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 병력 진입을 명령함으로써 사실상 우크라 침공을 선언했다. 21일(현지 시각) 로이터 및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크렘린궁은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군에 우크라이나 동부의 평화를 유지하라고 명령했다”고 밝혔다. 러시아 평화유지군이 진입하게 될 지역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의 자칭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과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이다. 이날 발표에 따라 전쟁 임박의 공포감은 더욱 짙어지게 됐다.
앞서 푸틴 대통령은 위의 두 지역을 독립국으로 승인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한 바 있다. 또한 DPR, LPR 지도자들과 러시아·공화국들 사이의 우호·협력·원조에 관한 조약에도 서명했다. 러시아의 독립국 승인은 해당 지역 반군(叛軍)에게 군대를 파견할 길을 연 셈이다. 또한 이들 공화국을 더 이상 우크라이나의 일부로 간주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우크라이나 지도부가 돈바스 지역의 평화 유지를 위한 민스크 협정을 이행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관측된다면서, 우크라이나 정부의 ‘군사적 공격’으로 인해 ‘민간인들이 고통받고 있다’고 강변했다. 나아가 ‘러시아는 돈바스 지역 내 친러 분리주의자들의 안보를 지킬 의무가 있는 것은 물론, 보복 조치를 취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뉴욕타임스(NYT)》는 관계기사에서 푸틴 대통령의 이날 선전포고에 대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치명적인 군사적 충돌에 관여시키고, 러시아와 미국 등 서방 간 갈등을 급격히 고조시키겠다고 위협하는 고강도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현재 친러 반군들은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지역 모두를 본인들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상황이나, 현실적으로는 그중 약 3분의 1만을 통제하고 있다. 다만 푸틴 대통령이 2개의 공화국의 실질적인 국경을 인정할 것인지, 무력으로 이들 지역을 확장하려고 할 것인지에 대해선 아직 불투명한 상황이다.
한편 푸틴 대통령의 해당 조치와 관련,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는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나서며 규탄하고 있다.
젠 사키 미국 백악관 대변인은 성명에서 “우리는 러시아의 이런 움직임을 예상했고 즉시 대응할 준비가 돼 있다”며 “조 바이든 대통령은 곧 DPR, LPR 지역에 대한 미국인들의 새로운 투자, 무역, 자금 조달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할 것”이라고 전했다.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공동성명을 발표, “노골적인 국제법 위반”이라며 “유럽연합은 제재에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리즈 트러스 영국 외무장관은 금융, 국방, 통신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러시아 기업인과 개인을 제재할 규정 적용 입장과 함께 우크라이나 침공 시 추가 제재를 가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중재 노력을 벌여온 프랑스도 적극 대응에 나설 계획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자체 국가안보회의 개최 후 러시아 제재와 함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를 촉구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의 승인 발표 이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35분 동안 통화를 나눴다. 이어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및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도 30분간 대화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들과의 통화에서 푸틴 대통령의 조치를 ‘강력 규탄’하면서 향후 대응책 마련에 대해 의논했다.
한편 우리나라도 우크라 사태에 대한 대응 태세를 강화하고 있다. 22일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전 11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 우크라이나 관련 정세를 점검한다. 박 대변인은 이날 출입기자 문자메시지 공지를 통해 이 같이 밝히며, 문 대통령이 외교안보부처 및 경제부처와 관련 대책을 논의한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이 NSC 전체회의를 개최하는 것은 이번이 취임 후 12번째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달 30일 북한이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을 발사했을 때 열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4일 첫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 주재 당시 모두발언에서 “우크라이나 사태가 해결의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정세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만약의 경우(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안전한 대피와 철수에 만전을 기하고, 우리 기업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미리 강구해야 할 것”이라며 “우크라이나 사태는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열어놓고 재점검하고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