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양국 간 전쟁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그간 유화적 대(對)러 기조를 보였다며 독일과 프랑스 정부를 비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3일(현지 시각) 화상연설에서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와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을 겨냥, "오늘은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서 독일과 프랑스가 우크라이나 가입을 반대한 지 14년째 되는 날이다. 수년간 서방은 러시아를 상대로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며 양보해 왔다"고 지적했다.
이에 메르켈 전 총리는 다음날 대변인 성명을 통해 반박하며, 2008년 나토 정상회의에서 독일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반대한 결정이 옳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메르켈은 "2008년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서의 결정을 고수한다"며 "우리는 부차 등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잔혹한 행위를 보고 있다. 러시아의 야만적 행위를 끝내기 위한 정부와 국제사회의 모든 노력에 대해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젤렌스키 대통령과 메르켈 전 총리의 공방 설전으로, 독일 권력의 뒤안길로 물러났던 메르켈이 다시금 주목받는 분위기다. 위 메르켈의 반박을 국제사회가 어떻게 평가하느냐와는 별개로, 그가 독일 정치권은 물론 유럽 등 전 세계에 오랜 기간 영향력을 행사해 온 인물임은 분명하다. 특히 독일 역사상 최초로 총리로서 '4선 고지'에 오르며 나름의 리더십을 인정받은 바 있다.
메르켈, 그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4선 신화로 유럽 민심을 휘어잡은 유력 정치인이자, 우크라 사태로 다시금 논란의 중심에 선 문제적 인물. 한반도선진화재단이 최근 발간한 한선 프리미엄 리포트 '메르켈 전 독일 총리의 리더십(양돈선 한선재단 독일연구포럼 대표 저술)'을 통해 그의 리더십 요체를 분석한다.
위 리포트의 저자 양돈선 대표는 이렇게 논한다.
"메르켈의 리더십은 무티(Mutti, 엄마) 리더십이라고 말한다. 경청과 소통으로 국민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중용과 균형을 통해 중립적인 정치를 했으며, 사실을 중시한 원칙과 일관성으로 독일을 발전시켰다."
양 대표는 "메르켈 총리는 동독 시절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물리학 박사였다. 민주개혁당의 대변인으로 일했으며 통일 후에는 기민당 사무총장, 환경부 장관, 여성청소년부 장관, 최초의 여성 출신 집권당 대표, 최초의 여성 총리, 최초의 동독 출신 총리 등의 최초 타이틀을 달았다"고 설명했다.
양 대표는 "메르켈은 집권 기간 동안 독일을 한 단계 격상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1인당 국민소득이 18.7% 증가했고 실업률은 10.7%에서 5.1%로 감소했다"며 "메르켈의 리더십은 무색무취이다. 혜안이나 비전, 동물적 감각, 직관, 카리스마는 없지만 80% 듣고, 20% 말한다는 경청과 소통이 그녀의 무기다"라고 평가했다. 그의 분석이다.
"15년간 국민과 팟캐스트(Pot cast) 대화를 600회나 할 정도로 국민과 끊임없이 소통했다. 독선적이지 않고도 할 수 있음을 실천했다. 메르켈은 중용과 균형을 지켰다. 보수당이나 보수 정책만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여성이면서 여성만 대변하지 않았다. 동독 출신이나 동독 우대 정책도 없었다. 슈뢰더 정책을 계승, 발전하며 원칙과 일관성을 지키고 사실을 중시했다. 슈뢰더는 반대당 총리였는데 그 정책을 그대로 반영했다. 메르켈은 선동, 과장, 허세, 쇼맨십이 없었다."
양 대표는 "메르켈은 집권 16년의 3/4을 타협의 정치인 대연정을 실현했다. 장관 14명 중 부총리를 포함해 6명을 사민당에 양보한 것"이라며 "(정치인 시절) 당내 인사에게는 방심(구색 갖추기), 흠결(스캔들, 품위) 이용 등 용의주도한 준비를 해 처리했고, 당외 인사에게는 침묵, 무대응, 논쟁 기피로 자신의 지지율을 올렸다"고 논했다.
"메르켈은 유럽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와의 외교에도 능했다. 강대국과 실리·대등 외교를 통해 국제질서의 역학 관계를 최적 활용했다.
미국과 긴밀한 우호, 러시아·중국과 경제적 협력 관계를 유지했다. 특히 러시아와는 러시아산 가스 안정 공급을 위한 기틀 마련을 위해 ‘노르트스트림2’ 프로젝트를 성사시켰다."
이 같은 소통과 대연정, 실리 외교 등 국민적 지지를 이끌어낸 리더십에도 불구하고, 최근 그의 결점에 대한 지적 또한 나오고 있다. 바로 위의 사례처럼 러시아 가스 수입 사업을 추진, 현재 침공국인 러시아의 '자원의 무기화' 전략을 용이하게 해줬다는 비판이다. 실제 AFP 통신은 "메르켈 전 총리가 지난 16년간 자유세계의 지도자로 칭송받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그의 업적에 결함이 나타나고 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