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조선일보DB

한국 고미술품부터 서양 명화(名畵)까지 ‘국보급’ 컬렉션으로 불리는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애장품들이 국립 박물관 등에 기증됨에 따라 별도의 ‘이건희미술관’ 또는 ‘이건희박물관’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근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을 필두로 한 미술계 인사 150여 명은 ‘국립근대미술관 건립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 주비위원회(籌備委員會)를 발족했다. 삼성가(家)에서 기증하기로 결정한 이 회장의 미술품 유산 1000여 점과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근대 미술품 2000여 점을 합쳐 ‘국립근대미술관’을 건립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모임이다. 이 단체가 지목하는 미술관 건립 장소는 서울시 소유로 전환된 송현동 문화공원 부지, 세종시로 이전한 행정부처가 있었던 정부서울청사 자리다.

이 단체는 지난달 30일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근대 미술이 현대 미술관에 ‘더부살이’하고 있는 기형적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국립근대미술관을 설립할 필요가 있다. 신설 미술관에 ‘이병철실’과 ‘이건희실’을 둬 삼성가의 기증의 뜻을 기릴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이 단체에는 신현웅 전 문화관광부 차관, 오광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이원복 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등이 참여했다. 주비위원의 구체적 명단은 아래와 같다. 

김종규(국민문화유산 신탁 이사장), 신현웅(전 문화관광부 차관), 오광수(전 국립현대미술관장) 이원복(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윤철규(미술사, 전 서울옥션 대표), 최열(미술사가, 전 문화재전문위원), 정준모(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서양화가 박서보, 한만영, 김택상, 김근태, 정복수, 신수철, 김덕한, 오지윤, 한영섭, 윤형재, 이영림, 김현실, 언론인 이무경, 신세미, 이규현, 디자이너 명계수, 사진 이진영, 미술품 수복전문가 강정식, 갤러리스트 우찬규, 이현숙, 최웅철, 박혜경, 조각가 심문섭, 이종안, 양화선, 정현, 심영철, 최정주(전 제주도립미술관장), 최은주(현 대구시립미술관장), 김언정(고양문화재단) 등. 

지방에서도 ‘이건희 미술관’ 유치 경쟁에 나서고 있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지난 2일 페이스북에 쓴 ‘이건희 미술관, 부산에 오면 빛나는 명소가 됩니다’라는 제하의 글에서 “대한민국 문화 발전을 위한 고인의 유지를 살리려면 수도권이 아닌 남부권에 짓는 것이 온당하다. 특히 부산은 국제관광도시로 지정돼 있고 북항에 세계적인 미술관 유치 계획도 있다”고 밝혔다. 대구와 광주 등 기타 광역시에서도 ‘이건희 미술관’ 유치 의사를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달 28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회의에서 이 회장 컬렉션을 모은 ‘전용 공간 마련’을 언급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이 회장의 애장품을 모은) 별도 전시실을 마련하거나 특별관을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황희 문체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헤럴드경제》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대통령의 말씀은 국민들한테 고인의 정신을 전달하는 차원에서 미술품의 향유할 수 있는 접근성을 높였으면 좋겠다는 취지”라며 “(이건희) 전시실을 만들거나 별도의 박물관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신문은 “국립현대미술관이나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이건희 회장의 이름을 딴 전시실을 만들거나 아예 별도 부지 별도 건물로 새로운 미술관 또는 박물관을 만들 수도 있다는 얘기”라고 해석했다. 황 장관은 지난달 2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삼성가 기증품을 전시할 별도의 박물관 건립) 과정에서 ‘근현대 미술관’ 형태로 할지, 기증자 컬렉션으로 할지는 즉답하기 어렵고 앞으로 검토하고 방향을 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한편 이 회장의 기증품 2만3000여 점은 특별전 개최 등을 통해 순차적으로 공개될 예정이다. 이 회장의 가장 많은 애장품(9797건/2만1600여 점)을 기증받은 국립중앙박물관은 다음 달부터 대표 기증품을 선별, ‘고 이건희 회장 소장 문화재 특별공개전(가제)’ 개최를 기점으로 유물을 공개할 방침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8월 서울관에서 ‘고 이건희 회장 소장 명품전(가제)’ 개최를 기점으로, 9월에 과천, 내년 청주 등에서 상설·특별 전시 등을 통해 작품을 공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