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영화 '노매드랜드'(Nomadland)와 그 작품을 만든 중국 여성 감독 클로이 자오(Chloe Zhao)라는 데 이견이 없다. 중국 최초의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자이자, 아카데미 역사에서도 단 두 명의 여성 감독만이 감독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명예로운 순간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 생중계를 중국 정부는 불허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을 52년 동안 매년 중계했던 홍콩의 최대 방송사 TVB는 중계하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단지 상업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걸 그대로 믿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도대체 중국 영화 역사 중 가장 명예로운 순간일 수도 있는 이번 시상식을 왜 중국은 거부한 것일까?

예전부터 중국인들의 속성을 비판하면서 농담처럼 들려오는 말이 하나 있었다.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다'는 말이 그것이다. 공교롭게도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 중계를 거부한 홍콩 TVB 방송사 역시 보도자료를 통해 아카데미 시상식이 이익이 되지 않는다면서 정치적 영향력이 개입되지 않았음을 애써 강조하려고 했다. 역시 정의보다 이익에 목숨 거는 중국답다.
이미 중국은 13억 거대 시장으로 세계 속에 자리를 잡았다. 영화 쪽으로 시선을 좁히면 중국 시장의 특수성은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예를 들어 2017년 개봉한 '전랑2'의 경우 제작비 3000만 달러를 투입해서 무려 8억5600만 달러의 수익을 거둬들였는데, 중국 내에서만 8억5004만 달러를 벌었다. 영화 한 편의 매출이 1조 원이 넘는다. 금액도 금액이지만 전체 총수입의 약 99퍼센트를 자국 시장에서 벌어들인 셈이다. 수익 구조가 놀라울 정도로 자국에 편중되어 있다. 심지어 기형적이기까지 하다.
미국이나 한국과 달리 중국은 티켓 판매율보다 매출액 기준으로 흥행을 따지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한국으로 치면 '천만 관객' 정도의 흥행은 중국에선 명함도 못 내민다. 적어도 매출 1억 위안(약 200억 원) 정도는 돼야 흥행에 성공한 영화로 꼽힌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1억 위안' 클럽에 가입하는 것이 영화인들의 목표다. '전랑2'가 공개됐던 2017년 중국에서는 모두 970편의 영화가 제작됐는데 이중 92편의 영화들이 매출 1억 위안을 넘겼다. 전체 제작된 영화의 10퍼센트가 1억 위안 클럽에 포함됐다는 뜻이다.
여기서 '전랑2'의 경우에는 당시 극장가에서 '스파이더맨:홈커밍'이나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명작 '덩케르크' 같은 쟁쟁한 헐리우드 영화들과 겨뤄서 얻어낸 결과라는 점에서 더욱 놀랍다. 당시 중국 영화의 성장세는 전년 대비 80% 성장한 것으로 집계됐다.
당연히 이런 상황이 되다 보니 중국 영화계에서는 해외 자본이나 시장 개척에 별다른 요구가 없다. 자국 시장에서만 히트를 시킬 수 있으면 13억 인구가 튼튼히 내수를 받쳐주고 있다는 계산이다.
'무소불위, 거대 영화 시장 하나만으로 모든 게 통하는 중국'
그러나 이런 기형적인 영화 시장 구조가 장기적으로 중국 영화 발전에 도움이 될까? 물론 쉽게 미래를 예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무소불위, 거대한 자국 영화 시장 하나만 믿는다면 중국 영화의 미래가 편향된 국가주의, 자국 우월주의로 무장할 것을 예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전직 특수 부대원이 아프리카 내전에 뛰어들어가 난민과 중국인들을 구출해낸다는 일종의 '국뽕'을 자극하는 영화적 소재만 놓고 보면, '전랑'이나 미국 영웅주의를 선전했던 '람보'나 얼핏 다를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중요한 차이점은 '람보'를 전 세계에 팔면서 미국이 해외 영화들에 차별적인 정책을 펼친 적은 없다는 사실이다. 중국 사회 체제를 비판했다는 말 하나 때문에 세계인들이 모두 열광하는 아카데미 시상식 장면을 통제한 적도 없다.
최근 한한령으로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차별과 봉쇄 정책을 유지하고 있는 중국에서는 한국 관련 내용은 물론이고 한국어 자막이 들어간 드라마나 다큐멘터리까지도 수입 금지를 하고 있다. 실제로 중국 TV 시장에 다큐멘터리 영화를 판매하기 위해서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영화를 제작한 한국인 감독의 이름을 정체불명의 제3국 이름으로 바꿔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무리한 요구를 한 수입사도 존재한다. 중국에서 영화를 팔기 위해서는 영화를 만든 한 감독의 고유한 정체성까지도 버려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과연 이런 모든 현실이 정상적이라고 보는가? 세상은 갈수록 더욱 가까워지고 있다. 국경이나 인종의 차이는 이제 문화와 자본이 소통되는 데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 중국의 지나친 이기주의와 폐쇄적 문화정책이 전 세계인들의 원성을 듣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국산 제품은 국경을 초월해서 전 세계로 수출하는 중국이 외국의 제품이나 문화, 자본의 유입을 극도로 방어하는 현상을 공평하고 정의롭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시 '노매드랜드'라는 영화와 그 영화를 만든 클로이 자오로 돌아가 보자. 이 영화가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은 영화 자체의 높은 완성도뿐만 아니라 영화가 담고 있는 진실성에 있다. 영화는 2008년 미국 경제 침체로 인해서 집을 잃고 떠돌이 방랑생활을 하는 미국인들의 평범한 일상에 카메라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영화 속 주인공인 펀(프랜시스 맥도먼드)이 말하고 있듯이, 그들은 '홈리스'가 아니라 '하우스리스'일뿐이다. 도심 한가운데 경제력을 포기하고 남들이 주는 동냥이나 자선에 의지해서 삶을 연명하는 홈리스들과 잡일이나 아르바이트라도 당당하게 유지하면 자동차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결코 같은 무리가 될 수 없다.
그들에게는 절망을 대하는 서로 다른 태도가 존재하고 있으며, 그래서 그들의 아픔이나 사연 역시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 서로 다른 아픔을 서로 이해하고 보듬는 과정 속에서 피어난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을 우리는 휴머니즘이라 표현하곤 한다. 영화 '노매드랜드'가 지닌 미덕은 그런 순수하고 진실된 인간의 삶을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감미롭게 때로는 숭고하게 조화시키고 있다는 점에 있다.
영화와 영화가 그리고 있는 현실의 경계에서 선 클로이 자오 감독

이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하는데 이견이 없었던 이유는 영화가 형식미에서 놀랍도록 창의적이고 탁월하다는 사실이다. 최근 세계 영화들의 흐름은 허구적인 가공의 세계보다 인간이 숨 쉬고 살아가는 리얼한 현실 세계 그 자체에서 미학의 본질을 찾아내려고 한다는 점이다.
이런 시도들은 클로이 자오 본인 스스로도 이미 '로데오 라이더'(The Rider, 2017년)에서 성공적으로 시도했던 실험들이기도 하다.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만들었던 '원더풀 라이프'(1998년)나 2018년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이었던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 등을 통해서도 이미 관객에게 익숙한 장르적 시도들이다.
클로이 자오 역시 '노매드랜드'를 통해서 실제 자동차로 유랑하는 사람들을 배역에 등장시키면서 영화적 진실성에 한층 다가섰다. 그 어떤 직업 배우들의 연기가 넘볼 수 없는 순수함을 스크린 가득 스며들게 했다. 오스카 여주연상을 3회나 수상한 프랜시스 맥도먼드의 연기는 그저 자연스러운 인간미와 인간을 초월한 대자연 속에 그대로 녹아들고 있다. 바로 이 점이 영화를 본 전 세계 수많은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영화는 이제 다른 사람의 삶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 자신의 삶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과정을 통해 발전하고 있다. 지나친 폭력과 과장된 허구성 속에 실증난 많은 관객들에게 '노매드랜드' 같은 영화들은 앞으로도 계속 발전해나갈 것이다. 이제 관객들은 자극이 아니라 마치 아침이슬 같은 신선함을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다.
그런 점에서 클로이 자오 감독이 과연 앞으로 어떤 영화들을 만들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누구나 자유롭게 생각하고, 그 생각을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세상, 바로 그 세상이 진실한 영화들이 추구하는 영화가 꿈꾸는 소박한 미래가 아닐까. 그리고 중국이 폐쇄적으로 나아가면 갈수록 적어도 중국 13억 인구는 모든 사람들이 영화를 통해 누리는 자유와 아름다운 인간들의 이야기로부터 점점 멀어져 갈 것이다. 과연 무엇이 진정한 이익일까?
지난 4월 25일, 영화감독이라면 누구나 꿈꾸고 싶은 아카데미 최고의 영예인 감독상 수상자로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그녀는 상기된 표정으로 무대에 올라와서 지금까지 자신의 존재를 있게 만들어 주었던 중국에서의 오래된 추억들을 수상 소감으로 대신했다. 그 말속에 영화와 영화의 현실 사이에 서 있는 클로이 자오, 중국과 세계라는 경계 사이에 서 있는 한 여성 감독의 모습이 조금은 애처롭게, 조금은 또 감동적으로 스쳐갔다.
"중국에서 자라면서 아버지와 저는 게임을 하나 하곤 했습니다. 중국의 전통 시나 글귀를 외우고, 문장을 끝낼 수 있도록 서로 도와주는 것이었습니다. 그중에 제가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는데요. '人 之 初, 性 本 善'이라는 문장이었습니다. '갓 태어난 사람은 선천적으로 선하다'라는 뜻입니다. 이 여섯 글자는 제 인생에서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 말을 진실로 믿고 있습니다.
살다 보면 가끔은 이 반대가 진실인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항상 제가 만나는 사람의 좋은 점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돌아다닌 세상의 모든 곳에서요. 그래서 이 상은 신념과 용기를 가지고 그런 좋은 점들을 어떻게든 붙들고 살아가려는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비록 그 일이 어려운 것이라도요. 그래서 이 상은 저를 계속 나아가게 해주는 당신들을 위한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93회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자 클로이 자오 수상 소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