런데 영어의 몸이 돼 있는 네 분의 국정원장(원세훈·남재준·이병기·이병호)과 실형을 선고받은 국정원 간부 40여 명에 대해서는 아무 조치도 이뤄지지 않아 매우 유감”이라며 “네 분의 국정원장과 40여 명의 국정원 간부들은 모두 30년 이상 국가를 위해 헌신해온 모범적인 공직자들이다. 이들의 명예를 회복시킬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은 사면·복권일 것”이라고 역설했다.
염 전 원장은 “최고 정보기관 수장 네 사람이 이렇게 한꺼번에 감옥에 간 것은 세계 역사에서도 예를 찾아볼 수 없는 참혹한 참사다. 대한민국의 국격과 국정원 전·현직들의 명예는 바닥으로 추락하게 됐다”며 “문재인 정부의 연말연시 사면에 뇌물죄를 받은 한명숙 전 총리와 내란선동죄를 받은 이석기 전 의원이 사면 또는 가석방됐으나 국정원장과 간부들에 대해선 법 관용이 일체 배제됐다”고 개탄했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국가 안보 업무를 수행하다가 적폐로 몰려 무리하게 사법 처리된 전직 국정원장과 직원들에게 법 관용이 철저히 외면되고 있다”고 질타했다. 박왕규 전 주영 한국 대사관 공사는 “국민 통합을 위해 사면과 복권의 폭을 대담하게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정원 퇴직자들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국고 손실죄는 회계 관련 직원에게만 적용되는 범죄다. 이제까지 중앙부처의 장(長)을 회계 관계 직원으로 판단한 판례가 단 한 건도 없다”며 “(전직 국정원장과 간부들이 실형을 선고받은 것 자체로) 국제사회에서 국정원을 세계 3류 정보기관으로 인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하 해당 성명의 전문(全文)이다.
전직 국정원장과 간부들은 하루빨리 사면돼야 한다!
일생을 국가정보원에서 근무해온 저희 전직 1527명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민생사범에 대한 신년 특사가 코로나와 경제 침체로 고통받는 국민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것이라 믿고 적극 환영합니다.
그러나 뇌물죄의 한명숙 전 총리가 사면·복권되고 내란선동죄의 이석기 전 의원이 가석방된 반면, 국가안보의 최일선에서 헌신해 온 전직 국정원장 네 분과 40여 명의 국정원 간부에 대해서는 아무 조치도 취해지지 않아 국민 통합과 화합이라는 이번 특사의 의미가 크게 퇴색한 것 같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특히 국정원 특수활동비 청와대 지원 문제로 각각 1년 6개월, 3년, 3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남재준, 이병기, 이병호 전 원장에게 적용된 법률과 형량을 보면 우리가 과연 법치국가에 살고 있는지 회의하게 됩니다.
세 분 원장에게 적용된 국고손실죄는 회계 관계 직원에게만 적용되는 범죄입니다. 국정원장은 회계직원의 임명권자이지 회계 관계 직원이 아닙니다. 회계 관계 직원이면 반드시 가입해야 하는 재정보증에도 가입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이제까지 중앙부처의 장을 회계 관계 직원으로 판단한 판례가 단 한 건도 없습니다.
더욱이 국고손실죄는 ‘국고 손실’을 인식하고 있어야 하는데 국정원장들은 그런 인식이 없었습니다. 국정원 특활비 청와대 지원이 역대 정부에서 오랫동안 지속돼 온 관행이고 예산전용은 정부 부처에서 흔히 발생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2015년 대법원장이 공보관실 운영비 3억5000만 원을 각급 법원장 격려금으로 사용하고 법무부 검찰국장들이 최근까지 정보 수사용 특별활동비를 검사 격려금으로 사용한 것 등은 예산전용 사례의 일부일 뿐입니다. 이 때문에 김대중 정부에서 국정원을 지낸 이종찬 원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김대중 정부도 국정원 예산을 활용한 사례가 있다면서 이병기, 이병호 원장은 억울한 점이 있을 것이라 언급했고, 박지원 현 국정원장도 인사청문회에서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국정원장에 대한 국고손실죄 적용은 법조계에서도 논란이 있었으며, 그 때문에 국정원장들에 대한 중형선고가 문재인 정부의 잘못된 적폐청산을 합리화하고 국정원을 무력화하기 위한 억지 춘향식 꿰맞추기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더욱이 세 분 원장은 모두 한 점 흠결 없이 평생을 국가를 위해 헌신해온 존경받는 공직자들입니다. 나이 80 전후인 이분들에게 중형을 내리고 이번 사면·복권 대상에서도 제외한 것은 공직사회에 큰 실망을 줄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과정에서 형을 받은 국정원 간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이 1000명을 투입해 추진 중인 사이버 심리전에 대처하기 위한 방어심리전 활동을 했다가 ‘댓글 사건’으로 기소된 어느 간부의 경우 ‘정치 관여’로 특정된 댓글이 전체 댓글의 0.0045%에 불과하고 이에 사용된 액수를 계산하면, 총 10만 원에 불과한데 국고손실죄로 1년 6개월의 실형이 선고됐습니다.
반국가단체 간부에 대한 정보수집 활동을 하다가 불법사찰로 7개월 실형을 받은 간부도 있고, 해외 첩보에 따라 김대중 전 대통령 비자금 1억 달러 북한 송금설 확인 활동을 하다가 2년형을 받은 간부도 있습니다. 문제의 비자금은 총 10억 달러가 넘는 엄청난 규모이고 미국 정보기관도 내사 중이던 사건입니다.
이런 정보활동은 세계 모든 정보기관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인데 이를 불법사찰이라 한다면 국가정보기관은 무슨 일을 하라는 것이며 국가안보와 국가이익은 어떻게 지키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대법원 판결의 권위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국정원장과 국정원 간부들에게 적용된 법과 형량이 적절한지에 대한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대법원의 판결이 가져올 엄청난 후과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고 정보기관장 4명이 대통령에게 불법자금을 지원하다가 동시에 감옥에 갔다는 것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일입니다. 국제사회가 그렇게 믿는다면 자유, 민주, 번영의 모범국가 대한민국의 국격은 땅에 떨어질 것이며, 국정원은 세계 3류 정보기관으로 인식될 것입니다.
세계 어느 정보기관이 이런 정보기관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길 것이며 어떤 사람이 국정원 업무에 협조할 것인지를 생각하면 참담한 심정입니다.
네 분의 국정원장과 40여 명의 국정원 간부들은 모두 30년 이상 국가를 위해 헌신해온 모범적인 공직자들입니다. 대법원 판결로 추락된 국격과 국정원의 명예회복에는 오랜 시일이 소요될 것입니다. 이 기간을 단축하고 국정원장 네 분과 간부 40여 명의 명예를 회복시킬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은 사면·복권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는 문재인 대통령이 결자해지 차원에서 재임 중 사면, 복권의 은전을 베풀어 주시기를 간곡히 청원합니다. 아울러 우리의 활동으로 국제사회와 우리 국민들이 적폐청산 과정에서 형을 받은 국정원장과 간부들 문제의 진실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21.12.30. 국정원장 등 사면·복권을 위한 국가정보원 전직직원 모임 회원 일동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