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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DB.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리던 영국. 대영 제국의 시대가 끝난 지가 한참 됐음에도 아직도 몇몇 분야에서 영국의 국가 경쟁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특히 영국의 교육시스템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등 많은 미국의 유명 인사들이 '로즈 장학금' 등 각종 장학금을 받고 영국으로 유학을 올 만큼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비결이 무엇일까요?
 
많은 전문가는 영국 특유의 '튜터링(tutoring)' 제도에서 해답을 찾습니다. 튜터(tutor)와 튜티(tutee)로 역할이 나뉜 튜터링은, 영국 옥스포드대학교(Oxford University)와 케임브리지대학교(Cambridge University)에서 시작한 이후 800년 이상 영국 고등교육의 근간을 유지하며 영국 고등교육 시스템을 발전시켜온 비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영국의 아이비리그라고 불리는 러쎌그룹(Russell Group)에 속한 영국 버밍엄대학교(Birmingham University)와 영국 워릭대학교(Warwick University)에서 유학하며 튜터링을 받기도 했고, 또 나중에는 제가 튜터링을 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에도 튜터링 제도가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미국에서 유학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영국의 튜터링과는 그 개념이 조금 달랐습니다. 영국에서는 튜터가 대부분 교수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가 영국의 두 대학교에서 체험한 튜터링 제도가 영국의 모든 고등 교육기관을 대변한다거나 같다고 할 수는 없으니, 이점을 유념해서 읽어주시기 바라겠습니다.
 
제가 겪은 영국의 튜터링을 시간대별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학부(undergraduate)때는 우선 퍼스널 튜터(personal tutor)를 배정받았습니다. 제가 배정을 받은 퍼스널 튜터에게는 여섯 명의 퍼스널 튜티가 함께 배정되었고 이들과 함께 또는 개별적으로 튜터를 만났습니다.
 
퍼스널 튜터는 튜티와 공식 또는 비공식적으로 만나 대학 생활에 잘 적응을 해 나가는지, 학업은 충실하게 해 나가는지에 대해 정기적으로 점검합니다. 특히 퍼스널 튜터는 학문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조언자의 역할을 합니다.
 
튜터링이 끝나면 튜터와 튜티은 각자 보고서를 작성해서 학과에 제출합니다. 이와 같은 기록을 바탕으로 퍼스널 튜터는 튜티가 졸업하고 취업을 할 때 추천인의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영국에서는 입학 직후부터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튜티를 지켜본 퍼스널 튜터의 의견은 기업체가 그 학생을 채용할지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졸업학년인 3학년 때는 통상 슈퍼바이저(supervisor)로 불리는 아카데믹 튜터(academic tutor)가 정해집니다. 연말 즈음에 교수들은 졸업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연구실 밖에 본인의 관심 연구목록을 붙여놓습니다.
 
튜티는 이후 사전 예약을 통해 튜터 대상자를 만납니다. 이때 튜터 대상자만 튜티를 인터뷰하는 것이 아니라 튜티도 튜터를 인터뷰합니다. 튜티가 튜터를 인터뷰하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보통 공부를 계속하는 영국 학생은 우리나라처럼 석사학위를 받은 후 박사과정을 시작하기 보다는 학사를 마친 후 바로 박사과정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학부 때 아카데믹 튜터를 누구로 정하느냐가 본인에게 장기적으로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제 경우도 이 같은 과정을 통해 여러 튜터 대상자를 만났고, 다행히 젊고 유능한 튜터를 만나 매우 흥미로운 연구를 할 수 있었습니다.
 
튜터에 따라 튜터링은 격식을 차려 이뤄질 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격식은 영국 특유의 예약제도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튜티는 튜터에게 사전 예약을 해야 하고 논의할 내용에 대해 미리 튜터에게 알립니다. 그러면 튜터는 튜터링이 가능한 날짜, 시간, 장소를 알려줍니다. 또한, 튜터는 튜티에게 도움이 될만한 자료와 사람들의 연락처도 구해놓습니다.
 
즉, 만나서 그 자리에서 뭔가를 해결하기보다는, 만나기 전에 양자가 준비한 후 만나게 되므로 시간을 조금 더 생산적으로 쓸 수 있습니다.
 
제가 겪은 석사과정에서의 튜터링 제도도 학부 때와 비슷했습니다. 학부 때와 마찬가지로 제가 석사과정을 시작한 첫 날 가장 먼저 만나는 사람이 바로 퍼스널 튜터였고, 이후 석사학위논문을 써야 할 즈음에 아카데믹 튜터가 정해졌습니다.
 
석사과정 때 아카데믹 튜터가 정해지는 방식도 학부 때와 비슷했지만, 학부 때와 다른 점이라면 아카데믹 튜터의 역할이 커졌다는 점입니다. 아무래도 석사학위논문 지도교수이기 때문에 학술적인 측면이 더 부각이 되어 튜터링이 이뤄졌습니다.
 
박사과정에서의 튜터링은 그 성격이 조금 달랐습니다.
 
박사과정에서는 아카데믹 튜터가 학술적인 것과 그 이외의 것에 관해서도 총체적인 관리를 했습니다. 즉, 학·석사과정 때는 퍼스널 튜터와 아카데믹 튜터가 역할을 나눠 튜티를 관리했다면, 박사과정에서는 그 경계가 조금 모호했습니다.
 
아무래도 박사학위논문지도교수의 영향력이 더 커졌고, 박사과정이면 이미 나이도 어느 정도 찼기 때문에 만나서 개인적인 일상사를 논하기 보다는 학술적인 튜터링이 주를 이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관계가 좋다면 비공식적인 만남을 통해 개인적인 문제를 다루기도 합니다.
 
튜터로서의 제 경험은, 퍼스널 튜터(personal tutor), 아카데믹 튜터(academic tutor), 그리고 레지던트 튜터(resident tutor)까지 총 세 가지 역할이었습니다.
 
영국 워릭대학교에서 석사과정 학생들의 퍼스널 튜터와 아카데믹 튜터를 했었습니다. 매년 여섯 명의 퍼스널 튜티를 관리했었고, 석사논문 지도학생을 한 해 네 명까지 받아서 석사학위 논문을 지도했습니다.
 
영국 버밍엄대학교에서도 석사과정 학생들의 퍼스널 튜터와 아카데믹 튜터를 해봤습니다. 이때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튜터링을 했는데, 저는 한국에 있고 학생들은 영국, 독일, 한국 등에서 원거리 교육으로 석사과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영국의 대학교에는 학생들이 사는 기숙사에 학생들과 함께 거주하는 레지던트 튜터가 있습니다.
 
레지던트 튜터는 우리나라의 기숙사 사감을 생각하면 이해가 빠릅니다. 학생들과 함께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기숙사에 관련된 업무를 처리하기도 하고, 기숙사 내에서 학생들 때문에 발생하는 모든 일을 감독하기도 합니다.
 
영국의 튜터링 제도를 겪어본 저로서는 품이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소요되지만 우리나라 고등교육에서도 이와 같은 제도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술적인 관계를 떠나 평생 함께하는 사이로까지 발전될 수 있는 관계형성에도 이 튜터링 제도의 도움이 컸기 때문입니다.
 
저는 가끔 제가 풀기 어려운 문제들이 발생하면 제 옛 튜터들에게 연락해서 조언을 구합니다. "만일 당신이 내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라는 질문을 합니다. 그때마다 시간을 내어 함께 고민을 해주는 튜터들이 지금도 있습니다. 평생 함께해야 할 선생님들이시지요.
 
24 November 2013
정채관 박사(영어교육·응용언어)
ckju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