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대표·최대 문학단체인 ㈔한국문인협회의 《월간문학》 출판부에서 문협(文協) 창립 60주년 기념 특별기획으로 《문단실록 1·2》을 펴냈다. ‘나의 인생, 나의 문학, 나의 등단시절 남기고 싶은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한국문단을 대표하는 원로문인(元老文人)들의 문학 이야기와 옛 시절 문단에 대한 회고(回顧)가 담겨 있다.
문단실록 간행 위원장을 맡은 이광복 문협 이사장은 간행사(刊行辭)에서 “창립 이후 줄곧 한국문단을 선도하면서 눈부신 약진을 거듭해 온 문협은 현재 10개 분과, 18개 지회, 182개 지부, 49개 위원회, 사무처, 평생교육원 등 방대한 조직을 두고 있다. 회원 수는 1만5000명에 육박한다”며 “일부 단편적인 수기, 회고록, 논문, 문단 이면사 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문단 전체를 아우르는 문단사, 즉 문단통사(文壇通史)랄까, 문단전사(文壇全史)는 간행된 적이 없다. 이 《문단실록》이 향후 한국문단사는 물론이려니와 우리 시대의 작가와 작품 연구에 아주 소중한 전거(典據)가 되리라 확신한다”고 밝혔다. 이하 책에 실린 작가 5인의 문향(文香) 어린 옛이야기 몇 대목을 인용해 게재한다.
〈1. 김홍신
1981년 9월 인간시장이 출간되고 한 달여 만에 판매 부수 10만 부를 돌파했다. 스타덤에 오르고 미움, 질투, 시기를 온몸으로 견뎌야 했다. 나보다 먼저 유명세를 치른 최인호 형이 나를 다독여 주곤 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극복해 보려고, 이 땅을 떠나지 않으려고 공부에 몰두했다. 건국대학에서는 나를 석좌교수로 초빙해 한동안 제자들에게 뜨거운 열정을 전하기도 했다.
TV 토크쇼에서 진행자가 ‘김홍신에게 문학은 무엇이냐?’고 해서 ‘향기’라고 대답했다. 36년째 살고 있는 우리 집 마당의 풀을 베면 풀 향기가 이 3일간 온 집안에 풍긴다. 소나무를 자르면 송진이 나오면서 솔향이 은은하게 퍼진다. 문학을 향기라고 한 이유는 자기 영혼의 상처를 승화시켜 세상에 향기가 되게 하기 때문이다.
2. 나태주
항용 나는 말한다. 내가 평생을 두고 잘한 일에는 네 가지가 있다고. 첫째가 시를 쓴 일이고, 둘째가 초등학교 선생을 한 일이고, 셋째가 시골에서 산 일이고, 넷째가 자동차 없이 산 일이라고. 실상 이 네 가지는 메이저가 아니고 마이너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것을 일러 스스로 잘한 일이라고 말하고 싶어 한다.
시인으로 일생을 버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시인은 직업이 될 수 없다. 명예도 높지 않다. 같은 또래의 소설가들이 문학 전집 같은 책을 낼 때 한 권 분량이라면 나는 두 페이지가 고작이었다. 수입 면에서는 더욱 말할 수준이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시인이 좋았고 시인인 날들을 멈추지 않았다. 시인은 타고난 바 천성의 기질이 중요하다. 거기에다 부단하고 치열한 노력이 더해져야 한다. 그러니까 천성과 후천적 노력의 협력이다.
3. 문효치
(미당 서정주) 선생님 댁을 드나들면서 들었던 말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시인은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해”였다. 무슨 뜻일까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세상의 사물을 대할 때 섬세한 감각으로 마주하고 늘 반성하며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라는 말씀인 듯했다. 또 하나 생각나는 말은 “시인은 곰 같아야 해”였다. 이 말은 또 무슨 뜻일까, 다시 골똘해졌다. 설마 곰처럼 멍청해지라는 말씀은 아닐 테고, 그것은 아마 문학의 길이 고달프고 힘든 길이니 좌고우면하지 말고 뚝심 있게 한 길을 가라는 뜻인 듯했다.
세 번째는 “내 제자는 쭉정이가 하나도 없네”라는 말씀이었다. 이 말씀을 들었을 땐 가슴이 뜨끔했다. 아니, 무섭고 두려웠다. ‘내 제자는 쭉정이가 하나도 없는데 네가 문제야’라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며칠을 가슴앓이하다가 ‘그래 나도 선생님의 제자니까 쭉정이는 아니겠지’ 이렇게 생각하며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4. 신달자
나도 젊은 날 속 터지는 날이 많았다. 아마도 산문집이 많은 핑계를 대자면 이런 속 터지는 일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글도 글이지만 사람이 그리웠다. 속이 터져 죽을 것 같았는데 그 속을 쏟아낼 대상이 없었다. 친구도 아니고 스승도 아니고 이 사람 저 사람 하다가 어느 소설가를 기억해 냈었다. 안이 상해 있는 사람이 나 말고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내 부끄러움을 조금은 덜어 주었다. 안이 푹푹 썩어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나는 알아. 옷으로 화장으로 가린 사람들이 저 거리를 봐! 모두일 거야. 나는 나를 위로받기 위해서 늘 그렇게 생각했다.
때로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아주 싫어지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것도 갑자기 하고 있는 일이 시시하고 희망이 없어 보일 때도 있을 것이다. 손을 탁 놓고 숨어버리고 싶은가. 그러나 알아라. 싫어하는 일 속에도 인생의 숭고한 의미가 숨어 있는 것이다. 그런 순간의 생각에서 이겨라. 선택한 일에 대해 의미와 가치를 스스로 만들고 사랑해 보라. 그것이 그대를 내면 강한 사람으로 일으켜 세울 것이다.
5. 유안진
등단 56년 습작기까지 어느 연인을 이처럼 한결같이 짝사랑해 본 적 있었던가? 따라서 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절대, 오를 수 없는 산이다. 에베레스트 이상의 내 평생 정복할 수 없는 무한무궁이지만 이런 편견에 빠져 사는 나는 행복하고도 불행하다. 평생 자원하여 강울음을 바친다. 내 딴에는 울음마다 단장(斷腸)의 최선이었으나, 다시 보면 비루와 남루뿐. 그래서 다시 절창을 위하여. 이런 산을 품고 노리고 벼르고 탄식하는 자학적 쾌감을 누린다. 누구의 어떤 평가도 아랑곳 않는 나 홀로 황홀해지는 한 편을 써보고 싶을 뿐. 모든 시인의 한풀이이자 사람 되어 가는 삶의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