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별 쌀 수입물량(1995∼2004)

우리가 제시한 사실상 상당히 높은 수준인 513%의 관세, 그리고 2004년의 물량 그대로 유지한 것은 장기간에 걸친 끈질긴 농업협상팀(정일정 국제농업국장 외)의 훌륭한 협상 성과인 것이다. 이로서 1986년 9월 우루과이 푼타델에스테에서 시작된 33년 동안의 우리 쌀을 지키려는 노력이 완결된 것이다. 40대 후반에 시작된 필자의 쌀 협상이 70대 후반이 된 지금 후배들에 의해 완결을 보게 되었으니 감회가 깊을 수밖에 없다.

국제농업국장 떠나기 직전, 미국산 쌀 구매 허가 서명

필자는 2001년 5월 농림부 국제국장 자리를 떠나 산림청 차장으로 승진 발령을 받았다. 떠나기 직전 미국산 쌀 2만7,000톤을 구매하는 문서를 작성토록 하고 이에 서명을 하였다. 미국산 쌀에 대한 국내의 인식도 많이 달라져 있었고, 특히 이제는 미국산 쌀을 사주어도 될 시기가 온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야 2004년 쌀 관세화 유예 재협상에서 우리가 여유로워질 것이 아닌가.

2004년 쌀 관세화 재협상 앞두고 미국 등 주요국 민간업계·공무원 만나 의견 교환하다

UR협상에서 미국의 민간업계의 중요성과 영향력을 실감하였던 필자는 2004년 재협상시기가 다가오는 2003년 중순이 되면서, 민간인 신분으로 주요협상 상대국의 의사 파악과 우리의 의도를 부담 없이 전달하여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이에 따라 농림부에 관세화 유예 재협상이 보다 원활하도록 도와주는 방안을 자진하여 제시하였으며, 이를 농림부가 받아들였다. 어쩌면 UR협상을 직접 맡아 시작한 담당자로서 협정문에 적혀있는 2004년 재협상의 완결을 도와주고 싶었던 생각도 있었다고 하겠다.

우선주요 대상국가로 미국, 중국, 태국, 호주로 정하고 미국, 호주, 태국은 필자가 담당하고, 중국은 이상무 당시 FAO 한국협회 회장이 맡기로 하였다. 특히 미국의 경우 쌀 수출의 가장 중요한 단체인 쌀도정업자협회(RMA, Rice Millers Association)의 대외담당 Bob Cummings 부총재를 세 차례(2003.7.1, 2004.3.15, 2004.9.8)나 만나 미국업계의 의사 및 우리의 의도 등의 의견 교환을 솔직하게 하였다. 또한 2003년 7월 1일에는 UR 당시부터 잘 아는 USDA의 Jim Guruef 국장, USTR의 Jason Hafemeister 담당관을 만나 미국 정부의 의사와 우리의 생각 등의 의견을 교환하였다. 그리고 2003년 11월 6일에는 호주 캔버라에 가서 1차 산업성 Burns 통상과장을 만나 의견을 나누고, 돌아오는 길에(11월 10일) 방콕에서 태국 쌀 수출협회 회장을 만나 의견교환과 함께 태국의 의도를 파악하는데 주력하였다. 민간업계가 약한 중국에 대하여는 이상무 회장이 2004년 6월과 10월 2차에 걸쳐 평소 친분이 두터운 중국공산당의 농촌담당인 장관급의 M주임을 만나 한국과의 원활한 협상이 될 수 있도록 당부하였다. 물론 우리는 그들 국가와의 민간 협의 결과를 농림부에 전달하였다.

그리고 그해 말 정부는 2014년까지 10년간 MMA물량을 4%(20만5,228톤)에서 7.9%(40만8,700톤)까지 늘려주고, 그 때까지의 수입 실적을 기반으로 하는 개별국가별 쿼타(CSQ, Country Specific Quota)를 주는 협상으로 원만하게 마무리 지었다(참고 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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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쌀 관세화 513%로 확정

UR합의(1993.12.15.)에 의하여 2004년 재협상으로 2014년까지 연장된 우리 쌀의 관세화 유예는 정부가 2015년 1월 1일 관세화를 발표함에 따라 5개국(미국, 중국, 베트남, 태국, 호주)이 이의를 제기하여 5년 가까이 장기간 협의 끝에 우리가 처음 제시한 513%의 관세율 그대로 확정되었다(2019.11.19.). 그리고 2004년에 결정된 의무수입물량(408,700톤 MMA)도 증량 없이 그대로 합의하였다.

다만 5개 개별국가에게 국가별 관세 할당물량(TRQ, Tariff Rate Quota)을 배분하여 주어 합의를 이끌어 냈다(중국157,195톤 미국132,304톤 베트남55,112톤 태국28,494톤 GlobalQuota2,000톤). 이와 같이 우리가 제시한 사실상 상당히 높은 수준인 513%의 관세, 그리고 2004년의 물량 그대로 유지한 것은 장기간에 걸친 끈질긴 농업협상팀(정일정 국제농업국장 외)의 훌륭한 협상 성과인 것이다. 

이로서 1986년 9월 우루과이 푼타델에스테에서 시작된 33년 동안의 우리 쌀을 지키려는 노력이 완결된 것이다. 40대 후반에 시작된 필자의 쌀 협상이 70대 후반이 된 지금 후배들에 의해 완결을 보게 되었으니 감회가 깊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