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은 날, 한 번쯤 "아~ 배 터지겠다!"라고 말한 적 있을 거예요. 그런데 인간을 비롯한 동물은 아무리 많이 먹어도 배가 '빵' 하고 터질 일은 없다고 해요. 특정 수준 이상 음식을 섭취하면 체내에서 섭식(攝食·음식물을 먹는 것) 행동을 억제하는 신경 전달 체계가 작동하기 때문이죠.
서성배 한국과학기술원(KAIST) 생명과학과 교수와 뉴욕대 오양균 박사 연구팀은 충분한 음식을 섭취한 초파리에서 과잉 섭식 행동을 억제하는 시스템을 최초로 발견했다고 15일 밝혔습니다.
초파리 체내에서 음식물 섭취에 관여하는 신경 물질은 '디에이치(DH)44'입니다. 탄수화물, 당과 같은 영양분이 부족하면 DH44가 활성화돼 자연스레 식사를 유도하죠. 적당히 배가 차면 이번엔 '피에조(Piezo) 채널'과 '후긴' 신경세포가 이를 감지해 식욕을 억제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한마디로 DH44 신경 물질과 피에조·후긴이 상호작용하며 음식물 섭취를 조절하는 거죠.
이 같은 시스템은 초파리 등 모든 곤충류에서 확인됐어요. 만약 섭식을 억제하는 피에조 채널에 문제가 생기면 배부른지 모르고 끊임없이 음식물을 먹다 정말 내장이 파열될 수도 있다고 해요. 실제 멜버른대의 페란 로즈 연구팀은 모기가 사람 피를 빨아먹다 배가 터져버리는 모습의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어요.
서성배 교수는 "인간을 비롯한 다른 동물에도 이름만 다를 뿐 섭식에 관여하는 비슷한 체계가 존재한다"며 "과식을 막는 신호 전달 체계에 문제가 생기면 과다하게 영양을 섭취하게 된다"고 설명했답니다. 그는 "이번 연구는 인간의 식이 장애 치료나 비만 예방 연구 등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어요. 연구 결과는 신경과학 분야 국제학술지 '뉴런 (Neuron)' 5월 19일자에 게재됐습니다.