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③에어부산이 진행하는 ‘무착륙 학습비행’ 프로그램에 참여한 부산 남성초 어린이들과 승무원. ④한 학생이 승무원의 도움을 받아 기내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에어부산 제공

“남성초등학교 어린이들 환영합니다. 이 비행기는 부산 김해공항을 출발해 다시 부산으로 돌아오는 에어부산 BX8940편 항공기입니다. 비행시간은 이륙 후 약 1시간 25분입니다.”

지난 6일 부산 남성초 3~6학년 학생 80여 명이 특별한 체험학습에 나섰다. 바로 에어부산이 진행하는 '무착륙 학습비행'. 김해국제공항을 이륙해 포항·강릉·서울 상공을 거쳐 다시 김해공항으로 돌아오는 2시간짜리 비행 체험이다. 국내에서 초·중·고교 학생을 대상으로 무착륙 비행을 실시한 건 처음이다. 코로나19로 체험학습이 어려워진 시기, 학생들은 비행기를 타고 국토 한 바퀴를 돌며 오랜만에 여행의 설렘을 만끽했다.

기내 안내방송부터 서비스 체험까지

“비행기 처음 타 봐요. 며칠 전부터 설레서 잠이 안 왔어요. 긴장되긴 한데 친구들이랑 같이 타니까 좋아요!” (5학년 이서연)

김해공항 국내선 31번 게이트 앞. 항공권을 손에 쥔 남성초 학생들은 “출발지와 도착지가 부산으로 똑같다”며 “이런 비행기표는 처음 본다”며 연신 인증 사진을 찍었다. 이날 일일 사회자를 맡은 전경석 에어부산 기장과 승무원들이 어린이들을 환한 표정으로 맞이했다. 오후 1시 40분. 비행기가 빠른 속도로 활주로를 내달리기 시작했다. 기체가 하늘에 '붕' 뜨는 순간 아이들은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비행기 고도(高度)가 안정권에 접어들자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됐다. 학생들은 조를 나눠 안내방송과 기내 서비스 체험에 참여했다. 6학년 김준성·박승기 학생은 갤리(비행기 주방)에서 마이크를 들고 한국어와 영어로 기내방송을 시작했다. "손님 여러분 비행기가 갑자기 흔들릴 수 있으니 항상 안전벨트를 매 주시기 바랍니다. 레이디스 앤 젠틀맨, 플리즈 패슨 유어 싯 벨트. 휴우~." 방송을 마친 박승기 군은 "연습할 때보다 많이 떨렸다. 다시 한번 도전하고 싶다"며 웃었다. 반대편에선 기내 서비스 체험이 이어졌다. 김은별 승무원은 "비행기 통로가 좁으니 이동할 때 승객과 부딪히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어린이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카트를 밀며 에어부산 측이 준비한 기념품을 친구들에게 나눠줬다.

"기장입니다. 현재 고도 1만 피트(3048m), 백두산보다 약 300m 높은 상공에서 날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른쪽으로 강릉이, 왼쪽으로 대관령이 보일 거예요." 체험 중간 흘러나오는 안내방송에 아이들은 창밖을 내려다보며 "우아!" 하고 감탄하기도 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대 새로운 여행법

이날 체험학습은 1시간 30분가량의 학습비행과 안전 실습, 항공종사자 직업 체험 등 2부로 나눠 진행됐다. 비행에 앞서 학생들은 A321 항공기를 똑같이 본떠 만든 시설에서 비상시 탈출법 등 안전 교육을 받았다. 승무원, 항공기 정비사들과 만나 직업 이야기를 듣는 시간도 마련됐다. 체험학습 비용은 학생 1인당 20만 원. 박진우 에어부산 홍보팀 과장은 "코로나19로 매출이 급감한 항공사는 새로운 먹거리를 찾고, 수학여행을 갈 수 없었던 학생들은 비행기를 타며 여행 기분을 낼 수 있게 됐다"며 "많은 학교에서 신청이 들어오고 있다. 현재 100곳 넘는 학교와 프로그램 진행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장에서 만난 학생과 교사 반응도 뜨거웠다. 파일럿이 꿈이라는 정재욱(6학년) 군은 "평소 만나기 어려운 기장과 항공기 정비사에게 생생한 직업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좋았다"며 "초등학교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체험학습"이라고 말했다. 왕수용(48) 교사는 "직업 체험과 비행기 탑승까지 한 번에 할 수 있어 아이들 교육에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무착륙 비행 기자가 직접 타 보니

여행의 설렘은 공항 가는 길부터 시작된다고 했던가. 이른 아침 김해공항으로 향하는데 잠시 출장이라는 걸 잊을 정도로 발걸음이 가벼웠다. 무착륙 비행이긴 하지만 여느 출국 때와 똑같은 절차를 밟았다. 공항 보안검색대에서 꼼꼼한 확인을 거친 뒤 비행기에 올라탔다. 중간중간 기장의 안내에 따라 창 밖 풍경을 감상했다. 평소 ‘여행 가고 싶다’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어느 정도 갈증이 해소된 기분이었다. 눈 깜짝할 새 1시간 30분이 지나갔다.

다만 비행시간 내내 각종 체험이 진행돼 창 밖 풍경을 오롯이 느끼긴 어려웠다. ‘학습비행’이라는 취지에 맞게 현재 비행기가 통과하는 지역에 얽힌 설화라든지, 우리 국토의 독특한 지리적 특성 등을 더 설명해줬으면 좋았을 것 같다. 코로나19 감염 위험으로 기내식이나 음료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 점도 아쉬웠다. 이에 대해 박진우 에어부산 홍보팀 과장은 “코로나19가 종식돼도 당장 해외에 가기 어려운 이들을 위해 해당 프로그램을 계속 운영할 예정”이라며 “그땐 맛있는 기내식을 먹으며 정말 비행다운 비행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