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 12월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법사위 회의장 앞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사찰 의혹을 받는 공수처 해체 및 김진욱 공수처장 사퇴를 주장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최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정치인·언론인에 민간인까지 전방위적인 ‘통신정보 조회’를 한 것으로 드러나 이른바 ‘사찰(査察)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변호사 단체 ‘한변(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이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했다. 한변은 지난 9일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공수처 검사들이 고위공직자 지위에 있지 않고 범죄 혐의도 없는 변호사와 언론인들을 상대로 법원 허가 없이 무차별적으로 (통신정보를) 조회해 피해 당사자와 다수의 선량한 일반 국민에게 위압감과 불안감을 불러왔다”고 비판했다. 한변은 10일 서울중앙지법에 소장(訴狀)을 제출한다.

참여연대 출신으로 문재인 정권을 줄곧 비판해왔던 김경율 회계사는 이날 자 《중앙일보》 칼럼에서 본인이 ‘공수처의 통신정보 조회 대상’이었다는 사실을 털어놨다. 김 회계사는 “한 기자가 통신자료 제공내용을 확인해 보면 어떻겠냐고 했다. 모임이 끝난 깊은 밤 온라인으로 내 휴대전화 통신사인 KT에 제공내용 확인을 의뢰했다”며 “다음 날 정오쯤 나온 결과는 당황스러웠다. 2021년 10월 5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3부의 요청에 따라 전기통신사업법 83조 3항에 근거해 성명과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가입일과 해지일을 제공했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 회계사는 “이 법에 따르면 법원과 검사 또는 수사 관서의 장, 정보수사기관의 장이 재판 및 수사, 형의 집행을 위해 통신자료를 조회할 수 있다”며 “공수처가 수사 목적으로 (나의) 개인정보를 수집한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나는 공수처 수사 대상인 고위공직자가 아니다(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2조), 공수처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수사3부에 여러 차례 전화했으나 한 번도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공수처 출범 이전, 이 같은 ‘사찰 논란’을 예견한 과거 한 학술논문이 있다. 2017년 12월 《형사법의 신동향》 통권 제57호에 실린 당시 정웅석 서경대 교수·한국형사소송법학회 부회장의 논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신설에 관한 비판적 고찰〉이 바로 그것이다.

정 교수는 논문에서 공수처의 권한 행사 및 출범 의도에 대해 강하게 직격(直擊)했다. 그는 “검찰 통제를 위해 수사권은 경찰에 부여하고 검찰은 기소권만 갖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수사권과 기소권을 전속적으로 갖는 공수처를 탄생시키는 근거는 무엇인가”라며 “공직 비리는 상당 부분 민간 부문의 부패와 연계되는데, 이를 무 자르듯 잘라 공수처와 검찰이 나눠 수사를 하게 되면 ‘수사권의 이원화’가 초래될 뿐만 아니라, 수사의 역동성을 훼손시켜 부패 범죄인들이 빠져나갈 기회만 주게 될 우려도 있다”고 비판했다.

정 교수는 “또 새로 설립된 기구가 그렇듯, 공수처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수사 성과로 입증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적법 절차를 무시하는 인권 유린 행위를 할 수 있다”며 “집권세력의 친위대로 변신해 수사 대상자에 대한 상시적인 미행, 감시 및 사찰 활동을 일삼는 법치주의에 대한 도전행위를 자행할 위험성도 크다고 할 것이다”라고 예견했다.

정 교수는 “이는 선거를 통해 다수당이 청와대를 포함한 행정 기능은 물론 입법 기능과 사법 기능까지 독식할 경우에 그 위험성은 더 크다고 할 것”이라며 “왜냐하면 현재의 상황은 별론으로 하고, 다수당의 힘의 논리에 따라 정치적 소용돌이에 빠져들 수 있는 공수처 법안을 볼 때, 공수처가 고위공직자 부패 사건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기존의 검찰보다 더 중립성이 보장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물론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권익을 증진하기 위해 현재의 수사제도나 관행보다 더 훌륭한 시스템이 있다면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누구나 공감할 것”이라며 “공수처 설치 문제도 부패범죄에 대한 수사를 보다 효율적으로 행사하도록 함으로써, 우리나라에 만연해 있는 부패범죄를 발본색원(拔本塞源)할 수 있는 개선 방안을 마련하자는 데 그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결국 공수처의 성패는 어떻게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면서 부패범죄를 전담하는 기구로 기능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며 “이는 최종적으로 ‘대통령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