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네시아 보고르에서 열린 제2차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의체) 정상회의(1994.11.15, 김영삼 당시 대통령 참석)에서 “선진국은 2010년, 개도국은 2020년까지 자유롭고 개방적인 무역과 투자의 목표 달성을 합의한다”는 문구가 담겨있다.
“We further agree to announce our commitment to complete the achievement of our goal of free and open trade and investment in Asia Pacific no later than the year 2020. The pace of implementation will take into account the differing levels of economic development among APEC economies, with the industrialized economies achieving the goal of free and open trade and investment no later than the year 2010 and developing economies no later than the year 2020.”
이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해당될 때는 2010년, 개도국으로 분류될 경우 2020년까지 UR을 통하여 개방유예를 얻은 쌀을 포함한 고율관세(예: 참깨 700% 등)가 붙은 모든 품목들의 관세를 0% 내지는 5% 정도의 낮은 세율로 낮추어 개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보고르선언」을 반대한 유일한 정상은 일본도 한국도 아닌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수상이었다. 따라서 이 선언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국가와 품목은 한국과 일본의 쌀이었다. 참으로 다행한 것은 이 선언을 구체화하는 행동지침(Action Agenda)을 마련하는 다음 회의 장소가 1995년 11월 일본의 오사카였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개최국인 의장국이 자국에 유리한 선언문 초안을 작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초안을 회원국들이 인정을 해주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18 회원국(미국, 호주, 캐나다, 아세안 국가, 일본, 중국, 한국, 멕시코, 칠레 등) 중에 일본과 한국의 주장만으로는 끝까지 초안을 유지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의장국인 일본은 가급적 중립을 지켜야하기 때문에 회의에서 목소리를 높일 처지가 아니었다. 결국 한국이 얼마나 강하게 반대하고 나서느냐와 동조국가의 확보가 관건인 것이다.
95년도에 접어들자 이례적으로 일본 농림성 마나베 심의관(차관급)이 방한(95.1.28)하여 농림부 박상우 차관을 만나 보고르 선언의 자유화 일정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고 한국의 강력한 협조를 요청하였다. 이에 박 차관은 의장국인 일본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하고 이어서 양국의 긴밀한 협조 체제를 합의하였다.
그리고 95년 3월 도쿄를 방문(국제식품 박람회 참석차)한 최인기 장관과 오오가와라 다이치 농림대신은 11월 오사카 정상회의까지 확고한 공조를 합의(95.3.6)하였다.
이어서 95년 7월 사뽀로(7.2∼7.5) 3차 고위급회의(반기문 외정실장, 필자 등 참석)에서 일본은 소위 제8항 융통성(Flexibility) 조항을 초안으로 제시하였다.
"Due consideration will be given to the divergent conditions of APEC member economies.
Flexibility will be exercised in allowing differential treatment of economic sectors in the liberalization and facilitation process, taking into account the sectoral specificity in each member economy."
이는 목표연도(선진국 2010, 개도국 2020)까지 일부 분야(우리와 일본은 쌀을 의미)에서 자유화 하지 않는 융통성을 부여한다는 뜻이다.
7월 4일 본 회의가 시작되어 우리(반기문 실장)는 8항이 보다 명백한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한다고 발언하자 일본, 중국, 대만이 동조하고 호주, 뉴질랜드 등이 반대발언을 하였다. 특히 미국 대표(샌드라 그리스토프)는 “한국이 이럴 줄 몰랐다”고 회의 탁자를 치면서 8항 삭제를 주장하였다. 그날 밤 소위원회(필자 참석)까지 구성 논의 하였으나 결론을 못 내고 다음회의로 넘기게 되었다.
삿포로 회의에서 어려움을 겪은 우리는 향후 회의(9월 홍콩, 10월 도쿄, 11월 오사카)에서 확실한 동조국 확보를 위하여 먼저 필자가 중국을 비공식 방문하여 APEC 수석대표인 외교부 왕유신(王隅生) 대사를 만나(8.23) 향후 WTO 가입 후의 중국의 위치를 설명하며 8항 유지의 강력한 지지를 요청하여 동의를 얻고, 8월 26일에는 일본 외무성 우찌다(內田) 대사를 만나 방중 성과를 설명하고 8항 유지를 강력히 요청하였다 이는 그 후 회의(95.9 홍콩회의, 95.10 도쿄회의)에서 중국의 강력한 지지와 함께 8항 유지를 위한 일본 외무성의 일관된 입장을 이끌어 내는데 기여하였다.
또한 대만과는 전부터 알고 지낸(94년 중 Geneve에서 대만 WTO 가입 자문) 췐(陳) 처장을 만나(95.10.9) 설득하여 확실한 우리 입장 지지약속을 받아내는 노력을 기울였다.
아울러 한국·캐나다 정상회의(95.10.20)에 참석한 최인기 장관의 캐나다산 보리 10만 톤의 특별 구매 약속은 이후 APEC 회의(오사카)에서 캐나다 대표가 우리가 제시한 초안을 다른 수출국들을 설득하는 데 사용하는 등 우리가 제시한 융통성 조항인 8항이 그대로 각료회의(95.11.17)와 정상회의(95.11.18∼19)에 채택된 성과를 얻었다.
〈타결된 행동지침 8항의 내용〉
"APEC 회원국 간의 상이한 경제발전수준과 각 개별회원국의 다양한 사정을 고려하여, 자유화 및 원활화 추진과정에서 이러한 다양한 사정으로부터 야기되는 문제를 취급하는데 신축성을 부여한다. Considering different level of economic development among the APEC economies and diverse circumstances in each economy, flexibility will be available in dealing with issues arising from such circumstances in the liberalization and facilitation process."
이는 95.11.20일자 국내신문에 대서특필로 이어졌다.
APEC을 통한 완전한 농산물 개방을 추진하려는 수출국들의 의도를 차단한 우리의 외교적 성과였다.
알려지지 않은 2004 쌀 개방 재협상 위기(시애틀 각료회의 1999.11.30.∼12.3)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에 이어 새로운 다자협상(New Round) 출범을 위한 각료 선언문 채택을 위한 회의가 ’99년 11월 30일부터 12월 3일까지 미국 서부의 시애틀에서 개최되었다. 동 회의는 134개국의 통상·외교장관을 수석대표로 하는 대규모의 국제회의로 우리나라 대표단은 한덕수 통상교섭본부장을 수석대표로 각 부처 대표 30명으로 구성되었다.
11월 30일 오전에 제시된 각료 선언문 의장 초안(시장접근분야) 수정안에 전날에 없던 괄호 처리된 문안(with no a priori exclusions on products or import measures)이 추가된 것이다.
(i) Market Access(’99. 11. 29)
Comprehensive market access negotiations leading to further liberalization particularly with regard to products originating in developing country Members;
(i) Market Access(’99. 11. 30)
Comprehensive market access negotiations [with no a priori exclusions on products or import measures] leading to [the broadest possible] [further] liberalization particularly with regard to products [of export interest to] [originating in] developing country Members;
이는 “품목과 수입조치에 사전적인 예외가 없이”라는 뜻으로, 우리가 우루과이 라운드에서 가까스로 얻은 쌀의 예외조항(부속서 5B)을 해석에 따라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으로, WTO 차기협상에서는 우리의 2004년의 쌀 관세화 유예 재협상조항이 무효화될 수 있다고 보았다. 우리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문장이 등장한 것이다.
회의가 열리자 우리는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그리고 대안으로 첫째로, 그 문장 자체를 완전히 삭제하거나, 둘째로 만약 그대로 둔다고 하면 다음과 같은 주석(footnote)*를 추가할 것을 요구하였다. 다시 말하여 UR에서의 우리의 쌀 관세화 유예 재협상 규정은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두 제안 중 어느 하나라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한국은 회의 전체(Consensus)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분명히 하였다.
*주석: without prejudice to rights and obligations provide for the Annex 5 of Agreement on Agriculture
결국 12월 3일 마지막 전체위원회(한덕수 본부장, 필자의 2명만 참석)에서 Barshefsky 의장이 우리의 요청을 받아들여 최종안에 부속서 5의 예외를 인정하는 문장(“except as consistent with Annex 5”를 괄호 처리)을 추가하는 것으로 결정해 가슴을 쓸어내렸다. 물론 이 최종안은 각료회의 자체가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서 무산되었으나, 만약 이러한 문장이 그대로 채택될 경우 나중에 논란의 소지를 남기게 되어 수출국들이 쌀 재협상(2004)시 이를 활용할 가능성이 있게 되기 때문이다.
〈1999년 12월 3일 전체회의에서의 최종안〉
(i) Market Access
Comprehensive market access negotiations with no a priori exclusions (except as consistent with Annex 5) leading to the broadest possible liberalization particularly with regard to products of export interest to developing country Members;
이 “a priori” 조항이 처음 들어간 경위를 보자면, 11월 29일 오후 2시 45분에 사무국에 제출한 미국·케언즈 그룹 공동 제안서에서 처음 나타난 것으로, 이를 다음날인 11월 30일 오전 10시 30분의 사무국 제안서에 그대로 반영하였던 것이다. 결국 미국과 케언즈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 틀림없었다. 나중에 미국·케언즈 대표들은 필자에게 그 용어가 한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고 하였지만, 실제 몇 년 후의 협상(대부분의 협상대표들이 바뀐다고 봄)에서 강하게 주장하면 우리는 꼼짝 못하고 당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협상에서 단어 하나 문장 하나가 그만큼 중요한 이유이다. 결국 회의 결렬로 소용없는 일이 되었지만 국내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쌀의 “a priori” 사건은 그렇게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